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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Mar 27. 2017

한심

[한심(寒心)]

: ‘한심하다(정도에 너무 지나치거나 모자라서 딱하거나 기막히다)’의 어근




 요즘 들어 부쩍 <해드헌터들>의 연락이 잦아졌다.

이메일로 문자로, 또 전화로 나에게 정말 좋은 자리가 있다며 이력서와 그 동안 내가 해 온 일들을 상세하게 기재한 일명 경력기술서를요구한다. 한참 회사를 그만두고 회사원의 생활로 돌아가는 것을 간절하게 바랬던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오히려 내가 해드헌터들에게 일일이 이력서를 보내며, 나는 이런 사람이고 저런 일을 원하니 적합한 포지션이 생기면 꼭 좀 연락을 달라고, 일종의 나에 대한 영업같은 느낌의 행위를 했었다. 대부분이 메일로 회신을 주거나 연락을 주는 것은 하지 않았다. 간혹 아주 소수는 메일로나마 지금은 나의 이력에 맞는 일자리가 없으니 나중에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한두 명 정도는 이력서를 달라고 했고 당시 나는 세 군데 정도의 경력직 면접에 참여할 수 있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서른 살의 나이에 그 동안의 일과 다른 산업으로의 경력 이동은 대한민국에서 쉽지 않았다. 원하는 일을 하려거든 경력을 깎고 연봉을 내리고 대리가 사원이 되어 들어가거나, 차라리 일하던 경력이 있는 산업의 기업에 취업하는 것. 어느 하나 내가 원하는 방향이라곤 없는 상황이었다. 모든 분야에서 <마이스터>가 인정 받는 사회도 아닌데 처음 사회의 첫 발을 내딛은 일을 평생 해야 하는 게 "당연한" 순리란 말인가. 


거기에 아주 친절한 해드헌터들은 여자로서 나이가 애매하다고, 결혼을 안 했으면 곧 결혼을 할 테고, 결혼을 했으면 곧 아이를 가질 테니 취업이 힘든 나이라고 했다. 어차피 경력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어디를 가도 일을 구하는 환경은 같겠거니. 게다가 나이에 대한 제약은 덜하겠지. 결국 이런 경험이 내가 독일로 떠나게 만든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해드헌터들을 여럿 겪어보다 보니 꽤나 여러 유형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방식의 소통이 그들만의 세계에서 일을잘하는 것으로 인정받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아는 건 본인의 일에 성향이 맞지 않는데도 그 일을 하고있는 사람들이 이 업계에도 적지 않다는 거다.


가령, 대뜸 전화를 걸어

"취업 하셨나요?" "최근 직장 경력이 언제까지로 보이는데 여태 구직활동을 안하고 계시나요?"

라고 물어보는 사람에게는 “당신은 일을 하는 방식이 아주 고약한 사람이군요. 아니면 일을 할 마음이 없거나.”라고 쌀쌀맞은 태도를 보이고 싶지만 사람 일은 어찌될지 모르는 거니 “아 네” 하고 마음을 숨긴다.


어떤 사람은 월요일 오후 여섯 시가 넘어이메일로 채용안내를 보내고 저녁에 전화를 하고 문자 메시지를 남기며 이튿날 아침 이메일을 확인하고 내일 오전 아홉 시까지 이력서를 보내 달라고 연락을 한다. 이게 연락인가 업무 명령이지. 나를 언제 봤다고.


호소형도 있다.

참으로 어이없는 유형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런 사람이었다. 내가 이번 채용 건에 정말 적합한 사람이라며 꼭 좀 지원을 해달라고 사정 아닌 사정을 한다. 당장 회사에 들어가 근무할 생각이 없다고 하면 그래도 지원만이라도 해달라고 전화통을 붙들고, 내가 <알겠다>고 말할 때까지 이야기를 이어간다. 한 번은 이력서를 보내고 이틀 만에 서류합격을 해서 면접을 봐야 한다고 연락이 왔다. 너무 급한 일정으로 연락을 준 탓에 하루 전날 면접에 갈 수 없으니 입사 지원을 취소하겠다고, 애당초 일 할 마음이 없었으니 칼같이 끊어 연락을 했다. 그러자 면접 일정을 하루 남겨두고 취소하는 게 어디 있냐며 되려 나의 회사 생활을 운운하기 시작했다. 이건 비아냥인가 협박인가를 생각 하다가도 결론은 이 해드헌터라는 작자는 내 자존심을 건드려서라도 나를 면접에 보내기로 할 요량이었던 거다. 그래도 면접은 참석하지 않겠다고 하자 몇 번을 전화하고, 이메일을보내어 끈질기게 면접을 가 달라고 호소하더니, 기껏 시간을 빼서 면접을 보고 나니 그 다음날에 <문자메시지> 하나를 보내왔다. 면접에서 떨어졌다고. 불합격의 이유는 들은 정보가 없어서 모르겠다고.

전화로 늘어지게 붙잡고 매달릴 땐 언제고.

유인/ 펜드로잉/일러스트

얼마 전 예전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언니들과 저녁을 함께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여자 셋이 종로에 있는, 예전에 즐겨 찾던 곱창 가게에 들러 막창 곱창 대창 할 것 없이 씹어댔다. 내가 독일에 가는 것을 보고 용기 내어 곧바로 회사에 사표를 제출하고 홍콩으로 떠났다는 홍콩홍 언니도 그 곳에서 회사를 다니다가 올 해 한국에 돌아왔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해외에 나갔고, 그 곳에서도 일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한국에서 취업하려면 해외에서의 경력은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말을 해드헌터로부터 들었다는 건 나와 홍콩홍 언니의 공통적인 짜증이 솟구치는 공통점이었다.


물론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일을 수행해나가는 해드헌터들도 분명이 적지 않을 것이고, 아쉽게도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이 아직 그들을 만나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먼저 해드헌터에게 이력서를 보내거나 일자리를 구걸한 적이 없다. 본인들이 먼저 연락을 한 것인데 <이게 어렵다>, <저게 힘들다>를 나에게 늘어 놓는 이유가 궁금하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나의 궁금증은 풀리지 않은 채 지금도 헤드헌터들의 한심한 공격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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