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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Jan 23. 2021

[독서모임]어렵지 않아도 읽기 힘든 책이 있다

화요일 밤에 랜선으로 모여 책읽는 사람들

읽기 힘든 책이 있다. 내용이 어려워서거나 모르는 말이 많아서, 혹은 번역책이라서 힘든 게 아니다. 특별할 것 없는데도 힘든 책이 있다. 이 책이 그렇다. 왜 힘들었을까? 힘들게 사는 사람들 이야기여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현실 어디서든 살고 있을 법한 사람들, 그렇다고 평범하지도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소외시키는 요소들로만 꾸린 종합세트 같은 책이다. <딸에 대하여>(김혜진)는 그런 책이다. 비정규직 청년노동자와 청년 빈곤 문제, 노령 사회와 노인 빈곤 문제, 그리고 성소수자 문제와 가족이란 무엇인가 등. 셀프 힐링 책이 많이 팔린다는데, 책 속 인물처럼 현실이 고단하고 팍팍해서 사람들이 셀프 힐링이라도 하려고 찾아 읽나 보다.


독서모임에 참석하기 위한 준비는 다음과 같이 한다. 기본적으로는 책을 읽고 밑줄 긋고 메모하고 감상을 쓰고 질문 만들기의 틀대로 한다. 지식 정보책은 조금 다르게 읽어야 하겠지만 일단은 그렇다. 두껍지 않거나 어렵지 않은 책은 한 주에 책 한 권씩 읽는다. 필요하다면 챕터를 나누어 읽고 발표를 준비하도록 하기도 한다. 한 주에 다 읽기 어려운 책은 시간을 길게 잡으면 된다. 그렇더라도 시간이 넉넉하다 해서 책을 더 꼼꼼히 읽고, 발표할 자료가 충실하지도 않던데, 다른 사람도 비슷한 것 같다.


그렇더라도 한 주에 책 한 권 읽기는 좀 바쁘다. 내 가 먼저 의견을 내서 매주 모임을 열기로 했는데, 이제 생각하면 내가 사람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서 생긴 일이다. 뭐라도 하자고 한다 해서 그들은 학위라도 따는 사람처럼 시간을 내서 책 읽는데 쓰자는 건 아니었을 것이다. 주 1회 만남을 제안했다 해도 다른 의견을 낼 수도 있었을 텐데, 아무 말 없었다는 것은 '뭐라도'라고 할 만큼 적어도 당시는 모두들 절실했다고 믿고 싶다. OJ는 모임 시간이 임박해서 발표 자료를 카페에 실었는데, 허둥대는 모습을 본 남편이 '그런 열성으로 학위라도 따보지 그러느냐?'라고 했다고 한다. SI가 이따금 오물오물 먹는 먹는 모습을 비추는 날은 퇴근이 늦었다는 뜻이다.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열심이게 할까.


독서모임이 끝날 무렵 나는 다음 읽을 책에 대해 짧은 이야기를 붙인다. 읽을 책에 대한 배경지식 등 읽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 또는 어떤 식으로 읽으면 좋을지에 대한 것들을 말한다. 필요하다면 줄거리를 말하기도 한다. 이야기를 기억하는 좋은 방법은 시간 순서대로, 일이 일어난 순서대로 생각하기다. 물론 결말까지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읽기로 한 책의 서평이나 기사를 찾아 읽고, 작가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이번 주 책은 엄마 시선으로 쓴 딸에 대한 이야기다. 책 속 엄마만큼 나이를 먹은 내 마음을 사로잡은 작가가 30대의 젊은 여성이어서 놀랐다.


모임이 시작되고 회원들이 모두 줌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가벼운 일상을 나누었다. 근황 토크는 가벼운 수다지만 서로를 조금 더 알아가는 좋은 도구다. 모두 들어온 걸 확인하고 1분 북토크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YJ가 늙고 힘 없어지는 소설 속 엄마의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즐거운 일들을 하나씩 잃어가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말이다.'에 밑줄을 그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엉뚱하게 지난여름 만났던 일자리 구하던 경력단절 여성들을 떠올렸다. 대학을 나와 직장을 다니고 결혼하고 출산을 하고 그래도 견뎌보려다 육아 때문에 경단녀가 되었다. '세상에서 부여한 육아라는 책무를 하고 돌아오니 받아주는 데가 없더라. 무엇을 잘못한 건가.' 그들은 화를 내었다. YJ도 <딸에 대하여>의 엄마가 남 얘기가 아닌 것처럼 읽힌 거다. 지난여름에 내가 만난 사람들은 일을 하려면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교사였다가 교습소, 도배, 유치원 통학버스 운전, 보험 세일즈, 구내식당 일을 거처 현재는 요양보호사로 일을 하는, 갈수록 질이 나쁜 노동으로 떠밀린 소설 속 엄마의 고단한 역정을 YJ도 참담하게 느꼈을 것이다.


'난 널 키운다고 직장이고 뭐고 다 버렸다. 남의 손에 맡기는 게 불안해서 하나씩 하나씩 포기하다가 결국 다 버렸어. 내가 널 어떻게 키운 줄 아니? 네가 전부인 줄 알고 살았어. 세상에. 그런데 어떻게 넌 사사건건 날 이렇게 실망스럽게 하고 슬프게 만들 수 있니. 그러려고 작정한 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이 문장에 밑줄을 그은 OJ는 이일 저 일 마다않고 하면서 열심히 산 엄마에게 골목을 돌아서니 짠하고 나타난 것들이 엄마의 삶을 무너지게 한 건가 싶다고 했다. 꺾어져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는 골목, 그 골목을 돌아서 만난 것은 딸, 세상일 참견하느라 제 앞가림도 못하는 딸, 동성의 연인을 데려온 딸이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너무 많이 가르친 것 같다. 이 애들은 유식하게 세련된 깡패일지도 모른다'라고 말할 때 자신의 엄마를 생각했다며, 저 혼자 자란 줄 알고 못되게 굴었는데 철딱서니 없는 딸 앞에서 황당해 하시던 엄마가 생각났다고 PK가 말했다.


딸의 동성애에 대해 JK가 말을 이었다. '너희들이 뭘 할 수 있니? 결혼을 할 수 있니? 새끼를 낳을 수 있니?' 딸의 동성애에 대해서는 우리들 모두 공감한다는 말들은 하지 못했다. 우리 중 누구보다 진보적인 사고를 하는 OJ는 모르겠다. 말문을 연 JK가 ' 환경이 중요한 것 같아요.' 라고 말하면서 고대 로마와 그리스 시대 사람들의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누구도 JK의 말을 받지 못해 다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동성애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다. 언젠가 시청 앞에서 퍼포먼스를 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으나 '그런 일이 있었구나' 정도였다. YJ가 동성애자 연예인 얘기를 꺼내서 짧았지만 어색한 침묵이 깨졌다. '홍석천이 커밍아웃하기 전보다는 나아진 것 같아요. 지금은 옆집에 홍석천이 산대도 아무렇지 않을 정도까지는 되었어요.' 그러고는 다시 끝이었다.


동성애자의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러나 동성애자를 가볍지 않게 다루는 책 <딸에 대하여>를 읽으면서 더 알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야기가 기독교의 동성애 반대론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종교와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좋다는 생각에 이야기를 돌렸다. 성적 지향은 유아기에 결정된다더라, 치료 대상도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는 이야기로. 남성 동성애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이라는 영화를 소개하는 걸로 동성애 이야기는 마무리 짓고 싶었다. 그러나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확장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그린과 레인은 합법화된 가정을 가질 수 없어요. 물리적으로 아이를 낳을 수도 없고요. 그러면 이들은 아기를 키울 수 없을까요? 키울 수 없다면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도 알고 있는 방송인 사유리 씨가 정자를 기증받아 얼마 전에 출산을 하고 가족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왜 일본에 가서 아기를 낳았나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가 좀 질문이 많아요.' OJ 다운 질문이었다. 이야기가 오가는 동안 손이 빠른 누군가가 사유리 씨 관련 자료를 찾아 모임 단톡방에 올렸다. 이럴 때 패들렛을 사용하면 좋은데, 단톡방에 올린 것을 보면서 혼자 다른 생각을 했다.


구글 줌으로 랜선 독서모임을 열면서 다양한 방식의 독서토론도 해보자고 의욕적으로 소회의실 사용법도 익히고, 자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보려고 패들렛 사용법을 익혔는데. 비대면 시대라고 하지만 우리는 줌으로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 나누는 것에 만족하는 정도다. 그 사이 또 누군가 허수경 씨 자료도 찾아서 올렸다. 12년 전 허수경은 관련 법이 없어서 비혼임에도 아기를 낳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배우자 동의가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법 때문에 사유리 씨의 경우 한국에서는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 세 번째 사유리가 나오려면 법이 뒷받침되어야겠지만 사유리 씨가 용기 있는 행동을 했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었다.


젠에 대해서도 제법 오랫동안 이야기가 오갔다. 젠은 엄마가 생각하는 딸의 미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젠은 해외에서 배울 만큼 배운 여성으로 누리고 살 수도 있었을 테지만, 세상일을 하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했다.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도왔으며, 귀국 후에는 이주노동자를 위한 일을 하는 등 훌륭한 인생을 살았으나 죽음을 기다리는 말년은 비참하기 짝이 없다. 젠의 비참한 말년의 모습이 딸의 모습이 될까 봐 엄마는 두렵고 불안한 것이다.


엄마는 도무지 철딱서니 없어 보이는 딸이 안타깝기만 하다. 늙어서까지도 노동을 해서 생활하는 엄마를 보면서, 젊어서 남을 위해 살았으나 돌보는 이 없는 요양원에 누워 있는 젠을 보면서도 깨닫지 못하니. ' 두리번거리느라 허비한 시간이 얼마나 아까운지를 대부분의 사람은 너무 늦게 깨닫는데, 유감스럽게도 후회는 언제나 시긴아 얼마남지 않은 늙은이의 몫일지도 모른다'고. ' 무엇이든 경험하지 않로 말로만 듣고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어서 지금은 힘이 세고 젊은 딸이 그걸 이해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고 안타까워한다.


직장도 올바르지 않은 데다 동성애자라니, 딸에 대한 엄마의 걱정은 사회 안전망이 없는 사회에서 믿을 건 가족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의견이었다. 열심히 살았으나 엄마는 현재 노인 육체노동자로 살고 있는 것도 딸을 보는 엄마의 불안을 가중시킨다고 보았다. 엄마의 기대와 달리 아무런 관련도 없는 남을 돕느라 모든 것을 잃어가는, 딸이 선택한 삶이 평범하지 않아 속상한 엄마를 100프로 이해한다고들 말했다.


동성애자 딸에 대한 이야기인데 생각과 달리 선정적이거나 내용이 폭력적이지 않다는 것에 모두들 동의했다. 성범죄 사건을 보도할 때 밀착 보도라는 미명으로 피해 정도나 방법을 선정적으로, 폭력적으로 대상화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미디어의 태도와 비교된다. 그건 동성애자인 딸의 생활이 엄마의 삶 안에서만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고, 엄마이기 때문이라고 들 말했다. 엄마라서 자신의 기대를 배신하는 딸을 받아들일 수 없으나 딸을 지키려는 엄마의 마음이 표현이 거칠어지지 않도록 걸러내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작가의 시선이 엄마에게 집중해 있어서 글을 쓰는 동안은 글 속 엄마에 빙의 되어 있었을 것이라고.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지는 이야기를 12시가 넘어서 강제로 종료했다. 작가만 엄마에 빙의된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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