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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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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Mar 29. 2017

세관에서 짐을 찾다



쫄에서 쫄다

 독일에 오기 전에 한국에서 커다란 택배 상자 세 박스로 나누어 겨울 옷과 신발, 책 등을 우체국에서 보내 두었는데 2주가 지나도 나에게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 독일에 도착했을 때에는 가을이 시작될 느낌도 받지 못했는데 어느새 기온은 7도. 남부 지방은 눈이 내렸다고도 했다. 아침 저녁 일교차는 심하고 정작 짐 가방에 담아 온 겨울 옷은 패딩 하나, 가죽 점퍼 하나가 고작이었다. 가방도 몇 개 없고 신발도 얇은 스니커즈 하나와 돌바닥에 어울리지 않는 굽이 10cm나 되는 하이힐 뿐이었다. 추운데 이게 왠 동양에서 온 거지꼴로 살아야 하나 불안이 몰려올 때쯤, 어는 날. 퇴근해서 집에 오니 교회 목사님께서


“현주씨, <쫄(Zoll)>에서 뭐가 하나 온 것 같아요.”


라며 편지 한 통을 전해 주셨다. 되지도 않는 독일어를 구글 번역기에 옮겨 적어가며 삼십 분만에 확인한 내용인즉슨, ‘너의 짐이 독일에 도착하였으나 확인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배송하지 않았다. 세관에 있으니 적혀진 주소로 방문하여 내용물을 확인한 뒤 가져가는 것으로 한다.’는 내용이었다. 옆 방에 같이 살고 있던 홍차공주의 짐은 세관의 이런 연락 없이도 며칠 전 바로 집 앞에 오롯이 착지하여 주인을 만났는데.


세관에서 찾은 짐은 모두 세 건으로 세관의 검수가 필요한 건이라는 의미의 테이프로 표시가 되어 있었다.



괜한 걱정은 그날 저녁부터 나를 찾아왔다.

 




짐과 관련 한 표현이 있어서 몇 시간을 되뇌인 흔적이 역력한 독일어 생활 회화 책

우리나라도 일정 금액이 넘는 제품을 해외에서 구매하거나 보낼 때 관세가 적용되듯이 독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분명히 우체국에서 짐을 부칠 때 최대한 낮은 금액으로 박스마다 내용물의 금전적 가치를 20달러로 기재하였다. 그러나 배송 요금을 포함한 금액으로 책정이 되며 관세가 부가될 수 있다는 언급을 우체국 직원분께 들었던 기억이 세관에서 우편물을 받고난 뒤에야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했고, 괜한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겨울 옷과 신발, 가방 등이 들어 있는 박스를 열어 보고 만약 사용했던 제품이라도 정확하게 따지겠다며 브랜드를 알아보고 관세 폭탄을 던져주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초조해졌다.






프랑크푸르트 세관 찾아가기
세관 주소를 구글 지도로 검색해서 도착하더라도 간판이 크지 않아서 처음 가는 사람이라면 주위를 잘 살펴야 한다.




다음날 아침 출근 시간 전에 우편물과 여권을 들고 잰 걸음으로 세관(주소: Waechersbacher Strasse 83, zimmer16)을 찾았다. 집 앞에서 <U-bahn> 7호선을 타고 <Steffles Str.> 정거장에서 내려서 200m정도 내린 방향으로 직진하니 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그곳에서 41번이나 44번 타면 되고 세관 건물 바로 앞에 정류장이 있으니 찾기 쉽다고 생각했으나, 나는 정류장을 한 정거장 먼저 내리는 바람에 꼭두 새벽에 해도 나지 않은 어둠 속에서 세관을 찾아 헤매야 했다. 세관은 다행히 아침 7시부터 운영이 되고 있어서 직장인이나 학생들도 별도의 일정 조정 없이 이용이 가능했다. 여유롭게 도착해서 첫 번째로 일을 해결하고 출근을 하려던 생각과 달리 어둠 속에서 이십여 분을 방황한 덕에 <쫄 암트 (Zollamt)> 에 도착하니 7시 10분 정도 되었고 내 앞에는 두 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작은 사무실이었고, 직원은 세 네 명 남짓이 보였는데 다행히도 퉁명스러운 표정의 아주머니 직원이 아닌, 젊고 차분해 보이는 남자 직원을 담당으로 만났다. 독일에서 내가 만난 젊은 남자들은 경찰이건 상점 직원이건, 아이리쉬 펍의 옆자리에서 만난 사람이 건 열이면 열 모두 젊은 동양 여자에게 친절했다.


“왜 짐을 3개나 한국에서 보내왔어?”
“독일에는 얼마나 머무를 거야?”
“일을 하니, 공부를 하고 있니?”
“한국에 돌아갈 때 이 짐들은 어떻게 할거야?”
“상자 안에 있는 짐은 모두 네가 쓰던 물품이야?”
“상자 하나를 내가 열어봐도 되겠어?”


생글생글 억지 웃음을 웃어가며 “SURE(물론)”을 외쳤고 임의로 상자 하나를 칼로 ‘쓰윽’ 긁어 개봉했다. ‘왜나는.’ 화려하고 커다란, 패션에 무딘 남자도 들으면 알만한 디자이너 브랜드 쇼핑백이 눈앞에 나타났다. 직원은 상자와 내 얼굴을 번갈아 몇 번 쳐다 보더니 종이 백을 열어 보아도 되겠냐고, 조금은 의심을 해보겠다는 투로 물어봤다. 괜히 새 것도 아닌 물건들로 인해 발생되는 관세로 생돈을 날릴까, 나는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세관 직원의 행동과 시선을 살폈다. 그리고는다행스럽게 “OK!”라는 깔끔한 멘트와 함께 세관에서의 검사가 무사히 끝났다. 십오 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 반나절은 흘러간 듯한 느낌이다. 


커다란 상자 세 개를 혼자 옮길 수 있겠냐고 하고는 커다란 카트를 가지고 온 젊은 직원의 다정한 얼굴이 문득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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