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패티 Jan 29. 2021

[독서모임] 그들 모임에 책이 없었더라면

화요일 밤에 랜선으로 모여 책 읽는 사람들

<책만 보는 바보: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안소영)을 읽고 모인 날,

모두가 잘 아는 홍길동전으로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조선시대 세종 연간에 판서 벼슬을 하는 양반 홍문과 노비 출신의 첩 춘섬 사이에서 태어난 길동은 장차 훌륭한 인물이 될 기상을 보였으나, 천한 종의 몸에서 태어났기에 벼슬길에 오를 수 없는 신분이었다. 주변의 칭찬을 받는 영특한 아이였으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를 수 없는 처지였다. 집안의 종들마저 길동이 종의 몸에서 난 천한 아이라고 낮잡아 우습게 여기니 길동은 그것이 너무나도 원통할 뿐이었다. 양반가의 사내로 태어났으나 이름을 세상에 알릴 수도 없는 자신의 처지를 명확히 인식한 길동은 어차피 벼슬을 받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집을 나가 산속으로 들어가 세상의 명예나 수치를 잊고 살 결심을 한다.



쇠줄같은 핏줄, 서출이라는 질긴 숙명이 삶을 짓누를 때 홍길동은 집을 뛰쳐나가 산속으로 들어가 명예도 수치도 잊고자 했고, 다른 한 사람 이덕무는 책을 읽는 것으로 울분과 설움을 다독였다. <책만 보는 바보: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는 책이 있어서, 책 읽기를 좋아해서 책으로 삶을 가꾼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루도 손에서 책을 놓은 적이 없는, 초가 지붕 아래 자그마한 방에서, 온종일 햇살을 따라 상을 옮겨 가며 책을 본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은 이덕무. 전주 이씨 왕가의 성을 받았으나, 서얼 출신이라 차별받은 이덕무는 책 읽기로 소일하며 산다. 깨우쳐 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 책을 읽다가 불현듯 뜻을 깨치기라도 하면 미친 사람처럼 고함을 지르며 기뻐하기도 했다. 그런 그를 사람들은 간서치(看書痴)라고 놀렸으나 그 소리가 싫지는 않았다. 그는 스물한 살에 <간서치전>이라는 자서전을 썼다.


간서란 글을 눈으로 읽는다는 뜻이다. 이덕무에게 간서는 요즘 말하는 묵독의 의미와는 다르다. 소리를 내며 글 읽기를 하던 시대 이덕무는 소리없이 눈으로 글을 읽었다. 무슨 뜻인가. 당시 사람들에게 독서란 공부의 방법이고 공부는 출세를 위한 디딤돌이었다. 벼슬을 할 수 없는 신분을 타고 난 이덕무에게 책 읽기는 하등 쓸모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간서치란 쓸모도 없는 공부, 쓸모도 없는 독서 무엇하러 하느냐는 조롱이었다. 아마 사람들은 ‘바보야 문제는 독서가 아니야!’라는 말을 한 것이 아닐까.


이덕무는 왜 스스로를 간서치라 여기고 사람들의 놀림을 싫어하지 않았을까? 몸속에 임금님과 성이 같은 왕실의 피가 흐르기에 배를 곯아도 먹고 살기 위한 일을 그는 할 수 없었다. 서자이기에 물려받은 재산도 없고 벼슬길에도 나아가지 못하며, 시장에 좌판을 벌여 장사를 할 수도 땀 흘려 일을 할 수도 없으니 가난은 숙명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삶이 책 읽기였다. 배고픔을 잊기 위해, 근심을 잊기 위해, 추위를 잊기 위해, 병고를 잊기 위해서도 책을 읽었다. 오직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책 읽기 뿐이었으므로. <논어>를 읽으며 슬픔을 위로 받고 <한서>를 읽으며 추위를 잊기도 했다. 이쯤 되면 집을 나가 도적의 무리와 섞여 나라 법을 어기며 문제를 일으켰던 홍길동이 더 이해되지 않는가.


이덕무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 백동수. “백날 맹씨와 좌씨의 책을 읽어봐야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구할 수 있겠는가? 제 식솔의 굶주림 하나 구제할 수 없는 것을.” 그들은 <맹자>를 팔아 식구들 양식을 마련하고 <좌씨춘추>를 팔아 술을 사 벗들과 함께 비참한 날에 위로를 나누었다. 책이 이런 쓸모가 있기도 했지만 책은 ‘백탑파’를 만들기도 했다.


‘백탑파’는 이덕무와 비슷한 처지의 문인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덕무가 살던 집 가까이에 원각사십층석탑이 있어 그들 모임을 백탑파(白塔派)라고 불렀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늦도록 책을 읽던 가난하고 설움이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탑 앞으로 이끌어 모이게 했다. 이들에게 나이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흉금을 터놓아도 허물없는 벗들이었다. 세상은 장유유서라 해서 어린 사람은 나이 든 사람 공경이 마땅하다 했으나 그들에게는 예외였다. 서출의 자리는 따로 있었으며 머리 허연 노인이라도 신분이 낮으면 양반가의 어린아이에게도 존댓말을 써야 했다. 그러나 백탑 아래서는 세상의 법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직 마음 맞는 벗들이 있을 뿐이었다.


그들 만남엔 책이 있었고, 책은 또 다른 만남을 이어주었다. 백탑 아래 서출 모임에 오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이덕무 일행의 모임 반경은 자연스럽게 북학파 대가인 박지원의 집으로,, 박지원을 찾은 홍대용과의 만남으로 확장되었다. 적어도 박지원의  사랑방 안에서만큼은 신분보다 사람됨이 먼저였다. 이들을 이곳으로 이끈 것 책이었다. 책은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만나는 통로였다.


벗이란 무엇인가. 벗이란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다. 기억의 내용이 무엇인가에 따라 그 관계를 깊이를 나눌 수도 있겠다. 백탑파 사람들은 어떤 기억을 공유할까? 서자 신분이라는 운명, 책을 눈으로만 읽는 운명, 뜻을 가슴에 품고만 살아야 하는 가슴 깊은 슬픔과 분노, 세상에서의 외로움과 원망 등을 토로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지 않을까. 그럴 때 그들 사이에 책이 없었다면?


가부장질서가 엄격한 계급사회에서 서얼 출신인 그들은 모여서 자신의 처지에서 비관하고 한탄하기보다 책을 읽는 것으로 삶을 가꾸었다. 책은 또 다른 책을 부르고 책으로 인연을맺었으며 인연은 또 다른 인연으로 이어졌다. 독서가 친구를 맺어주었고, 책이 만남을 더 깊이 더 넓게 확장시켜주었다. 마침내는 규장각 외각검서관으로, 다시 내각검서관으로 승진을 거듭하며 점차 임금 가까이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덕무가 죽었을 때 정조 임금은 그의 업적을 기려 장례비와 유고집을 낼 수 있도록 간행비를 내리기도 했다니, ‘너는 제 일에 능숙한 사람을 보았느냐? 그런 이는 임금을 섬긴다.’ 성경에서 읽고 밑줄 그었던 말이다. 이덕무가 꼭 그런 사람이 아닌가.





“거기서 밥이 나와? 돈이 나와? 뭐가 좋아서 야심한 밤에 모여?” 어쩌면 오늘 모임이 참석하지 못할지도 몰라요 하던 사람이 모임 시간이 임박해서 발표 자료를 올렸다. 허겁지겁 자료를 올리고 랜선으로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노트북을 켜는 그에게 남편이 묻더란다. “그렇게 열심히 하면 박사도 할 수 있겠다. 그 노력으로 한 번 해보지 그래?” 이런 말을 남편이 하더라는 회원도 있었다. 터말꼬가 꼬리를 잇는다. “엄마, 그렇게 재미있어?” 하는 아이도 있었고, 식탁에 앉아서 밥을 기다리다가 읽던 페이지가 바닥으로 가게 엎어놓은 책을 집어 들고 소리를 내서 읽어보더니 “엄마 요새 이런 재미있는 책을 읽는구나, 나도 읽어볼까?” 하는 아이도 있었다 한다.


모른다. 무엇이 사람들을 이토록 열심히게 하는지.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만일 책이 없어도 모임이 이어질 수 있을까? 백탑파에게 책이 마음의 소통로가 되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마음의 통로가 되고 있음에는 틀림없다. 책이 없이도 야심한 밤에, 삼십 대에서 육십 대의 여자들이 모여서 수다를 떨기는 어려울 것이다. 모임을 만들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혹 만든다 해도 정신 나간 사람들이라는 소리나 들을 가능성이 100퍼센트다.


옛날 사람들과는 다른 이유로 외롭고 쓸쓸하며, 허전하고 우울한 사람들이 책 이야기를 하면서 추억을 만들고 있다. 지금 이들이 책을 읽음은 지식이나 정보를 쌓기 위함아니다. 그들은 모임을 위해 열심히 읽고 글도 쓰지만 그보다 기다리는 것은 책을 매개로 한 대화의 시간이다.


흘러넘치는 읽을거리, 언제든 펴볼 수 있는 환경에 살며, 삶의 흔적처럼 생각해 쉽게 정리하지 못했던 책들을 정말 괜찮은 책들만 남기고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 책장 가득 먼지 쓰고 꽂혀 있는 책들에 미안함을 얘기했고, '한스러운 것은 어머니가 물려준 보잘것없는 핏줄이 아니라, 아버지가 물려준 이기적인 양반의 핏줄이었다.' '사람으로 태어나 가장 비참한 것은 쓰일 데가 없다는 것이다.'에 밑줄을 그으며 이덕무와 그의 친구들과 함께 절규했다. 오늘날은 옷을 바꿔입은 또 다른 계급사회라는 것에 동의하며, 부디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노라면 스스로가 빚어 낸 삶이 희미한 빛을 낼 때가 있지 않을까' 자식들의 희망을 빌었다.


마무리 발표로 회원 한 사람이 적어 올린 시, 딸들이 자라는 집 책상머리에 붙여놓았던 시, 딸들은 누구나 적어도 첫연 정도는 암송할 줄 알았던 시, 유안진 시인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라는 시를 낭송했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도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은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 열어 보일 수 있는 친구”를 꿈꾸며, 사소한 오해로 말문을 닫고 지내는 친구에게 이 책과 함께 마음을 담은 편지 한 장 적어 보내야겠다는 말로 모임의 창을 닫았다. 책향으로 혼곤한 밤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서모임]어렵지 않아도 읽기 힘든 책이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