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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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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Mar 28. 2017

드디어 구한 내 방, 내 집




내가 처음으로 만난 독일인은 청년 토마스(Thomas)였다. 이틀을 세수 따위 않아도 뽀얀 얼굴을 자랑하는 꽃다운 스물 둘, 교환학생으로 브라질 <꾸리치바(Curitiba)>에 머물 때였다. <파라나(Parana) 대학교>의 부설 랭귀지 코스를 함께 다니면서 꽤나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수업을 듣게 되었다. 한 달에 한 번씩은 시험을 보았고 시험이 끝나면 모든 학생들이 모여 북적대며 파티를 열었다. 좀처럼 ‘팍’하고 터지지 않는 서로의 포르투갈어 실력을 한탄하기도 했고, 가격 대비 엄청난 맛을 자랑하는 식당 이야기에 봇물이 터지기도 했다. 그러던 중 저 멀리 금빛의 반짝임이 느껴졌다. 내가 아는 저 금빛은 분명 마성의 외모를 가진 남자에게서만 나는 후광이었고 역시나 출처는 금발 머리에 키가 적당히 큰 젊은 남학생이었다. 멀리서 봐도 아시아인도, 그렇다고 까무잡잡한 피부의 중남미 사람도 아니었다. 학교에는 나 말고도 다른 한국인 여학생이 몇 명 있었는데 그들이 늘상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 했던 인기남이었다. 



내 인생 처음으로 만났던 독일인 토마스/ @꾸리치바, 브라질

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내가 그에 대해 기억하는 건 평범한 아시아 여자의 시각으로 봤을 때 굉장히 미남이었다는 것과 무지막지하게 저렴한 월세를 냈다는 것이다. 내가 내는 월세의 절반도 되지 않는 돈을 내고 있던 토마스는 브라질에 있는 독일인들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방을 구했다고 했다. 내가 내는 집세가 얼마인지를 듣고 난 뒤의 그는 당장이라도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공포에 휩싸인 표정이었다. 엄밀히 따지면 나는고급 주택가의 레지던스에 머물고 있었고 그는 학교에서 삼십분 남짓 떨어진 지역에서 여럿이 함께 쓰는 아파트의 방 하나를 사용했다. ‘거처를 구한다’는 의미로 어린 나이에 당연히 집을 구했는지. 모르긴 몰라도 그때‘방’과 ‘집’의 차이를 깔끔하고 명료하게 인지하지 않았나 싶다.


집을 알아보다

어느새 독일에 온지 한 달이 흘러가고 있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하나 둘 사귀었고 어학원을 등록했고 독일에 살기 위한 필수 코스인 ‘거주지 등록’을 마쳤다. 주말에는 <메세>에 들려 세계적인 전시들도 구경하고, 프랑크푸르트에 숨은 맛집이라는 간판이 없는 아주 자그마한 일본 라멘 가게를 알아내기도 했다. 마인강에서 토요일마다 열리는 벼룩시장 구경에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하루를 보내기도 했고, 나름의 분주함으로 시간을 보내면서도 한켠의 채워지지 않는 ‘집’에 대한 부족함이 가끔 나를 괴롭혔다. 


나와 홍차공주는 수시로 방을 구하는홈페이지(http://www.wg-gesucht.de http://www.immobilienscout24.de)에 올라 온 정보를 뒤지고 주인에게 연락하는 것을 반복했다. 부동산 중개업체가 등록한 건 나중에 중개수수료를 지불하기에 어떻게 해서든지 방 주인이나 집주인이 직접 등록한곳을 찾아야만 했다. 한인 커뮤니티인‚ <베를린 리포트>에서도 함께 찾아보고 연락을했다. 

하루에도 두세 명씩은 문자나 전화, 이-메일을 통해 연락이 왔다. 늘상 상상해왔던 모습의 깐깐한 독일인답게 독일에 온지 얼마 안된 이방인에게도 재직증명서, 급여 계좌 내역 등의 서류를요구하는 집주인들이 상당했다. 3개월 이상은 급여를 지급 받은 증거를 보여 달라는데 독일에 온지 열흘도 되지않은 나로서는, 또는 나와 같은 사람들은 독일 현지인들에게 방 하나를 빌리는 것도 쉽지 않다. 이러다 보니 결국에 의지하는 것이 한인 커뮤니티가 되는 것 밖에 없었다.

 



냉장고 옷장, 침대, 서랍장, 식탁 정도의 아주 간단한 가구만 비치되어 있는 곳에서 몇 년을 살지 모르니 가구를 구입하지 않아 내 방은 항상 어수선한 느낌이었다.@프랑크푸르트,독일

3주 만에 나와 홍차 공주는 같이 살 방을 알아보던 찰나에 꽤나 넓은 기숙사 방 하나를 구했다. 프랑크푸르트의 명문 괴테 대학교 의대에서 유학중인 한국인 여대생이 계약 만료 전에 다른 집을 얻게 되어 운이 좋게 썩 괜찮은 방을 얻을 수 있었다. 관리비와 월세를 포함해서 꽤 저렴한 금액이었고 프랑크푸르트 시내에서 지하철(S Bahn) 10분, 역에서 집까지는 도보로 5분 정도 소요되었다. 옷장과 침대, 화장대와 냉장고, 커튼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더 바랄 게 없었다. 방안의 한 켠에 난데없이 들어차 있는 세면대와 거울이 붙어 있는 형상이 살짝 낯설기도 하고 이거 무슨 교도소 독방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분명 이제 계란 한판이 된 나보다 세상을 더 오래 살았을 법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지닌화장대와 침대, 옷장, 서랍장은 소박하다 못해 순박했다. 옷장은 190cm가 훌쩍 넘는 사람도 '쏙'하고 들어 가 숨바꼭질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거대한 높이를 뽐냈다. 허리가 내 가슴팍까지 오는 큰 키의 독일인들의 옷들을 보관하기 충분한 옷장이겠거니생각이 들었다.


부동산을 통하여 계약서를 작성했다. 사소한 일에도 수십 장의 서류를 작성하는 서류의 나라 독일을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끝난 줄 알았던 집구하기는 또 하나의 거대한 절차가 남아 있었다. 입주를 하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코스인 바로 건물 관리인과의 미팅. 별도의 <테르민(Termin/사전 약속을 의미함)> 일정을 잡아야 했다. 며칠 뒤 건물 관리인과의 약속 시간에 맞추어 관리소를 찾았다. 벨을 누르고 "똑똑"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십 초가 흘렀을까. 정적을 깨고 열린 문으로 "문을 두드리지마. 이미 너는 벨을 눌렀잖아"라는 신경질 적인 말투의, 그러나 또박또박하고 선명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2미터 남짓한 거구에 금발의 곱슬, 뭉뚝한 코 망울에 두터운 유리알 안경을 아슬아슬하게 걸쳐 쓴 관리인은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서늘했다. 


"나는 굉장히 깐깐한사람이야. 내 사전에 '대충'이라는 표현은 없단다. 설렁설렁 넘어가는 일은 결코 없을 테니 내 앞에서는 긴장해."


라는 말이 오직 나에게만 들리는 것 같았다. 오른손에는 역시나 누가독일인이 아니라고 할까 서류 뭉치가 쥐어 있었다. 그는 나를 이끌고 방문을 열고 들어가 꼼꼼히 손에 든 서류를 넘겨가며 방 안에 시설물에 대해 설명을 했다. 

독일에는 비슷한듯 보여도 동일한 외관의 건물은 없다. 창의 모양이나 외벽의 색상 등의 차별을 두어 동네마다 개성이 넘친다.




세입자는 입주 전에 어떤 물건들이 있었는지, 파손된 부분이 있는지, 벽에 못 자국이 있는지, 만약있다면 몇 개가 있는지 등에 대해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심지어 벽이나 바닥에 생긴 동전 크기만한 얼룩도 사진을 찍어 두고 서류 상에 꼼꼼하게 기재를 해둔다.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집을 나갈 때에도 건물 관리인 또는 집주인과 약속을 하고 입주 전에 작성했던 체크 리스트를 가지고 동일한 형태의 시설 점검을 한다. 벽에 못을 박았으면 실리콘이나 시멘트 등으로 본인이 알아서 메워야 한다. 든 자리와 난 자리의 티가 나지 않도록 조용히 떠나야 하는 집 없는 세입자의 입장은 우리나라와 매한가지였다. 


관리인은 라디에이터와 세면대가 작동이 되는지 밸브를 열고 닫기를 반복했고, 문과 창문의 개폐에 이상이 없는지 심각한 표정으로 열고 닫기를 다섯 번이 넘게 시도했다. “저 쪽에 전구 하나가 작동을 안 하네. 설비 담당자가 바꿔둘거야. 이것 외에는 다른 문제는 없어 보여. 네가 천천히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이상이 없으면 여기에 사인을 하면 돼.“라고 말한 관리인은 마음 불편하게 팔짱을 낀 채 방 한쪽 벽에 기대어 눈에 레이저를 쏘는 듯 온 방안을 두루 살피고 있었다.이 불편한 상황을 서둘러 피하고 싶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쫓기듯 서류에 서명을 했다. 삼십 여 분의 적막함과 긴장감에 괜스레 불편했던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입주 일이 정해졌다.


정식으로 집을 계약하고 나면 독일에서는 특이하게도세입자가 일명 갑이 된다. 세입자가 월세가 밀려도 함부로 집주인이 내보낼 수가 없다. 계약기간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쯔비센 형식의 단기 임대가아니고서야 방이나 집을 계약하면 세입자가 나가겠다고 <퀸디궁(Quindigung/집주인에게 계약 종료를 요청하는 것)>을 할 때까지 월세를 함부로 올리지도 못한다. 그러니 세입자 입장에서 집을 구하는 것이 여간 깐깐한 것이 아니다. 집을 구하는데 집주인에 따라 상이하지만 보통의 경우, 재직 증명서나 재학 증명서(독일학교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은 유학생비자를 받기 위해 보증금 8,000유로 정도의 잔고가 필요함) 등이 필요하다. 보증금은 평균 월세의 3배의금액이고 이사를 가기 최소 3개월 전에 퀸디궁을 할 수 있다. 이사 날짜에 맞추어 보증금을 돌려 받을 수 있는데 만약 세입자의 사정에 따라 3개월이 되기 전에 집을 나가게 된다면 세입자는 이사를 갔음에도 월세를 내야만 한다. 그 돈은 나중에 돌려 받을 보증금에서 철저하게 제해진다.

 

해가 저물기 시작한 차 없는 도로 자일거리(Zeil) 풍경 @프랑크푸르트, 독일


월세와 보증금

독일은 세 달, 영국은 한 달에서 두 달 정도의 월세를 보증금으로 받아둔다. 월세가 밀렸거나 빌렸던 집에 훼손된 부분이 발생한다면 보증금에서 모든 비용을 처리한다. 나처럼 언제나 얇은 지갑을 지닌 젊은 사람들에게 꽤나 합리적인 유럽의 임차 구조가 아닌가 싶다. 


대학교 4학년 때 졸업을 앞두고 통학하는 거리가 멀다하여 처음 학교 앞에 자취방을 구할 때 기억이 또렷하다. 열 평 남짓한 원룸에 보증금 1천만 원에 월세 40만원. 게다가 관리비라고집주인 아주머니께 내드리는 몇 만원과 인터넷, TV수신료 등을 합치면 집에서 이불 뒤집어 쓰고 손가락만 빨고있어도 오십만 원이 고스란히 서울에서 방하나를 차지하는 비용으로 지불되었다. 몇 년 뒤에 사회인이 되고 서울에서 혼자 살아 본다 싶으니 보증금은 이천만 원. 게다가 월세는 관리비를 제외하고 오롯이 빠져나가는 돈이 오십만 원 정였다. 보증금을 낮추자니 물 새듯 빠져나가 버리는 월세 몇 만원에 아쉬운 대로 직장인 대출을 받아 보증금을 낸다. 세상 어느 나라의 대학생이, 그리고 갓 사회에 나온 사회 초년생이 무슨 돈이 있어서 돈 천만 원이 넘는 돈을 '척'하고 보증금으로 낼 수 있을까. 학자금 대출도 상환이 시작되는 순간인데 말이다. 어찌됐건 이런 까탈 맞은 독일에서의 임차 절차의 복잡함을 단 칼에 잘라 버리고 집을 구하는 방법도 있다. 독일에 머무르는 한국인 커뮤니티를 수시로 접속해서 매물을 찾거나 직접 본인이 원하는 조건으로 글을 올려두면 된다. 그곳에 올라 오는 대부분은 한인 분이 살고 있는 집에 남는 방을 하숙 치듯이 내주는 게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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