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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Nov 02. 2019

어머니의 기쁨이라는 것

요즘 생각

"이번 주말에 아범이 부산 간대서 같이 내려갑니다."

“그라나, 조심해서 내려온니라."

전화비 많이 나오니 자세한 얘기는 내려와서 하라는 어머니 염려에 통화는 짧게 끝났다.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님으로서는 자주 오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늘 짧게 왔다 가는 아들이 아쉽기만 하셨을 테다.

기대하지 않았던 때에 내려온다는 아들을 볼 생각 때문이었을까,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어머니 목소리에 설렘이 들어있었다.    


어머니께 가기로 한 주말, 우리는 오전 막 10시가 지났을 때 부산에 도착했다.

남편은 시간 내 처리할 일이 많으니 우선 볼 일을 보고 집에 들어가자 하였다.

그렇게 만날 사람을 만나고 하다 보니 어느덧 시계는 오후 4시를 넘기고 있었다.    

늦가을 짧은 해는 일찍 저녁 기운을 몰고 왔다.  

그때 전화가 왔다. 큰집 전화번호였다.

"와 안 오노!"

전화기가 깨질 듯한 어머니 음성에 당황해 미처 대답도 못하고 있을 때 전화기 너머에서 형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가 월요일부터 아들 기다리는 기쁨으로 일주일을 사셨다."     


어머니는 그날, 아들이 온다는 날, 아침부터 안절부절못하며 자식을 기다리셨던 거다.

10시를 지나 점심때를 넘기고, 두 시, 세 시---.

1주일을 기다리셨지만 막상 아들이 온다는 당일, 몇 시간은 더 기다리기 힘들었을 어머니의 시간이 느껴졌다.

 서둘러 일어서는데 전화기 속에서 어머니 목소리가 이어졌다.

“기다리다 내가 병이 나겠더라. 일 보러 온 사람들이니 기다리면 올 텐데---, 느그 형이 말리는데도 내가 더는 못 기다리겠는 거라. 그래 내가 전화했다.”    


한 번은 집안 행사 때문에 작은어머니를 비롯해 여러 형제들이 모였을 때였다.

“나는 형님이 정말 무서웠다. 그래서 제사 때고 명절 때면 산에 와도 바로 큰집에 안 들어가고 자갈치, 남포동, 용두산을  구경하다

느지막이 들어가고는 했다. 형님은 아마 모르실 거다.”

다 지나간 일이라며 작은어머니는 형님이 무서워 큰집에 오는 게 싫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얼마나 무서웠으면 그러셨느냐, 작은어머니가 너무했다, 시어머니 시집살이보다 동서 시집살이가 더 무섭다더니 진짜 그러셨던 모양입니다,  한 마디씩 하면서 함께 웃었다.

"하마, 말도 마라. 형님 까다로운 건 너희들도 겪어봤으니 알제?"

작은어머니는 이젠 처벌의 시효가 지난 범죄를 고백하듯 어머니 흉을 봤다.

"빨래를 삶을 때는 애벌빨래를 해서 삶았는지 그냥 삶았는지 어머니는 귀신같이 아신다."

큰동서도 작은어머니 못지않게 어머니가 어려웠다는 이야기를 풀어냈다.      

주무시는 줄 알았던 어머니가 언제 들으셨는지 조용한 목소리를 우리들 대화에 끼셨다.

“나도 안다. 내 다 봤다. 늦게 도착했다는 얘기 듣고도 모른 척했니라.”

“어쩜! 형님, 그럼 알면서도 지금까지도 모른 척하신 겁니까?”

오래 전의 일인데도 엊그제 그런 얕은수를 쓰다 들킨 것처럼 작은어머니는 몹시 당황하셨다.  


작은시어머니와 큰동서가 어머니 흉을 보지만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는 아랫 사람을 배려하는 분이다. 사실 그분들이 보는 어머니 흉도 이야깃거리니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머니의 시간이 얼마나 고되었는지는 남편에게 한두번 들은 적이 있어 짐작은 한다.

그 시절 모든 어머니들이 고생스러운 삶을 사셨다지만, 그래도 내 어머니의 이야기만큼은 각별하지 않을까. 자식이라서 때때로 그 어머니께 기쁨을 드리는 일도 했겠지만, 안타깝고 겁정스런 시간이 더 많았을 것이며, 자식이 성장해  떠난   후로는 기다리고 그리워하며 사신 시간이 그 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나는 이제 어머니의 이야기 레퍼토리를 다 알 것 같다.

어머니는 오랜만에 당신 곁으로 내려온 자식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많았다.

아쉽고, 서럽고, 안타깝고, 그리운 이야기들.

모두들 잠이 든 시간에도 어머니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어머니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나와 남편, 아니 남편도 어머니 이야기를 듣는 건지는 모르겠다.

앉아 있기는 하지만 꿈쩍도 않는 모습이 자는 것도 같고 그렇다고 조는 사람처럼 턱을 굈던 손이 흐트러지거나 하지도 않는다.    

아차피 듣는 얘기, 나는 어머니 이야기를 추임새를 넣어가며 듣는다.

'그래서 얼마나 속이 상하셨어요. 그때는 정말 기쁘셨지요? 그래도 너무 하셨어요.'

어머니는 그러면 '이르다마다, 얼마나 속이 상한지 딱 죽을 거 같더라, 얼마나 좋은지 만나는 사람한테마다 자랑을 했니라,  아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내 속이 풀리지 않겠나?' 일일이 응답을 하면서 이야기를 쏟아내셨다.

그렇게 들으며 나는 속으로 이제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시겠구나, 언성이 높아지겠다, 짐작도 한다.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듣기는, 좋은 얘기도 아니고, 무겁고 답답한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듣기 힘들다. 하지만 나는 처음 듣는 것처럼 듣고자 애썼다 .

모시고 사는 형님은 얼마나 들었을까 싶기도 하고, 일 년에 고작 몇 번 다녀가면서 하룻밤  어머니 이야기를 못 들어드릴 것도 없겠다 생각하면 들은 이야기 또 듣는 것이지만 들을 만하다.   


어머니는 이제 우리가 가도 알아보지도 못하신다.

여러 개의 생명줄에 의지해서 병상에 누워계신 지 햇수로 3년째다.

그 날처럼 ‘왜 이리 늦느냐, 왜 안 오느냐’ 야단치시던 어머니의 시간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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