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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Mar 30. 2017

미심

[미심(未審]

일이 확실하지 아니하여 늘 마음을 놓을수 없음.




빵 먹자


엄마가 한 손에는 포크를 다른 한 손에는작은 앞 접시를 들고 식탁에 앉았다. 오 분 전 쯤에 나는 엄마에게 커피를 마실 건지를 물었다. 그리고 엄마의 대답에서 왠지 모르게 “응 난 곧 네 아빠가 어제가져온 빵을 먹을 테니 커피가 필요해.”라는 느낌을 받았다. 역시. 식탁 한 켠에 놓인 아빠가 밖에서 지인들을 만나 선물로 받은 제주 한라봉이 들어 있다는 롤케이크 상자를 열었다.


이미 엄마는 어제 저녁에 한 번, 오늘 아침 일찍 한 번 이 롤케이크를 맛봤다고 했다.

약 때문인가. 입맛은 없는데 배는 고프네. 이상해 정말로 입부터 여기, 그래 여기까지는 뭘 먹어도 부드럽게 넘어가질 않는데 말이야.


엄마가 손으로 가리킨 곳은 목보다 살짝 아래. 명치라고 불리는 곳 같았다. 항암 치료를 시작하고 입맛이 변했다고 했고 뭘 먹어도 맛이 없다고 엄마는 으레 적잖은 투정을 늘어 놓았다. 그럴 때면 조금의 미안함이 찾아왔다. 나는 엄마가 입맛이 변한 것도 몰랐고 예전의 입맛에는 어떤 음식이 맞았는지도 몰랐다. 아니 알려고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었던 거 같다. 입맛이 없어도많이 먹을 수 있는 건 좋은 거라며 괜한 말로 엄마를 안심시켰다.

커다랗게 칼로 롤케이크 한 조각을 썰어 엄마에게 건넸다. 엄마는 역시 입에 부드럽게 감기지 않는다며 입맛이 변했다고 했다.


빵 먹는데 열중해 있는 엄마와 마주앉아 있던 나는 무심코 빵이 들어 있던 노란색 상자를 들어 휙휙 돌려가며 뭐라고 쓰여있나를 찾아봤다. 그리고 제품 성분표에 까마득히 쓰여있는 태어나서 처음 듣는 첨가제들을 보니 음식이 먹음직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엄마의 알 권리를 생각하며 조용히 첨가물들의 이름을 상자에 쓰인 순서대로 하나하나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엄마의 미간은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어머’ ‘어머’라며 감탄, 아니 탄식이 한동안 이어졌다.


어쩐지, 입맛이 바뀐 게 아니었어.


엄마는 포크를 내려 놓았다. 외롭게 남겨진 빈 접시 위에.


올 봄에도 엄마와 함께 할 수 있어서 고마워. @봄/ 펜드로잉/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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