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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Nov 04. 2019

세상에서 제일  어려웠던 말

요즘 생각

조카 결혼식에 일가친척이 모여 집안이 왁자했습니다.

아흔을 앞두신 시어머니와 그 아들들의 대화에 온 가족이 박장대소를 하며 웃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좀 더 정확히는 어머니에게 장난을 거는 시동생과 어머니의 대화입니다..

"어머니, 서울 형수가 차표를 못 샀답니다. 어머니가 사 주셔야겠습니다. "

"내가 무신 돈이 있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벌써 여기저기서 크크크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면서 모두들 어머니 쪽을 향합니다.

"어머니 속바지 주머니에 돈이 있는 걸 압니다." 

"너는 지발 그런 소리 좀 하지 마라."

그런데 어머니 혼자 목소리가 아닙니다.  

제창이라도 하듯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것은 물론 음조까지 똑같습니다. 

하하 호호 허허 크크~ 웃음보가 터졌습니다.

장난을 좋아하는 시동생의 짓궂은 농담은 한두 번이 아니지만 어머니는 언제나 여전히 진심 어린 말로 대답하십니다.

"너는 지발 그런 소리 좀 하지 마라."    


어머니께는 두 살 두 살 터울이 나는 아들이 다섯이나 있습니다. 

학기 시작과 함께 일제히 돈을 내야 하는 학교, 돈을 내야 하는 학교는 부모 앞에 염치도 무엇도 없습니다.

둘째가 달라하고 셋째, 넷째, 그리고 막내까지 공책 살 돈 달라고, 미리 말하지 않고 

책가방 들고, 신발 신고 시간을 다투는 아침에 말할 때 어머니 심정은 어떠셨을까요?

"너는 왜 미리 말하지, 여태껏 암말도 않고 있다가 가방 들고!"

미리 말씀드린다고 형편이 달라졌을 것 같지는 않지만, 어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셨다지요.  

등굣길 시간의 턱 밑에서 어머니께 돈 달라고 했던 아들들도

세상에서 가장 하기 어려운 말이 어머니께 돈 달라는 말이었답니다.  


어머니 기억에는  먹을 것 입을 것을 사 나르고 날라도 늘 모자란 것 투성이었답니다.


"아덜이 한창 자랄 때는 황소 한 마리도 남는다 소리 없이 먹어치울 기세였니라. 

쌀을 가마니째 사놓을 형편이 못돼 몇 말씩 사고는 했는데 돌아서면 쌀독이 또 빈 거라. 

매일 구멍 난 양말을 꿰매도 다음 날 또 구멍 난 양말을 신고 가는 아들이 나왔고,

사나 아덜 키가 얼매나 빨리 자라는지, 입학할 때 접어 입었던 교복이 여름방학이 끝나고는 바지 기장이며 소매가 껑충한 거라."


끼니처럼 야속한 것도 없습니다.


"저녁에 모처럼 돼지고기 삶아서 된장 넣고 쌈 싸 배불리 먹었어도 아침엔 다시 그만큼 고기며 밥이 필요한기라. 아들 입에 들어가는 게 그리 좋음서도 뱃속이 야속한 거라.  "  

    

돈이 없을 때는 돈이 들어갈 구멍이 왜 그리도 크고 여럿인지요. 

내어 줄 돈은 없고 쓸 곳은 많던 시절, 돈을 달라는 아들들에게 쏟아낸 어머니의 첫마디는

'너는 제발 돈 달라 소리 좀 하지 마라' 였다네요.

큰 아들이 들었던 어머니의 그 말을 둘째가 듣고 자랐고, 다시 셋째와 넷째가 듣고 자랍니다.

큰아들이 성장해 막내에게 형 노릇을 할 때까지 들었다는 그 말,

'너는 지발 그런 소리 좀 하지 마라'.

돈 없다고 하시다가도 속바지 주머니에 꽁꽁 싸맸던 돈을 꺼내 주셨다는 어머니,

어머니 주머니는 화수분인 줄 알았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꺼내 주실 거면서 무슨 돈이 있느냐 야단 먼저 치셨던,

그 시절엔 어머니를 이해하면서도 그런 말씀하시는 어머니가 야속했다는 아들들.

아들들은 돈 달라는 말은

이제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들들이 그보다 더 하얀 머리를 쓴 어머니께 장난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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