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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Apr 07. 2017

축제의 열기, 암스테르담에서의 어느 멋진 날

 




 눈을 뜨니 여유로운 아침을 또 다시 찾아왔다. 보통의 어느 여행에서도 아침에 그 날의 일정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아침을 맞이한 적이 얼마나 됐을까. 시간이 조급하지 않고 마음이 편안하고 든든한 사람이 있어서인가 싶다. 어제 밤에 알버트하인에서 가져온 식재료로 휘리릭 양양이 아침을 차렸다. 커피부터 내려 둔 채, 크로아상은 오븐에 살짝 굽고, 딸기는 손으로 낼름낼름 집어 삼키기 좋게 꼭지를 다 떼어내고 샌드위치는 먹기 좋게 두 조각으로 썰어냈다. 훈제 연어는 반찬 삼아. 네덜란드/네덜란더라는 제목만으로도 흥미를 충분히 유발하는 책이 우리의 아침 식사의 화젯거리였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기상천외한, 유쾌하면서도 단결된 이 나라 사람들의 모습들이 튀어나온다. 그 동안 생각도 하지 않던 내 머릿속 관심밖의 국가 중에 하나였던 더치가 이렇게 인생의 나라, 도시의 상위 리스트로 등극하다니.


오늘의 일정은 오로지 하나였다. 내가 영국에서 이 곳에 오기로 정하자마자 양양이 보내준 페스티발 정보가 하나 있었으니 이름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김치 페스티발"이라니.  네덜란드도 한류 붐이 있나?싶었다. k-pop 콘서트와 같은 느낌이 불현듯 들어, '암스테르담까지 와서 한국 가요에 맞춰 춤을 춰야 하나?' 슬그머니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다행히도 다양한 로컬 양조장의 맥주들을 만날 수 있고, 즐거운 공연에 맞추어 춤도 출 수 있는 말그대로 "페스티벌"이었다. 축제는 밤까지 계속 된다고 하니 우선 시내 한 가운데 있는 공원에 가서 햇볕을 쬐고 느리게 걸음을 걸어보기로 했다. "날씨가 이게 뭐야 우리 축제를 즐겨야 하는데." "곧 개일거야."이런 대화를 나누며 트램을 타고 공원에 가니 정말 거짓말처럼 흐리던 하늘이 걷히고 맑은 하루가 이어졌다. 이러니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도시인가.




전날 <알버트하인>에서 사온 크로아상과 샌드위치, 거기에 양양이 아껴둔 딸기와 연어를 내어 진한 커피와 함께 풍성한 아침이 주어졌다. 네덜란드와 네덜란드 사람들에 대한 사진책과.


Vondel Park(폰델파크)

암스테르담 시내 중심, 국립미술관 바로 옆에 위치한 47헥타르의 도심 속 공원은 얼마나 이 곳 사람들이 공원을, 자연을 사랑하는지를 보여주는 곳이다. 연간 1천만 명이 이 곳을 방문하고 공원 곳곳에서 여름이면 매일매일 공연과 연극, 이벤트 등이 끊이지 않는 암스테르담의 네버엔딩 페스티벌 스폿 중에 하나이다. 가족이 연인이 친구들이 또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수많은 사람들이 공원을 가득 매우고 있었다. 커다란 연못이 중앙에 있어 그 주위에 같이 온 일행끼리 앉거나 누워서 햇볕을 즐기고 분위기에 취한건지 weeds에 취한건지 모르게 다들 온화한 표정들이다. 탁트인 공원에서도 역시나 가는 곳마다 자주 맡을 수 있는 위드와 하쉬 향.


해도 나왔겠다, 시간도 무르익었겠다 이 쯤이면 축제에 가도 되겠다 싶어 오후 4시쯤이 되어서야 북쪽으로 향했다. 어제 <아이(eye)>와 <아담타워(A'dam Tower)>에 가기 위해 들렀던 곳에서 열리는 <김치 페스티벌(Kimchi Festival)>. 정말 어딜가든 꼼꼼히 찾아보고 계획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우리는 센트럴에서 <페리(Ferry)>를 타고 북쪽에 넘어가 삼십 여 분을 걷고, 이길이 아니다 싶어 버스를 타고, 성격 급한 내탓으로 꽤나 텀이 있는 한 정거장 전에 내려 또 걷고. 그러다 보니 5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우리 이러다 축제 다 끝나고 가는 거 아니야?"


"맥주 없는 거 아니야" "맥주는 커녕 젊은 더치들의 모습도 안 보이는 거 아니야?" 별별 생각을 토해내며 걷다보니 멀리에 축제 간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분명 한 100M는 걸어야 할 듯한데도 땅을 통해 "둥 둥 둥 둥" 미세한 진동을 통해 느껴지는 음악으로 인한 전율은 잠시나마 막이 내린 축제를 상상했던 우리의 사소한 걱정을 한걸음에 날려버렸다.   


걸어 가는 길에 보니 바로 근처에 커다랗게 마켓이 열렸던 거 같은데 6시가 영업 종료인지 모두들 짐을 정리하느라 분주해 보였다. 어떤 물건들을 팔고 어떤 분위기에 마켓일지 모르니 '조금만 일찍 와서 구경할걸'이라는 아쉬움도 없었다.




김치페스티벌

암스테르담 이쪽 저쪽에 흩어져 있는 맥주 브루어리들이 한데 모여 한 여름의 축제를 열었다. 양양 말로는 여름이 찾아 오면 암스테르담은 매일 매일이 축제라고 하는데 동시 다발적으로 다양한 컨셉의 행사들이 이어진다. 몇 년 사이에 갓 조성하고 만들어 낸 게 아닌 오랜 시간을 주최해가며 프로그램을 보완하고 개선하니 한 여름의 열기는 또 하나의 네덜란드, <암스테르다머(Amsterdamer)>를 표현하는 문화가 되어버린 것 같다. 


김치페스티벌은 멋짓 음악과 그 속에 네덜란드의 자부심이 가득한 에일과 축제를 찾는 이들의 다양성을 고려한 음식이 시간을 풍성하게 하는 소박한 규모의 축제였다. 입장료가 있고 현장에서도 티켓을 구매하여 입장이 가능하나 양양이 사전 인터넷으로 등록하여 우린 매표소에서 기다림 없이 빠르게 들어갈 수 있었다. 1개에 2유로인 노란 코인을 구매해서 코인으로 여러 부스에 흩어져 있는 맥주와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어느 맥주건 종류와 관계없이 입장을 할 때 1인 1잔 무료로 제공 받은 맥주잔을 이용해서 맛 볼 수 있고 가격은 코인 하나, 2유로이다. 감질나게 하는 자그마한 300ml 잔에 온 갖 브루어리 맥주는 돌아가면서 다 마셔 보자며 나와 양양은 코인을 셀 수 없이 구매했다.  


<오이디푸스(Oedipus)>는 이 곳에 있는 유명 브루어리 펍 이름이고, 우린 김치페스티벌이 열리는 장소가 그 곳인줄 알고 찾아 갔다가 한 시간을 헤맸다. 막상 축제가 열리는 곳을 찾아 들어오니 자연스러운 라이브 보사노바 공연에 흐름에 맞춰 하나같이 한 손엔 맥주 잔을 들고 어깨와 허리, 엉덩이를 슬쩍슬쩍 흔들고 한쪽 발을 바닥에 "탁 탁" 쳐대며 즐거움을 만끽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맥주 맥주, 얼른 맥주부터 마시자"


현금 또는 카드 결제가 가능한 하나당 2유로인 코인. 카드 결제는 네덜란드 데빗카드와 신용카드만 가능하다고. 내가 가지고 있는 영국 데빗카드, 한국 데빗카드, 한국 신용카드 모두 시도해보다 도저히 안되어 나와 양양이 가지고 있는 현금만 탁탁 털어서 세 번은 충전했다.




라이브 보사노바 공연은 축제를 이끌어가는 엔진이었다. 처음엔 한 손에 맥주 잔을 들고 발이나 손으로만 리듬을 맞추던 사람들이 하나 둘 씰룩씰룩 온 몸으로 음악을 느끼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렇지, 나와 양양도 신이 났다. "언니, 가사가 무슨 뜻이야?" "응?모르겠어. 기억이 안나." 아 놔. 8년 쉰 포르투갈어는 머릿 속 회로가 기억을 끄집어 내기에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에 반해 야속한 노래는 너무 빨랐다고. 스페인어과 나와서 스페인어 안하는 양양과 포르투갈어과 나와서 브라질 다녀와서 포르투갈어 노래 가사하나 해석하기 어버버 하는 나나. 아무렴 어때 여긴 네덜란드이니까. 


배고프다고, 먹을 게 없을까 둘러보니 김치페스티벌 이름에 걸맞는 <김치볶음밥>과 <LA양념갈비>를 판매하는 네덜란드에서 꽤 오랜 시간 김치를 만드셨다는 '오나미 할머니'네 부스는 기다림의 미학이 필요하니 다음. 패티 빵빵 버거?음. 좀 더 가벼운 게 없을까? 하고 돌아다니다 보니 한켠에 네덜란드 스낵을 파는 곳이 있다. 우리는 '손이 가요 손이 가' 노래나오게 하는 '비터 발렌'과 바베큐 윙을 주문했다. 주문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은 건지 결제하고 받은 진동 벨이 삼십 분 동안 울지 않아 부스에 다시 가져가니 3분 만에 주문한 음식을 받을 수 있었다. 뎃츠 롸이트. 괜찮다. 괜찮다. 실수하고 사과조차 하지 않는 서비스를 가진 게 유럽에서 어디 여기 뿐이겠니, 괜찮다. 접시까지 포크로 긁어 먹게 했으니 괜찮다.


분명 맥주도 계속 리필해서 마시고 이것 저것 먹어댔건만 춤을 춰대서 그런지 소화가 다 되어 버렸다. 먹은 음식은 춤에 대한 나의 열정에 보답이라도 하듯 증발해버린건지 배고 고팠다. "우리 저 LA갈비 먹자." "쪽쪽 쏴압"해서 뼈만 발라내는 신비로움을 더치들에게 보여주자는 마음으로 살짝 줄이 빠질 때 쯤 '오나미 김치'부스에 가서 양양이 음식을 주문해 왔다. 유럽에서 이 귀한 깻잎 한장에 양배추, 꾸스꾸스로 요리한 김치볶음밥과 즉석에서 바베큐 화로를 두고 구운 "Char grilled Beef Rib" 엘에이 갈비는 어느 집에서 먹거나 부페에서 집어 먹어도 맛이 한결같다. 역시 이 곳에서도 엄마의 맛이 난다. "쪽쪽 쪼오오오옥 쏴아아압". 우리는 뼈만 깔끔하게 남겨주는 진기명기를 보여줬다.


부스 양 옆에 커다란 김치 기둥을 세워 두고 요리하는 '오나미김치' 공교롭게도 성함이 개그우먼 오나미님과 같지만 이 곳에서의 위상은 어마어마한 듯 하다. 축제가 끝나가는 때에도 한국의 맛을 즐기려는 더치들의 줄이 끊기지 않으니 내가 뭐라고 감히 뿌듯했다.  






옮겨다니며 맥주 한 잔에 맛있는 음식들도 먹고 멋드러진 음악에 춤도 춰가면서 이 도시의 색채를 느끼는 시간을 보냈기에 좋았다. 그 속에서 유쾌해지는 젊고 커다란 더치인들과도 같이 춤도 추고 이야기도 하고, 하다 못해 페이스북 친구도 맺고 같이 페리(FERRY)를 타고 센트럴까지 건너오는 재미진 추억까지 가질 수 있었다. 뼛 속까지 더치 3인과 더치 못하는 한국인 1인, 암스테르담에 적응한지 10개월도 채 안된 한국인 1인이 영어로 무슨 얘기를 얼마나 했겠냐 할 수도 있지만 얘기를 하면서 느끼는 건, 그냥 전혀 다르지 않은 젊은 지구인들의 평범한 대화일 뿐이다. 본인들이 하는 영어에 조금씩 네덜란드어의 강세가 묻어 나오는 걸 그들은 웃으면서 <덩리시(Dutch + English)>라고 스스로 디스했다. 정치 쪽에 관심이 있는 한 친구는 아시아 여러 국가를 통틀어 여행을 하며 한국에도 들렀고 심지어는 북한에도 들렀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단지 2주 정도 머물렀다는 한국에 대한 예찬론을 펼치기도 하고, 서툴지만 수많은 서바이벌 한국어도 읇조리는 게 어찌나 인상 깊던지. 랜선 친구라지만 계속 친구로 남겨야겠다.



집으로 돌아왔다. 왜 이렇게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지. 나의 마지막 암스테르담에서의 밤은 석류 주스에 뛰어 든 소주를 낮에 축제에서 받은 잔에 따라 축배를 드는 것으로 마무리 됐다. 마지막 밤은 화려한 조명이나 시끄러운 음악의 뜨거움은 없었다. 이번 여행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가져 갈 이야기에 대해 생기발랄한 모짜렐라 치즈와 루꼴라, 새빨간 토마토, 신선한 채소가 가득인 알버트하인 샐러드와 함께 씹어 삼키며 느긋하게 여자 둘 만의 여유를 가졌다.  




다시 또 안녕

돌아가는 날 아침에 하늘은 유독 맑았다.


아침에 일어나 가볍게 씻고 나를 위해 오전 반차를 쓴 양양이 버스를 타는 역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다행히 양양 집 근처에서 한 번에 갈 수 있는 버스 노선이 있어서 여유있게 준비를 하고 나왔다. 플랫 메이트의 아들을 마주쳤다. 아직 어려서 영어를 모른다는 아이는 내가 "헬로우." "안녕" 뭐 이것 저것 섞어쓰자 일단 물끄러미 내 얼굴을 쳐다 보더니 경직되다가 웃는 것을 반복했다. 정말 귀엽게 생겨서 마음같아서는 "아이고"하면서 밤톨처럼 깎아 놓은 아이 머리를 쓰윽 문질러 보고 싶었으나 아침 밥을 준비하는 더치 아빠가 바로 옆에 있어서 용기를 낼 수는 없었다. 처음 보는 까만머리 오징어 이모가 낯선지 아이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뒷걸음질 치고 앞으로 갑자기 콱 점프를 하며 뛰다가 유리 문에 이마를 부딪치고 혼자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190cm가 훌쩍 넘는 아빠가 한 걸음에 아이에게 다가가 한쪽 팔로 아이를 안아 달래기 시작했다. 난 아이에게서 한 10M 떨어져 있었고 그 자리에 아이 아빠가 있었으니 내가 아이를 울린 게 아니라는 건 명명백백했지만 괜히 미안했다. 내가 집을 나서기 전까지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잘 있겠지 뭐 설마 여태 울까.  



영국에 있는 동안 마지막 여행이 될 이번 여행을 마무리하며 버스 시간이 사십 분 남짓 남아 바로 근처 까페에 들러 화장실도 가고 에어드롭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마지막까지 빡빡 긁어 보내고 커피 한 잔에 양양과 헤어짐을 얘기했다. 독일에 있고 영국에 있을 때 양양도 그랬고, 지인들이 찾아 오고 같이 여행하고 그들을 떠나 보낼 때의 내가 떠올랐다. 남는 사람 그리고 떠나는 사람의 감정은 같을까. 


예전에 브라질에 학생 신분으로 머물렀을 때 마지막에 브라질 엄마네 집에서 홈스테이를 몇 개월 했었다. 처음 홈스테이를 하게 된 엄마는 내가 떠나게 됐다고 얘기한 날 부터 내가 떠나는 날까지 잠을 쉽사리 이루지 못했고 한 번은 내 앞에서 커다란 눈에 눈물을 그렁이며 우셨다. "빠찌(Patti,브라질식 발음), 네가 떠나고 나는 한 동안 너와 함께 한 기억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거야. 나는 혼자 사는 게 익숙했는데 너를 만났고, 너는 영국에 가 있는 내 딸을 대신해줬어. 네가 떠나면 나는 다시 혼자이고, 내 딸은 아직 영국에 있어. 내가 딸을 생각할 때 나는 당분간은 너를 생각할 거야." 이번엔 내가 떠나가는 사람이 되었다.







버스를 타고 벨기에와 유로터널을 지나 영국으로 돌아왔다. 이번 여행에서 관광지라고는 기차를 타고 페리를 갈아타기 위해 들른 센트럴 광장이 다였다. 여행을 즐기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고, 나는 그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움직이는 도시의 모습을 탐색하는 걸 좋아한다. 가슴 누그러트리고 쉴 수 있는 휴가지 보다 바쁘게 움직이는 도시 구경에 매력을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암스테르담 여행은 만족도 100%의 시간이었다.


2013년부터 지금까지 2년 반 정도는 독일과 영국에 머무르면서 주변 국가들을 적지 않게 여행했었다. 오로지 내가 가 보고 싶고, 내가 먹고 싶고, 내가 느끼고 싶은 무언가를 위한 여행이었기에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여행 상품과 다른 사람들이 짜 놓은 여행 코스와는 비슷하기도 또 전혀 다르기도 했었다. 오래된 건축물과 문화 유산으로 여행객들에게 유명세를 치르고 있으나 정작 죽은 도시처럼 생동감이 없이 관광객만을 위한 기념품 샵과 레스토랑으로 채워진 도시도 있었고, 가슴이 벅차게 느낌 좋은 곳이지만 관광 산업이 전혀 발전하지 않아 주위 사람들에게 쉽사리 추천하기 어려운 곳도 있었다. 똑같은 도시인데 매 해 수많은 상점들이 문을 열고 닫기를 반복하고 유행의 트렌드를 따라 번화한 지역이 빠르게 바껴가는 모습을 파악해가는 것도 같은 곳을 여러 번 들르게 되는 이유 중에 하나였다. 나에게 여행은 내가 모르던 또 다른 세상을 보고 느끼고 어쩌면 조금 더 나를 겸손하게 만들 수 있는 체험 활동이 주를 이루는 교육의 일환이다. 그 시간들은 적어도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순간들의 조합이 되었고,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그렇게 나는 혼자 떠났고 둘이 여행했고 다시 혼자가 되어 돌아왔다. 안녕 암스테르담.


 

그동안 가이드 하느라 고생한 양양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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