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른 아침, 다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눈을 떴다. 몸을 일으켜야 하는데 유독 발 끝과 손 끝 할 것 없이 온 몸이 찌뿌둥해 그새 다시 눈을 감았다.
비가 오려나
이런 날이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나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기상청에서 일기를 관측하는 것이 천직이었을 라나?
나는 일곱 살 때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한 동네에 같이 살던 친구 자연이와 함께 신호등이 없이, 횡단보도만 덜렁 있는 찻길을 건너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우리에게 달려든 승용차에 부딪혔다. 나는 사고가 난 곳에서 고작 1m 남짓을 튕겨져 나가 바닥에 떨어졌지만, 안타깝게도 나보다 먼저 차와 마주친 친구는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가 이내 응급실에 실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어린 마음에 응급차에 실려가는 친구와 병원에 함께 가서 검사를 받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친구의 할머니의 권유에 그만, 나는 손사래를 치며 집으로 줄행랑을쳐버렸다. 그 때의 나는 샛노란 원피스에 하얀색 면으로 된 타이즈를 신고 있었는데 한 쪽 무릎이(왼쪽인지 오른쪽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벗겨져 새빨간 피가 발목까지 흘러 내려와 하얀 타이즈가 선홍색으로 물들어져 있었다.
집으로 돌아 온 내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엄마에게 나는 길에서 넘어졌다고, 그렇게 나는 거짓말을 해버렸다. 자동차에 치여 공중에 몸이 떠올랐다가 땅바닥으로 떨어진 이야기를 엄마에게 한다면 나는 결국 병원에 끌려갈 게 분명했다. 교통사고 이야기는 그 후 십수년이 지난 뒤에야 <그땐 그랬지>라며 남의 얘기하듯 엄마에게 가볍게 털어 놓았다. 엄마는 “네가 그래서 체력이약한가?”를 시작으로 무언가 내가 엄마의 성에 차지 않는 모습을 보여줄 때마다 “네가 그래서……”의 레퍼토리를 들먹이며 교통사고 후유증을 빙자하여 나를 종종 놀리곤 했다.
나는 <비가 오면 뼈가 시리다>,<오한이 온다>는 등의 교통사고로 인한 후유증에 대해 주위에서 들을 때에도 '나는 후유증이 전혀 없어.'라고 단호하게 언급했었는데, 서른이 지난 후에 뼈가 시리거나 한기를 느끼면서 온 몸에 붙어있는 근육들이 짓눌리고 누군가에게 두들겨 맞은듯한 느낌을 받는 날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장마철인 여름이면 양 손으로 항시 온 몸을 주무르는 습관이 생길 정도로 통증이 느껴졌다.
“그거 서른 넘어서 그래”
“나이 먹으면 다 그래”
몇 년 전부터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 이런 저런 이야기보따리를 풀다 보면 이십 대에는 꿈에서라도 해본 적이 없던 <체력>과 <건강>에 대한 화제가 이어진다. 그리고는 예전에 분명 교통사고 징후라고 들어왔던 것들이 나이를 먹으면 다들 겪게 되는 지극히 평범한 증상이라고 했다.
이제 나는 나의 교통사고 후유증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서른의 나이를 부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