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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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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Mar 29. 2017

독일에서 장 보는 재미




 나는 마트나 백화점, 재래시장 등을 구경하는 취미를 가졌다. 시간이 날 때든 나지 않을 때든 새로운 곳에 들르면 어떻게 해서든지 구경을 한다. 그 중에서도 유독 식료품을 파는 공간에 가는 것을 선호하는데, 도시마다 또 나라마다, 계절에 따라 식료품이 배열된 모습도 종류도 상이한 것을 보고 있노라면 머리 속에 알록달록한 상상들이 떠올라 기분이 좋아진다. 사람 냄새는 또 어떻고. 물건을 구경하는 사람들도 또 물건을 파는 사람들, 새로 나온 제품을 진열하는 사람들, 어느 하나 살 마음이 없이 약속 시간 전에 남은 시간을 때우려 두리번 거리는 사람들까지 내게는 한 편의 영화보다, 한 장의 그림보다 오감을 만족 시켜주는 작품이다.


한 번 가면 두세 시간이 훌쩍 흘러도 모를 정도로 좋아한다. 무엇보다도 그 도시, 그 나라의 생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게 직접 발품을 팔아 다니면서 느낄 수 있는 묘하면서도 가슴이 벅차 오르는 매력이다. 나는 한국에서도 그랬고 어딜 가나 시간을 내어 틈틈이 시장 구경을 다녔다. 이곳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독일에 머물면서 나의 장보기 시간을 가장 많이 할애했던 마트 레베(REWE)


마트로 치면 <알디(ALDI)>, <리들(LIDL)>,<페니(PENNY)>, <레베(REWE)> 등의 다양한 브랜드가 있지만서도, 그 중에서도 ‘레베(REWE)’를 주로 이용하곤 했다. 진열된 제품들의 평균적인 가격대와 품질, 취급하는 브랜드에 따라 마트에도 ‘급’이 나뉘어져 있다. 저가 제품들은 대부분 <페니>와 <알디>에 있었고 레베는 그 중에서 제품의 품질이 좋지만 그만큼 가격대도 조금 높은 편이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겉보기에는 허름하고 소박한 초저가 슈퍼마켓 체인인 ‘알디(ALDI)’의 대표인 <Albrecht 형제>가 독일의 부자 서열 다섯 손가락 안에 뽑힌다는 이야기는 그럴싸한 겉보기에 들썩대는 나에게 따끔한 한마디를 외치는 것 같았다.

제발 남자 외모만 보지 마라!


사람의 심리라는 건 참으로 재미있다. 분명 저렴한 것들을 먼저 접했다면 나도 저가형 마트를 애용하며 생활비를 아꼈을지 모른다. 집 근처에서 처음 마트라고 접한 곳이 레베(REWE)였고, 그곳에 품질 좋은 식재료와 다양한 브랜드들, 진열 구조에 익숙해지고 나니 저가형 마트에서 우유 한 통도 구입하기 꺼려졌다. 마트에서 주로 구입하는 제품들이 먹거리이다 보니 ‘얼마 가격 차이도 나지 않는데 기왕이면 싱싱한 것을 먹지, 맛있는 것을 먹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왕이면’은 참으로 오묘하고 무서운 표현임에 확실하다. 외식을 할 때도, 집을 구할 때도, 쇼핑을 할 때도, 하다 못해 남자를 만날 때도 ‘기왕이면’이라는 말로 무언가에 대한 기대치는 한없이 올라가지 않는가.

 




독일에 머문 시간이 한 달이 지났고 그 사이 내게는 새로운 습관이 하나 생겼다. 한국에서는 쳐다볼 생각조차 없었던 전단지를 정독하는 것이다. 매주 달라지는 다양한 특가 상품 구성은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다. 독일에서는 파스타나 빵, 감자, 맥주 등의 정기적으로 구매하게 되는 것들은 정부에서 물가 안정을 위한 정책을 한다고 들은 적이 있다. 아마 대형 마트와 그런 것들을 조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할인을 하지 않아도 구매하는 제품들도 한 두 달에 한번씩은 크게 가격을 내려 판매하곤 했다. 어떤 건 이틀 동안, 또 어떤 건 일주일 내내 적용이 된다고 하니 다음주의 행사 내용을 미리 챙겨두고 장을 봐야 하는 구매 목록을 적어두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다.



특히 찬장에 쟁여두고 먹는 쌀이나 파스타는 두어 달에 한번 꼴로 전단지의 후광을 담당했고, 그 때마다 나는 심지어 일주일에 두 번도 장을 봤다. 특가 상품은 매일 한정 수량을 판매하여 인기가 많은 제품은 오전에 문을 여는 시각이 아니면 그림의 떡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연유로 전투에 참여하는 장수처럼 비장하게 마트 침략을 계획하고 동선을 연구해서 포스트잇 한 장에 써 내려가는 내 모습을 느낄 때는 불현듯 ‘아 내가 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며 헛웃음이 나오곤 했다. 



이 뿐만이면 족할 것을. 마트 한 켠에 닭고기나 소시지, 스테이크, 파스타 등을 직접 조리해서 판매하는 완제품 코너는 끼니때만 되면 덩치 큰 독일인들로 문전성시다. 평일에 한끼를 때우기에도 좋고, 물론 맛도 훌륭하다. ‘투박’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백화점이나 마트의 지하 식품관에즐비한, 꽃이나 야채로 가니쉬를 얹고 아기자기한 포장 용기에 가지런히 담겨 있는 메뉴를 상상한다면 시간의 사치이다. 예쁘게 꾸미는 요리가 아닌 ‘맛있는’ 요리가 독일의 또 하나의 문화이다. ‘오늘은 나를 꼭 잡숴보지 그래?’라고 앙칼지게 외치는 듯한 표독스럽고 치명적인, 특히 우리나라의 전기구이 통닭과 같은 메뉴는 한 달에 한 번씩 꼭 챙겨먹는 완전 소중한 아이템이었다.





독일에 머무르는 날이 하루하루 늘어나면서 구매하려는 제품군에 따라 여러 갈래의 쇼핑 동선이 생겼다. 물론 한국과도 많이 유사한 모습이다. 주로 식료품은 가까운 마트에서 구입하지만 가끔은 주말에 시내에 있는 재래시장에 들러 고기나 과일 등을 구입했다. 특히 프랑크푸르트는시내 중심에 재래시장 <클라인마크트(KleinMarkt)> 가 있어서 자주 홍차 공주와 방문했다. 프랑크푸르트 시내의 거대한 빌딩 숲 사이에 2층 짜리 낮고 긴 건물은 스치듯 지나칠 때에 언뜻 폐 공장 느낌이다. 초록 빛깔의 문을 열고 한 걸음을 내 딛는 순간, 온몸을 감싸는 기분 좋은 사람 냄새에 또 다른 세상을 만나는 느낌이다. 말 그대로 푸줏간, 절인 야채와 조리된 음식이 가득한 반찬가게, 수제 치즈 가게와 화원. 깔끔하게 격식을 차린 듯한 마트에서 보지 못했던 또 다른 독일 풍경을 만난다. 나와 홍차공주는 유독 이 곳의 빵 가게에 들러 양파와 브로콜리가 가득한 짭조름한 <키슈>와 직접 로스팅한 싱싱한 원두로 내린 1유로의 커피 한잔과의 여유를 사랑했다.



프랑크푸르트 시내에 위치한 재래시장 <클라이네마크트할레(KleineMarkt)>







문구나 냄비 받침, 커피 핸드 드립퍼, 밀폐용기 등의 생활 잡화는 IMF때 성행하던 <천냥 백화점>과 같은<오이로샵 (Euroshop)>을 주로 이용했다. 모든 제품이 1유로(한화 1300원) 정도여서 부담 없이 이용을 하나, 정신 줄을 놓고 쓸어 담으면 결제 금액을 보고 ‘헉’소리를 내며 도로 매장을 몇 바퀴 돌며 내려놓고 와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기기도 했다. 약은 물론이요 화장품이나 세제, 치약 등의 생활용품은 주로 드럭스토어를 이용했다. 매장마다 동일한 제품의 가격이 천차만별이지만 이런 제품들은 확실히 마트보다 가격이 저렴해서 자주 들르게 된다. 독일 드럭스토어의 쌍두마차인 <데엠(dm)>과 <로스만 (Rossmann)>은 독일에 여행 오는 한국 사람들이 꼭 들러서 핸드크림이나 치약 등을 기념품으로 "무지막지하게" 담아가는 쇼핑의 성지이다. 평상 시에는 쉽게 마주치지 못하던 한국사람들인데, 시내 중심에 있는 드럭스토어에 가면 “어머, 여기도있다.” “이거 담았어? 한 열 개 더 담을까?” 하는 낯익은 한국 언니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두 볼이 빨게 지는건 내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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