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패티 Feb 14. 2020

엄마에게 편지 쓰기 쉽지 않더라

요즘 생각

숙제로 편지 쓰기를 내었다.
2주간의 말미를 주고.
수신인은 엄마.  
그러고 아차 했다.
엄마가 일찍 돌아가신 정혜 씨도 있고,
지난겨울 초입 엄마를 잃은 지은 씨도 있는데
나 혼자 흥에 겨워 숙제를 내주고서야
아차 싶었다.
숙제를 취소하거나 대상을 수정하기 위해 말을 꺼내려다 두 사람을 보았다.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어 표정을 알 수 없었지만
안 봐도 무슨 마음인지 알 것 같았다.
아, 나는 엄마이면서, 딸 같은  사람들 앞에서 이리도 일을 철없이 벌일까,
혼자 머리를 쳤다.
이왕 나간 숙제,
에라, 지들도 부모이고 어른인데 그것쯤은 감당할 수 있어야지,
언제까지 엄마엄마 하며 살 건데
억지춘향으로 나 혼자 수습했다.
  
자식이 엄마에게 편지 쓰기가 그리 어려울까,
어렵다.
두 주를 흘려보내고 마감 하루 앞둔 날 저녁에서야 몇몇 사람의 편지가 도착했다.
고마워요, 사랑해요, 감사해요, 그리워요, 죄송해요, 아쉬워요---
네 글자 라임을 맞춰 쓰기로 약속이라도 한 듯.
말을 고르고, 생각을 고르고
숙제니까, 남들이 읽을 테니까
말도 자주 만나야 할 게 많은 것처럼
편지도 자주 써야 쓸게 많은 법인데
뜬금없이 그저 편지를 쓰자니 쓸 말이 무엇이 있을까 싶기는 했다.

숙제로 낸 편지를 읽으며 내 딸들을 떠올렸다.
그 애들도 편지 쓰기가 어렵기는 한 가지,
생일 때나, 어버이날이나 되어야 서너 줄 적힌 카드를 보내온다.
사랑한다, 고맙다고 적어 보낸  몇 줄 안 되는 말에
나는 내 감정의 양념을 듬뿍 얹어 읽는다.
그 애들의 사랑의 농도나 감사의 질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열 배 혹은 스무 배, 그 이상의 감정을 입혀 카드를 읽는다.

아이들이 보낸 편지는 차곡차곡 모아놓는다.
글자를 모르던 때, 그림으로 쓴 카드까지도 꼬박꼬박.

아이들 펀지는 짧은 글로 시작해서 한 살 한 살 더하는 나이만큼  길어졌다.
고등학생 때, 깨알 같은 글씨로 길이로나 내용으로나 정점을 찍고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제 그 애들은 몇 줄 안에 말을 욱여담느라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인간이 되었다.
다시 길어지는 날이 올 것 같지는 않다.
나도 그랬으니까.

어느 무료한 날,  편지를 꺼내 읽고, 편지를 읽다 앨범을 꺼내 보고
앨범을 보다 그 애들이 쓴 일기도 읽어본다.
그 애들의 명랑한 목소리를 입혀서. 

내가 딸들의 편지에 감동을 입혀서 읽는 것처럼 내 학생들의 어머니들도 그렇게 읽을 것이다.

그러니 편지를 나무라지 말 일이다.

편지의 독자는 누가 뭐래도 그들의 어머니이니까. 


 

작가의 이전글 왜 운전석 옆자리에 앉으면 길을 모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