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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Mar 30. 2017

독일을 만날 수 있는 마인강변 플리마켓



마인강옆 도로에 차가 없다.

프랑크푸르트의 허리라고도 불리는 <마인강(amMain)>은 나에게 그리 대단하지 않은 첫인상이었다. 한강처럼 거대하지도, 그렇다고 파리의 세느강(Seine)처럼 아기자기하고 낭만이 흐르는곳도 아니었다. 걸어서 강을 건너는 데는 겨우 5분 남짓이면 충분했다.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에서 <프랑크푸르트암마인(Frankfurtam Main)>또는 줄여서 <FFM>이라고 불린다. 이름에 강 이름이 붙여질 정도로 마인강이 커다란 존재인가의 의구심은 한달, 두 달, 그렇게 함께 한 후에 눈 녹듯 사라졌다. (한편으로는 동일한 이름의 도시가 또 한 곳이 존재하여 구분을 위해 '프랑크푸르트암마인'이라는명칭을 쓴다는 이야기도 있다.)


서울에서 종종 나는 퇴근길에 한강을 즐기곤 했다. 출렁이는 강물 소리와 물 비린내 품은 강바람, 오롯이 서서 멀리까지 노란 불빛을 밝히는 N타워, 이글이글 빨갛고 노랗게 줄지은 차량 행렬을 쉼 없이 느끼는그 순간의 평온을 되찾곤 했다. ‘툭’하고 한강 시민공원의 편의점에 산 시리듯 차가운 캔 뚜껑을 열어 벌컥벌컥 맥주 한 잔 들이키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그 순간 만큼은 행복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이게 도시 생활에 익숙한 평범한 직장인의 사소한 낭만이었는지 모른다. 일상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아주 사소한 것들에 또 찰나의 순간에 행복으로 일상을 위안 받으려고 애를 쓰던 내게 <행복>이란 지금은 없지만, 언젠가 손에 쥐게 될 <로망>과도 같은 존재였다.



토요일마다 열리는 마인강변 플리마켓

그리고 이제 내게는 투박하지만 정겨운, 도시 사람들의 생활의 중심인 마인강이 이제는 또 하나의 로망이 되었다. 매주 토요일은 마인강변에서 커다란 벼룩시장이 열린다. 마트 구경을 취미로 삼는 내게는 또 하나의 취향 저격이었다. 프랑크푸르트 도시에서 열리는 시장들 중에 가장 규모가 크기도 하고 독일 전체에서 열리는 벼룩시장 중에도 규모가 손으로 꼽힌다. 매일매일 열리는 노천 장터가 아닌, 말 그대로 벼룩시장은 TV에서, 영화에서, 잡지에서나 볼 수 있던 모습이었는데 내가 눈앞에서 보게 되다니. 건조해진 내 피부가 신경에 쓰인 건지 하늘에서 끊임없이 미스트를 뿌려댔다. 빗줄기가 거세져 상인들이 장사를 접을지도 모른다는 초조함이 슬며시 머리 속에 자리잡았다.


아직은 도시 지리에 익숙하지 못한 나와 홍차공주의 흑기사를 자처하는 나의 대학 후배도 함께 출동했다. 간사하기도하지 나란 사람은. 같은 학과도 아닌데 타지에서 동문을 만났다며 그에게 찰싹 붙었다. 나보다 세 살이 어린 후배는 독일에 주재원으로 근무하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유년기를 독일에서 보냈더랬다. 프랑크푸르트 옆 도시에 살았었다는 그는 독일인과 매우 흡사할 정도의 유창한 독일어 실력과 독일 문화를 몸에 문신처럼 새겨 놓은, 무늬만 한국사람 정도였다. 덕분에 독일에 머무르는 동안 많은 지원을 받았고 에피소드들을 만들었다. 심지어 나의 독일 생활 요리의 8할을 담당했던 밥통도 후배 녀석의 제공이었다.


불안감과 초조함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새파란 하늘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오늘은 벼룩시장 구경꾼이자 관광객 모드로 돌입한다고 과도하게 멋을 부리고 나왔는데, 그걸 아는지 도시 전체가 사진 찍기 안성맞춤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프랑크푸르트의 시내는 걷다 보면 대중 교통을 이용하지 않아도 도시 전체를 둘러볼 수 있다. 여유를 느끼며 말이다. 나는 걸어 다니면서도 시종일관 사진을 찍어댔다. 뢰머 광장을 지나 마인강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아니, 내가 봤던 마인강이 이 강이 맞아?’ 할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에 입 꼬리가 근질대며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가을의 알록달록 단풍을 품은 나무들과 살짝쿵 빗방울을 머금어 햇빛에 반짝이는 잔디밭, 크리스털 물결을 출렁이는 강물과 뭉게 구름 높게 품은 하늘은 동화의 한 장면이었다. 거대한 빌딩 숲의 프랑크푸르트와 끽해야 5층 정도의 낮은 건물들 이아기자기하게 들어선 <작센하우젠 (Sachsenhausen)>을 가르며 흐르는 마인강의 정취에 나는 그때 비로소 사로잡혔다. 멀리 작센하우젠쪽의 강변에 옹기종기 파라솔 행렬이 보였다. 드디어 말로만 듣던 프랑크푸르트 벼룩시장을 마주하게 된다는 생각에 설렜다.




질서 정연의 독일

신기하게도 벼룩시장은 강변뿐만 아니라 그 위쪽 차도에도 이어졌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값 싼 물건을 조금이라도 값을 높여 파려는사람,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사려는 사람, 나처럼 시장 구경을 나온 사람 등 제 각각이었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여가이자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시전체에서 교통을 통제하고 있었다.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는 <작센하우젠 쪽 마인강(Main ufer)> 은 차량이 통제되고 곳곳에 교통 경찰 분들이 모르고 지나치려는 차량이 우회할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었다. 수십 년을 같은 자리에서 운영된 도시의 정규 행사이니 프랑크푸르트 시민들이라면 익숙한 모습일 테다. 그러니 벼룩시장이 운영되는 시간에 도로에 진입하는 차량 수 자체도 적었다. 


규칙이 있으면 규칙을 따르는 데 독일인 만큼 완벽한 민족은 없을 거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됐다. 질서 정연한 시민 의식은 결코 도시를 멈추게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규칙을 철저하게 준수하고 도시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도, 내게는 로망으로 다가왔다. 이런 모습에 신기하고 독특한 시장 구경을 조금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었다. 벼룩시장은 말 그대로 <플리마켓(flea markt)>이었다. 프랑크푸르트뿐만이 아니라 근처 도시들에서 물건을 팔기 위해 많은 상인들이 모였다. 옷과 장신구, 패션 잡화부터 식기, 주방용품, 인테리어 소품, 자전거, 노트북 등 없는 게 없었다. 어떤 분들은 분명 이사 가기 전에 짐을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집 안의 모든 것들을 가져오신 것처럼 보였다. 세면대까지 떼어와서 파는 모습은 폭풍 웃음을 자아냈다. 수수한 행색에 연신 조그마한 낚시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워 대시는 아저씨는 어느 자전거에서 떼어왔는지 모르는 자전거 바퀴만도 판매하셨다.


프랑크푸르트 마인강 벼룩시장 풍경


나중에는 나만의 사소한 벼룩시장 이용 팁이 생겼다.


첫째, 문닫을 시간에 구매하라.

사고 싶은 물건을 눈으로 찜 해두고 마감시간 바로 직전에, 상인이 짐을 정리하는 움직임을 보일 때 가서 물어보면 처음에 봤을 때보다 저렴한 가격을 제시한다. 그 뒤에 가격을 흥정하는 것은 옵션이다. 찜만 해두고 나중에 가면 종종 이미 다른 주인을 만나 원하는 물건이 사라지는 부작용이 있다.


둘째, 남자 상인 여자 상인을 분별해라.

벼룩시장에는 오래되고 독특한 앤틱의 유럽 식기들이 많이 나온다. 아주머니 상인들은 그릇의 브랜드와 가격대를 뼛속까지 인지하고 계신다. 가격흥정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같이 있는 부부상인들도 접근해봤자 불리하다. 오직 남성, 그것도 나이 많은 어르신 분이 판매하는 제품들 중에 곁다리로 몇 점 진열해 놓은 그릇은 속된말로 ‘후려치기’가 가능하다. 심지어 다른 제품을 사면서 별로생각 없다는 듯이 무심한 말투로 “이건 얼마에요?”라고 물어보면 “1유로에 가져가요”등의 얘기가 나온다. 나는 ‘메이드인 저머니’가 정확히 쓰여 있는 예쁘고 아기자기한 그릇들을 그렇게 종종 벼룩시장에 들러 사 모았다. 


셋째, 격하게 감정을 움직여라.

마음에 드는 것은 과도한 반응으로 ‘내가 이 제품을 정말 사고 싶어요. 마음에 들어요’라는 눈치를 상인에게 어필한다. 그러면 우쭐한 상인이이 제품이 곧 팔리겠거니 생각한다. 그 때 아주 사소한 흠이나 불편함, 얼룩이나 오점을 발견하여 ‘정말 제품이 마음에 드나 작은 결점이 있어 구매가 고민이 된다.’는식의 반응을 보이면 직접적인 가격 흥정 없이 자연스럽게 가격은 내려간다.


물론 모든 상인들이, 모든 벼룩시장에서 동일하게 적용 가능한 팁은 아닐 테다. 그래도 십 회 이상을 독일과 영국에서 들르며 체득했던 얕지만 효과 만점의 행동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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