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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Apr 20. 2017

안녕, 하이델베르크


생일기념 맞춤 코스

콧구멍에 파리의 낭만 공기를 잔뜩 넣고 온지 어느덧 한달. 주기적으로 들썩이는 엉덩이 덕에 또 한번1박2일 광란의 나들이를 떠올린다. 최근 들어 나에게 초미의 관심사가 된두 가지에 초점을 맞춘 맞춤형 코스를 직접 준비한 맴버들. ‘아울렛’과 ‘교외 나들이’를 테마로 한일정은 강철체력이 준비물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독일 최대의 아울렛인 메칭엔(metzingen)을 필두로 주방용품 성애자들의 성지로 불리우는 WMF공장, 아기자기한독일 식기 브랜드 빌레로이앤보흐 공장이 있는 메틀라흐 아울렛까지. 여기에서 끝나면 나들이가 서운하다.철학의 도시 <하이델부르크(Heidelburg)>에 기차를 타고 다녀오는. 나들이 치고는 꽤 그럴싸한 생각에 처녀 가슴 설렌다.이번에도 우리는당일 렌트를 이용했다. 


독일에서 아울렛 투어

아침 일찍 차를 타고 메틀라흐 아울렛으로 향했다. 프랑크푸르트 시내에서 2시간 반 정도 소요되는 그곳은 그야말로 젖과꿀이 흐르는 땅이다. 예전부터 독일의 식기 브랜드인 <빌레로이앤보흐(Villeroch&Boch)>의 공장이 있는 곳에 아울렛 매장이 생기며 그 주변에 다른 주방 용품 브랜드들이 자그맣게 매장을 내기 시작해서 지금은 어느 정도의 주방용품 전문 아울렛타운이 되어 있다. 한국에 정식 매장이 없는 유럽 브랜드들을 만나고, 심지어 아울렛에서 반값도 되지 않는 저렴한 금액의 제품을 만나는 건 이곳에서 머무는 동안에 만나는 특권이지 싶다.


메틀라흐는 현지에서도 교통편이 좋지 않아 관광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다. 분주한 나들이를 위해 여김 없이 아침 일곱 시쯤 메틀라흐로 떠난다. 분명 우리가 아울렛 매장 문을 열어주며 들어 가겠지? 라고 생각한 건 우리의 착각일까. 이미 독일 아주머니들인지 네덜란드 아주머니들인지 구별은 가지 않지만 어쨌거나 진중한 표정의 아주머니 부대가 이미 매장의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다. 비(非) 전문가의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사소한 흠이 있는 제품들은 한 켠에 빨간 딱지가 붙여진 채 정상 가격의 10% 가격으로 언젠가 만나게 될 주인을 기다린다. 내가 너의 주인이다! 사소한 그릇 쇼핑에도 기분은 상점을 통째로 인수한 듯하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메칭엔이다. 꽤많은 관광객에게도 알려져 있고 공항이나 대도시 중앙역에서 셔틀버스들이 있을 정도로 접근성이 높은 곳이다. 버버리, 토즈, 몽클레어 등의 독일에 와서 패션에 대한 쇼핑 욕구의 씨가 말라버린 탓에 한국에서 여주 프리미엄아울렛에 연락처를 남겨두고 신제품이 나오면 연락을 받고 날아갈 정도의 정성을 보이던 나와 지금의 내가 사뭇 다른 눈치이다. 우리는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독일에서 패션의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이라도 된 듯이 어느 브랜드 매장을 들어가도 시큰둥했다. 불과 삼사 년 전만 했어도 양 손 가득해서 돌아오던 아울렛인데. 아무래도 매사에 즐거움이 없어 보이는 심드렁한 독일인들의 표정은 패션에 흥미가 없어서 자연스레 나타난 모습인가도싶다. 패션도 인생의 또 하나의 즐거움인데. 

맞는데……



WMF 공장 옆 아울렛 매장까지 모두 섭렵한 뒤, 밤 열한시가 다 되어서야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다음날 일찍 중앙역에서 오늘의 맴버들과 함께 열차를 타기로 했기에 오늘 밤은 후배의 집에서 다 같이 신세를 지기로 했다. 렌트한 차를 반납하러 후배가 떠나고 나는 남은 일행과 밤 12시까지 문을 여는 마트에 들렀다. 우리나라처럼 이 곳의 마트도 지역별로 영업 시간이 상이한데 다행히 후배네 집 앞에 있는 매장은 내가 프랑크푸르트에서 여태껏 본 매장 중에 가장 규모가 크고 늦게까지 운영하기에 천천히 둘러보며 늦은 밤의 분위기를 무르익게 할 음식들을 장만하기 적당했다. 시나몬 향이 알싸하게 풍겨오는 글뤼바인에 속살이 하얀 뮌헨의 소시지를 잔뜩 샀다. 소시지의 절반은 끓는 물에 살짝 데쳤고, 나머지 절반은 냉장고에 있는양파와 브로콜리 따위의 남은 야채들과 함께 볶았다. 한 켠에서는 커다란 냄비에 반쯤 채운 물을 끓여 그 안에 글뤼바인 병을 마개만 열어 놓은 채 담궈 뒀다. 화려하지 않아도 따뜻하게 몸을 녹여주는 식탁이 채워졌다. 



첫 만남, 하이델베르크

이튿날의 마지막 나들이 코스는 중앙역에서 한 시간 반 정도면 만날 수 있는 하이델베르크. 수많은 철학가와 예술가들이 명상에 잠겨 작품 활동을 한 것으로 잘 알려진 이곳에서 메마른 나의 감성에 단비가 내리기를. 기차에 올라 타자마자 너나 할 것 없이 의자와 한 몸이 된 채 잠이 들었다. 전날 철인 아울렛 3종 경기를 치르고 한 밤 중에 돌아와 광란의 뒤풀이 파티까지 하고 전사한 탓일까. 아니면 아침 일찍 일어나 나를 위해 후배와 홍차공주가 손수 차려준 생일상을 설거지 하듯 비우고 주린 배를 묵직하게 만들어서였을까. 오늘의 나의 도시, 하이델베르크에 대한 설레임과 기대보다 나른함과 피곤함이 온 몸을 감싸고 있었다. 





목적지의 기대감은 없다. 없던 기대감이 도착과 동시에 몇 배의 감동이 되어 다가온다.


기차역을 나와 바로 눈 앞에 프랑크푸르트의 마인강과 비슷한 폭의 강이 길게 펼쳐져 있다.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파우스트의 작가 괴테가 사색에 잠겨 거닐었을 적의 모습이 가히 눈가에 보이는 듯하다. 언덕 사이로 고요히 흘러가는 강을 따라 하이델베르크를 거닐다 보면 삼척동자도 사색에 잠길 게 분명하다. 구시가지로 들어가기 위해 강변을 거닐어야 한다. 나도 역시 이 <네카강>의 한 켠을 거닐며 산 속에 둘러 쌓인 곳곳의 집들과 가지만 남았지만 기품이 있고 듬직한 가로수들을 벗삼아 생각에 잠겨봤다. 문득 조용필의 <걷고싶다>가 떠올라 흥얼거렸다.시내에서 십 오분 남짓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니 하이델베르크 성에 다다랐다. 성에 올라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마을은 전체가 동화 속에나 등장할 법하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숲 속 마을은 어딘가에 늑대와 빨간 망토를 입은 소녀의 숨바꼭질이 한창일 것처럼 아늑하지만 어딘가 서늘함이 묻어난다. 


하이델베르크 알트슈타트 역에 내려 구시가지로 걸어가는 동안 저무는 해와 하나가 된 네카강의 모습 @하이델베르크, 독일
동화 속에 한 장면으로 등장할 법한 하이델베르크 시내 모습, 겨울이라 크리스마스마켓이 한창이다.


하이델베르크에서의 마무리는 역시 크리스마스 마켓이다. 독일의 12월은 어디를 가나 화려하고 즐거운 크리스마스마켓이 한창이다. 도시마다의 특색 있는 모습들은 이맘 때쯤 독일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즐거움이자 소중한 경험을 제공한다. 따끈한 글뤼바인과 감자튀김으로도 충분한 만찬이다. 앞으로 크리스마스까지 삼 주 남짓한 시간 동안 내가 또 다른 도시의 축제 풍경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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