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속에 들어 있는 가느다란 심. 실제로 글씨를 쓰는 부분으로 흑연가루와 점토를 섞어 높은 열로 구워 만든다.
"어머 그거 점이야?"
"뭐?"
"아니 너 왼쪽 손등 끝에 있는 푸르스름한 것 말이야."
"아, 이거 연필심"
나이가 들어가는 속도만큼 머리 속 기억들이 사라져가는 속도도 빨라졌다. 일년전 오늘의 내가 무엇을 했는지를 기억해 내는 것은커녕 정작 어제 내가 점심으로 무얼 먹었는지를 한참 생각하고 난 뒤에야 "아, 맞아"라며탄성을 내뱉으니 말이다.
중학교 1학년 때 내 왼쪽 손등에는 연필심 조각이 하나가 박혀버렸다. 옆 자리에 앉은 친구가 수업 시간에 자를 대고 연필로 선을 긋는 데 힘을 너무 준건지 그 연필이 내 눈 앞에까지 피할 사이도 없이 다가왔고 그대로 내 손등을 스쳤다. 나와 옆 친구는 너무 놀라서 서로 쳐다보다가 양호실에 함께 갔던 기억이 난다. 양호실에 계신 선생님은 나의 손등을 보더니,이런 경우는 양호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가지고는 질리도록 보아 왔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냥 두면 다음 날이면 연필심이 손등 위로 올라올 테니 그 때 핀셋으로 빼면 된단다. 아프지는 않잖아?"라고 대수롭지 않은 듯이 나를 위로하듯 말씀하셨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새까만 연필심은 손등 위로 솟아오르지 않았다. 되려 하루하루가 지나갈수록 연필심이 박힌 자리 위로 새살이 돋아났고 까맣던 연필심은 새파랗게 어딘가에 부딪혀 멍이 든 것 마냥 변해버렸다. 스무 살이 넘어가니 대학 생활도 즐기고 연애도 하느라 바쁘다던 시간을 쪼개어 나는 외모의 구석구석을 살피고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캐내기 시작했다. 별 쓸데 없는 것들에 하나하나 연연해서 신경을 쓰느라 남들이 장학금 받고, 영어 점수 만점을 받는 동안 성적을 "우"를 받았다는 걸 지금의 글을 쓰며 곱씹는다.
어쨌거나, 그 때의 나는 잡티 없는 백옥의 피부가 유행이라며 열 개가 넘는 점을 뺀 친구를 따라 피부과에 들렀다. 얼굴에 난 도합 네 곳의 점을 뺐고 그러면서 의사 선생님께 손등에 있는 연필심도 제거가 가능한지를 여쭸다. 이게 왠걸. 수년을 나와 함께한 이 연필심은 그 위에 덮인 피부를 째서 뽑아 내는, 단순히 레이저로 점을 제거하는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피부를 째서 연필심을 뽑아 낸 뒤 또 찢은 피부를 꿰매어 꿰맨 자국이상처가 남지 않도록 돌봐야 한다. 상처가 남는다면 그것 또한 또 하나의 연필심이 될 것이 분명했다. 결국 나는 스무 해를 가까이 손등에 연필심이 박힌 채 살아가고 있다. 지금은 손등을 빤히 보지 않는다면 아주 가끔 주변의 사람들이 알아 채는 정도로 피부에 묻혀 형태도 희미하게 손등 깊숙이 가라앉아 있다. 그리고 누가 내게 언급하지 않으면 내 손등에 시퍼런 무언가가 꽂혀 있음을 인지하는 일도 없다. 통증도 없고 파상풍과 같은 감염도 없으니 말이다.
삼십 년이 넘는 세월을 걸어 오면서, 남들처럼 울고 웃으며 일희일비했던 많은 경험과 추억들이 기억 속에서 증발되었고 그 때 그날의 상처와 충격, 기쁨과 환호 따위의 내가 느꼈던 감정조차 지금의 나는 가늠할 수 없다. 지금까지 속상한 마음이 이어지지도 않았고 또 나에게 어둠이고 고난이었던 것들의 후유증도 없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감정의 기억도 사라질 것이고 내가 겪었던 사실에 대한 것만 간간히 기억하거나, 아니면 모든 사실과 존재에 대해 머리 속이 포맷되는 일이 일어날 수도있다. 그러니 현재에 마주친 것이 기쁨이 아닌, 슬픔과 불행, 아픔과 상처의 연속이라 할지라도 조금은 감정의 거리를 두고 무관심해질 필요가 있다.
어차피 잊혀질 걸.
또 어차피 무뎌질 걸.
내 손등의 연필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