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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Jan 28. 2020

왜 운전석 옆자리에 앉으면 길을 모를까

요즘 생각


두세 번 간 적이 있는데 도무지 길을 알 수가 없었다.

이름이라도 알면 네비에게 길을 물을 텐데 이름도 생각나지 않았다. 

부부가 운영하는 크지 않은 중국집이였다. 목화탕수육을 특별히 잘한다고 추천했더니 그럼 말 난 김에 가보자고 해서 나섰는데 도무지 길이 생각나지 않았다. 좀 외진 곳, 중국집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이긴 하다. 그래도 두세 번 다른 사람과 함께 갔던 곳인데 막상 가려니 길이 헷갈렸다.

갔던 길을 돌아 나와 다른 길로 가기를 몇 차례 하다, 함께 갔던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이름을 알아내어

결국 네비의 도움으로 찾아갔다.


분명 운전석 옆좌석에 앉아 두세 번 간 적이 있는데, 왜 길이 생각나지 않을까.

물론 내 길눈이 밝지 않은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길을 헷갈렸던 경우 대개는 남의 차를 타고 갔던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길을 아는 사람이 데려가거나 함께 가는 것이어서 주의를 게을리했기 때문이다.

길을 꼭 알아두지 않아도 네비에게 물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런 까닭에 무엇이든 기억하거나 해결하려 애써 노력하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얼마나 되었을까, 길을 나서기 전에 미리 가는 길 오는 길을 지도로 알아보던 때가.

예전엔 낯선 곳에 강의를 하러 가려면 길을 찾느라 시간에 늦는 실수하지 않기 위해 길을 알아두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지도를 펼쳐놓고 가는 길을 미리 표시해서 그걸 가지고 다녔다. 지도가 복잡하다면 맞춤 약도를 직접 그려서 가지고 가기도 했다. 자동차 안에 지도책 한 권쯤은 으레 싣고 다녔다. 필요할 때마다 펼쳐보기 위해서.  





옛날에 도둑들 사이에 유명한 도둑이 있었다. 

그의 아들도둑도 일찍이 도둑질에 능통한 아버지와 함께 다니며 도둑질을 배워 예사롭지 않은 도둑이 되었다. 그래도 아비만은 못하였다.

최고의 도둑이 되는 게 꿈인 아들 도둑이 하루는, 아버지에게 도전장을 냈다.

아버지는 아들의 도둑질 솜씨를 눈으로 확인한다면 일인자를 인정하겠노라 하며 함께 도둑질을 하러 갔다. 인근에 제일 가는 부잣집 광으로. 아버지는 기가 막히게 광문을 열고 아들이 먼저 들어가게 했다.

도둑질을 아버지에게 증명해 보이고자 의욕에 넘친 아들은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광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아들이 광에 들어갔음을 확인하고 박에서 문을 잠가버렸다.

아들을 광에 가두어버리다니, 아버지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놀란 아들은 아버지를 의심하고 원망했다.

원망도 나중 일, 어떻게 광을 탈출할 것인가가 급했다.

문이라고는 들어온 문 하나뿐, 광은 사방이 두꺼운 벽으로 꽉 막혀 있었다.

누군가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나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을 가둔 아버지가 문을 열어줄 리는 만무했다.   

궁리 끝에 쥐 소리를 내기로 했다. 극성부리는 쥐를 쫓기 위해서라도 누군가 문을 열 테니 그 틈에 도망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들이 내는 소란스런 쥐 소리에 예상대로 머슴이 광문을 열었다.   

그 틈을 놓칠세라 아들은 튀어 달아나기 시작했다. 

도둑이 들었다는 걸 알아차린 머슴도 지지 않고 도둑의 뒤를 쫓았다.

죽을힘을 다해 도망을 가던 아들은 또 한 가지 꾀를 내었다. 

마침 저수지 둑길로 도망을 가다 커다란 돌덩이 하나를 풍덩 소리 나게 물속으로 던졌다. 발을 헛디뎌 저수지에 빠진 양 풀숲에 납작 엎드려 숨소리도 죽였다. 뒤쫓아오던 머슴은 '쯧쯧, 결국 물에 빠져 죽었군'하고 돌아갔다. 

아들은 안전해진 것을 확인하고 일어나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아들이 아버지를 원망했다. 부자가 원수지간이 되는 건 당연해 보였다.

아들의 원망을 다 들은 아버지는 '스스로 지혜를 터득해서 문제를 해결했으니 네게 내 자리를 물려주겠다'고 했다.




조선시대 유학자 강희맹이 학문을 하는 아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다. 도둑질도 그러한데 하물려 학문을 하려는 사람에게 더 이를 말이 있겠느냐, 경계를 담아서.

스스로 익히지 않은 지혜는 내 것이 되기 어렵다. 

운전석 옆좌석에 앉아서 갈 때 길을 다 알 것 같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네비가 알려주는 대로, 누군가 데려다주는 대로 갈 때는 편했으나 그걸로 끝이 된다. 

'내 일'이라는 자세로 임할 때 더 많은 정보에 민감해진다.

사소한 일이므로, 그럴 시간에 한가지라도 더 값어치 있는 정보를 습득하는 일이 더 합리적이므로 인공지능에 의지하여 시키는대로 하면 된다고 판단하는 일이 많아졌다. 하지만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값어치 있는 지혜라는 게 뭐 대단한 거라고.

자동화, 기계화는 분명 편하다. 그러나 지나치게 매뉴얼 된 표준화는 기계화된 행동을 강제한다. 그 결과 내게 기왕에 있었던 알량한 자율성과 창의력조차 녹슬고 더 계발할 기회는 잃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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