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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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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Apr 01. 2017

나의 두 번째 파리(Paris)




 11월의 시작은 설렘. 나와 홍차공주(독일에서 함께 살던 플랏 매이트), 그리로 학교 후배까지. 이렇게 세 명이 아침 일찍부터 프랑크푸르트 국제 공항에 즐비한 렌터카 대여점에서 자동차 한 대를 빌려 콧구멍에 바람을 넣으러 떠났다. 이웃 도시, <파리(Paris)>다. 회사를 나와 지난 8월에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혼자만의 여행을 떠났던그 곳을 두 달 여 만에 다시 가게 되다니. 가슴이 벅찰 뿐이다. 가을의파리는 어떤 느낌일까?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고속 열차 <떼제베(TGV)>를 타고 족히 세 시간이면 파리에 도착한다. 서킷에서 경주를 펼치는 자동차처럼 살짝 광기까지 느껴질 법한 운전수들이 즐비한 악명 높은 독일의 아우토반을 따라 ‘쉼’ 없이 달리면 5시간 40분 정도가 소요된다. 거의 배가 되는 시간이지만 즉흥적인 여행에 왕복 교통비로 1인당 150유로(한화 20만원)를 허비하는 국제적 호구가 되지 않으리라는 다짐으로 우리는, 선택의 여지 없이 렌트다. 주유와 프랑스의 고속도로에서 쓸데 없이 자주 내야만 하는 톨게이트 비용, 차량 렌트 금액까지해도 선선한 날씨에 낭만이 가득해진 도시의 풍경 탓에 한껏 달아 오른 파리행 열차 티켓의 절반도 되지 않는 비용이었다. 우리 셋은 아침 일찍 출발해서 점심은 파리에서 먹기로 얘기한 터라 새벽 6시에 눈곱만 떼고 약속 장소인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향했다. ‘똑’소리 나는 후배는 고속도로에서 먹고 마실 양식과 알찬 선곡의 음악을 준비해뒀다.독일에서 운전할 지 모른다며 국제운전면허증까지 발급 받아온 미스(Miss) 장롱면허, 나로 인해 장장 열 두 시간의 운전을 해야 했던 후배는 힘든 내색도 없다. 분명 힘든 내색을 격하게 드러냈어도 내가 알아채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침의 맥주 한 잔이 어색하지 않은 나라, 독일

 아침에 아우토반을 쌩쌩 달리고 있는 자동차의 창문을 7부 정도 슬며시 내리고 코인지 입인지, 어딘가로 들어가는지 모를 맥주 마시기의 짜릿함을 느낀 건 수 십 년은 기억될 테다. 우리는 이것을 ‘모닝맥주’, 일명 ‘모맥’이라 불러대며 아우토반에서 속도를 못 이겨 하늘거리는 차가 떠나가라 깔깔댔다. 휴게소에 들러 커피도 한 모금씩 탐했다. 독일은 어쩜 이렇게 휴게소에 있는 자판기 커피도 맛이 좋은 걸까. 무턱대고 내뱉는 나의 무조건 적인 독일 추앙이 아니냐고 해도 별 수 없다. 아마도 ‘모맥’ 덕분에 미각이 무뎌진 걸 수도.



봉주르 파리. 점심 때가 되어서야 파리에 입성했다. 차를 대고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파리 시티투어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이게 왠 걸. 골목길이 굽이굽이 한 파리에서 주차 공간을 찾기란 사막에서 바늘 찾기와 같다는 걸 우리는 미처 몰랐었다. 호텔 근처에서 여덟 바퀴를 뱅뱅 돌다가 멀리 움직이는 차를 보고 그대로 돌진해버렸다. 눈앞에 지상 낙원이 가득 차 있는데 뛰어 놀지 못하고 조그마한 자동차에 갇힌 채 바라보고만 있는 사십 분은 열 곱의 시간과도 같게 느껴진다. ‘어서 탈출해야지’‘밟아, 밟아.’ 드디어 사십 여 분 만에 무사히 주차를 마쳤다. 이것도 나름 선방한 거라 셋이 위안하며 속사포로 호텔 체크인을 마쳤고 어딘가에서 우리에게 나 좀 잡숴 달라고 외치는 비스트로(Bistro)를 찾았다. 분명히 호텔을 예약할 때에는지도 상에서 파리의 젖줄인 <세느강(Seine)>에 가까웠는데 아무리 걸어도 세느강은 좀처럼 보일 기미가 없다. 우린 대체 무슨 지도를 어디서 본걸까.

 

늦은 점심을 먹고 세느강을 찾아 무작정 걷다 보니 파리의 젊음과 예술의 공간,< 마레(Marais)>지구가 나타난다. 거리 곳곳에서 눈에 띄는 풍요로운 패셔니스타들을 오랜만에 보니 새삼 기분이 얼떨떨하다. 흔히 하는 말로 ‘독일은 패셔니스타가 없다’‘독일은 스타일이라는 표현을 꺼내기가 쉽지 않다’는 둥, 베를린을 제외한, 독일의 패션을 철저하게 공격하는 이십일 세기에, 불과한 달이라도 조금이라도 머물러 본 나는 격하게 공감한다. 피복은 몸을 보호하기 위해 착용하는 것이라는 정의로 인지되는 독일에 처음 도착하였을 때, 경악을 금치 못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길거리에 나를 스치는 모두가 특정 행사를 치르느라 단체복이나 유니폼을 입고 있는 줄 착각하기도 했다. 검정, 검정에 가까운 잿빛의 옷,그것도 남녀 구별 없이 모자가 달린 일명 ‘바람막이’ 점퍼를 입는다. 독일의 지극히 평범한 분위기에 젖어 있다가 넘어온 곳이 프랑스 파리, 그것도 패션과 트렌드의 지역인 마레지구에 도착하니 눈이 호강하기 보다는 괜한 어지럼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독일 생활 한 달이면 패션을 향한 의욕도 무너지고 마는 것인가. 아직 시집도 안간 처녀에게 위기감이 밀려온다.

 


불안함을 떨치려 패션의 거리를 벗어나 조금 더 걸어가니 멀리 노트르담 성당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제야 눈 앞에 펼쳐지는 익숙한 풍경에 ‘아, 파리구나.’를 느끼고 새삼 안도한다. 불과 몇 달 전 여름, 계란 한판의 나이에 처음으로 만났던 푸르름이 가득한 파리와 가을의 파리는 또 다른 느낌이다. 바닥에는 온통 낙엽이 그득했고, 하늘은 더욱 높고 파란 모습이다. 나를 스치는 수많은 사람들의 옷깃을 여미는 모습도, 답답함에 외투를 벗노라면 슬며시 팔과 다리에서 느껴지는 한산함도 내게 가을을 느끼게 했다. 몇 달 전과 지금 나의 여행의 목적이 바뀌었고, 혼자가 아닌 여럿과의 여행, 게다가 ‘낯설지 않은 도시’가 되어 버린 파리가 나쁘지만은 않다. 처음 느꼈던 설렘이 편안하고 푸근한 느낌의 파리가 되어버린 건 내게 또 다른 묘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나는 한국에서 매 달 꼬박 월급을 받아가며 유럽인들보다 평균 1년에 100일을 더 일한다는 평범한 직장인에게, 2박3일 짬을 내어 여행을 할 수 있는 건 일본, 중국, 홍콩, 대만 뿐인줄만 알아 온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의 청년이다. 그런 내가 유럽에 머물다 보니 휴일 아침에 잠깐분주하게 집을 나서면 충분히 하루 만에 파리에서 오믈렛을, 빈에서 야경 감상을, 런던의 <리젠트 스트리트(Regent Street, 시내 한 복판의패션 중심지)>에서 쇼핑하는 것 까지가 가능함을 경험했다. 매번 커다란 짐 가방을 가지고 머뭇거리며, 공항 카운터에서 티켓 발권해주는 직원의 눈치를 보면서 이 짐을 더 가져갈까 저 짐을 뺄까 하는 시늉을 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일주일. 길어야 고작 열흘 정도의 시간을 가지고 유럽 땅에서 ‘내일은 어느 도시로 넘어가지?’‘다섯 국가는 다녀봐야지’ 하며 발을 동동대지 않아도 된다는 게 유럽 생활의 묘미 중에 하나이지 싶다. 서울에서 부산을 왕복하는 KTX 요금보다 저렴한 교통비로 유럽에 내가 원하는 대로 여행 지도를 그려나갈 수 있음에 여행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주말이 되면 엉덩이가 들썩이는 걸 느낀다.

 

세느강 변에 위치한 영화 <비포선셋>의 배경이 된 서점에 들렀다. 에단호크와 같은 생김새의 낭만이 넘치는 남성과의 운명적인 순간을 만나게 되지는 않을까 그 짧은 순간에 나도 모르게 머리 속으로 단편 소설을 써 내려갔다. 엄청난 양의 책들이 쌓여 향긋하지 않은 헌책방의 냄새가 물씬 나는 듯한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의 시간은 애인이 없어도 외롭지 않은 낭만을 선사한다. 


한 시간쯤 있었을까. 파리의 낭만을 운운하는 것도 잠시. 갑자기 쏟아 치는 장대비에 메뚜기처럼 이 가게 저 가게의 처마 밑으로 뛰어들었는데도 내 머리는 물 속에서 바로 집어든 미역줄기 마냥 되어버렸다. 감성을 뒤엎은 억센 빗줄기를 한 시간은 족히 맞았으니 정신이 온전할리 없다. 빗속을 뚫고 겨우 도착한 호텔에서 뜨거운 물을 콸콸 틀어두고 일단 온 몸을 씻고 본다. 호텔 옆 이탈리안 피자가게에서 참치와 엔초비 피자를, 마트 구경을 하겠다고 낮에 들린 모놉에서 산 6유로(8천원)짜리 프랑스산 와인을 함께하는 저녁의 맛도 느껴지지 않는다. 씻고 쉬었고 또 배도 채웠으니 이제는 에펠탑 야경을 보러 갈 차례라며 홍차공주와 후배 놈이 나갈 채비를 꾸렸다. 노곤해진 두 눈이 하얀 시트가 깔린 침대로 향하고 보니 도저히 한 발짝도 호텔 방 밖으로 내밀 수 없음을 내 머리가 말하고 가슴이 말하고 입술이 말했다. 결국 피 끓는 젊은 남녀 둘을 보낸 채 얼마나 잠들었는지 모르는 긴 잠에 빠져버렸다. 

 


“킴, 일어나요. 아침 먹어야죠”

“으……응?”

“아침이니까요. 어제얼마나 잔 거에요?”


이런. 한 두 시간 눈을 붙이겠다는 것이 아침까지 이어지다니. 휴대폰 액정에는 아쉬움이 맺힌 메시지가 여러 통이다. 몇 달 전 파리에서 인연을 맺은 무정하게 심심한 요리사, 지인의 퇴근 시간에 맞추어 밤에 잠깐 만나기로 한 걸놓치다니. ‘어디서 볼까?’‘언제 오니?’‘어디니?’‘설마 자니?’‘일단 집으로 가 있을 테니 메시지 보면 연락 줘’ 실컷 잘 자놓고 아침에 일어나 엄한 휴대폰 액정만 뚫어져라 본다. 잠이 들어 연락을 못했다는 자초지정의 메시지를 보내고 오후에 파리를 떠나기 전에 샹제리제 거리에있는 맥도널드에서(샹제리제거리에서 유일하게 무료로 무선인터넷을 즐기는 곳으로 여행객에게 유명하다) 잠깐 보자는 말을 덧붙였다. 




전화나 데이터 사용이 원활하기만 하면 좋으련만. '데이터 로밍 무제한 서비스'를 신청하고 가져온 한국 유심(USIM)은 야속하게도 자꾸만 네트워크 오류가 났다. 오로지 무선 인터넷이 가능한 장소에서나 메시지를 확인하고 보낼 수 있다니, 오전 내내 나는 파리의 좀비처럼 휴대폰을 들고 와이파이를 찾아 헤맸다. 세느강 근처 카페에서 오믈렛 브런치를 먹었다. 아니 마신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이만하면 단체 여행에 나는 민폐 대마왕으로 등극이다. 더 이상의 민폐를 끼치지 않겠다며 샹제리제 거리 한 복판에서 억지로 일행을 밀쳐보냈다. 이때부터인지 어젯밤 에펠탑을 보러 간 때인지 모르나 둘만의 시간을 계속해서 부추긴 덕분인 걸까. 이년 뒤 이들은 연인이 되고 부부가 되었다. 그렇거나 말거나 약속 시간이 한참을 지나도록 요리 남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한 시간 남짓의 기막힌 날씨의 파리에서의 시간을 관광객들만 북적이는 맥도널드에서 초점 없이 휴대폰만 바라보며 기다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남은 시간은 나를 위해 보내리. 지금 있는 개선문 근처의 샹제리제 거리 초입에서부터, 느긋하게 <콩코드(concorde)광장>까지 걸어가 튈르리 정원에 벤치에서 누워 있다 가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엉덩이를 뗄 쯤에야 이런 내 생각을 어떻게 알고 왔는지 그렇게 어긋나던 지인이 마침내 등장했다. 그저 반갑구나. 그렇게 얼굴 마주 보고앉아 커피 한 잔 하며 웃다가 떠들다가를 반복하고 나니 어느 새 한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파리를 떠나는 평범한 이방인의 감정은 감칠맛이 아닐까.‘조금만 더’라는말 한마디로 아쉬움을 토로했다. 꿩 대신 닭으로 루브르 옆 티하우스 <안젤리아(Angelina)>에 들러 기적의 맛인 마카롱과 몽블랑, 레몬타르트를 담은 상자를 가슴에 안은 채 위안 삼아본다. 11월의 파리는 코 끝 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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