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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Mar 31. 2017

혹독했던 겨울이 지나갔다



혹독했던 겨울이 이제는 끝이 난 모양이다.

작년 가을,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친구가 지냈던 옥탑방에 살게 되었고 그렇게 나는 난생 처음 <옥상생활>을 시작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기지개를 시원하게 펴고 현관 문을 활짝 열어 둔 채 물을 끓이고 또 원두를 한 움큼 갈아낸다. 진한 커피 향기와 함께 탁트인 시야에 들어 오는 저 멀리 우사단 길(나는 지금 서울의 이태원에 있는 작고 낡은 옥탑에서 생활하고 있다.)을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하는 게 내게는 여유이자 행복이었다. 12월이 오기 전까지 말이다.


<옥탑방>은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단점이 있다고, 그래서 집세가 저렴한 거라고 들어왔던 게 12월이 되어서야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저녁 7시만 되면 집안에 한기가 돌기 시작했고 아주 얇은 창문으로 둘러쌓인 거실은 맨발로 생활하기에는 금새 발가락이 얼어버릴 것 같이 싸늘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컴퓨터 두 대와 프린터기를 얻어 작업실 겸으로 거실 한켠에 두었던 컴퓨터는, 겨울이 하루하루 채워질 수록 코가 시리고 발이 춥고, 또 양 팔과 등이 싸늘해져서 오후 다섯 시가 지나가면 건드릴 엄두가 생기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내게 근래 삼 년간의 겨울은 독일과 영국에서 지내면서 온돌 설비도 없고 오직 방 한 켠에 붙어 있는 라디에이터 하나에 의지하며 보냈기에 사실 한국에서 겨울을 맞이하는 것에 걱정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주변에서 "온수매트를 장만해, 그게 겨울에는 그만이야." "보일러는 항상 세게 틀어둬. 난방 하지 않고 아프면 너만 손해야." 이런 얘기들로 내게 겁을 줬고, 그때마다 "네, 네"라며 영혼이 없는 대답을 뱉었다.



거실에 컴퓨터를 사용하는 작업 공간의 맞은 편에는 3인용 검정 쇼파가 있다. 나는 그 곳에 누워 책을 읽거나 저녁에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한 뒤 엉덩이를 쇼파의 제일 안쪽으로 쭉 뺀 채 편한 자세로 거의 눕다시피 앉아 맥주 한 캔을 벌컥벌컥 마시는 일을 즐겼다. 이 역시 겨울이 오기 전까지 말이다.


겨울이 온 뒤, 나의 생활의 여유를 담당해주던 모든 곳들은 내게 철저하게 외면 당하는 존재로 전락했다. 그저 일주일, 아니 이 주일에 한 번씩 마음 내킬 때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는데 그 때가 되면 잔뜩 먼지가 쌓인 검정 쇼파가 눈에 띄여 마른 걸레로 소복히 쌓인 먼지를 제거해 줄 뿐이었다. 옥상에 놓인 채 나의 티 타임과 지인들의 홈 파티 장소로 사랑을 받던 접이식 테이블은 비가 온 다음 날에 까맣게 먼지가 고인 물을 털어내줄 뿐이었다. 분명 가을에는 이곳에서 많은 행복과 여유, 위안을 느꼈던 내가, 이제는 <왜 내가 이렇게 청소를 해줘야하지? 사용도 하지 않는데?>라는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간사했다. 받을 때는 기분 좋아 하다가, 무언가를 받지 못할 때는 불만을 드러낸다.




청소를 해 주기만 해야 하는, 내가 받는 것 없이 주기만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거실에 놓인 쇼파와 옥상 위의 테이블은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기 시작하면서 내게 다시 커다란 행복을 주기 시작했다. 반소매의 옷차림이 어색하지 않다. 나는 다시 옥상의 테이블에서 아침의 진한 커피 한잔을 즐기고 저녁에는 거실에 있는 쇼파에 누워 책을 보고 또 잠이 들면 잠에 빠지기도 한다. 주기만 하는 사람, 받기만 하는 사람. 평생에 그런 사람은 없다.    


위안 @펜드로잉, 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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