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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Jun 10. 2021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쓸데없이 진지한 일기


한 사람에게, 또한 한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에 가장 깊숙하고도 영구히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로 집이다. 집은 하루하루와 매 시간 매순간의 특빌을 결정하고, 삶의 색채, 분위기, 속도를 결정한다. 나아가 한 사람이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 인간관계를 결정하는 틀이 된다.
레너드 울프 <울프의 정원> p.8




여성과 집

" 가족 구성원들이 같은 성(姓)을 공유하는 집에서 홀로 다른 성을 지닌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의미일가? 서구 사회의 전통은 결혼한 여성에게 남편의 성을 따르게 하지만 한국 사회의 전통은 원래 성을 따르게 한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 사회가 여성을 주체적 존재로 여겼기 때문이 아니라, 피가 섞이지 않은 여성을 가족 안의 영원한 이방인으로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부계 혈통주의에서 여성은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감히 따르지 못한다. "(25p)


종종 한국 여성의 자주권에 대해 이야기할 때 종종 예르 들었던, 그러면서도 찜찜했던, 나의 언어로 구체적으로 표현하려고 생각도 하지 않았던 문제. '결혼을 한 후에도 자기 성씨를 그대로 유지하는 나라'에 대한 불편한 생각을 정리받은 느낌이다. 세계에 여성가족부라는 관청이 있는 나라가 많지 않다는데 한국에 여성가족부를 만든 까닭은 무엇일까? 만일 여성의 사회적 존재감이 미국 같아도 '여성가족부'를 만들었을까? 


인류학자 김현경은 그의 책 『사람, 장소, 환대』에서 “어떤 사람을 절대적으로 환대한다는 것은 그가 어떤 행동을 하든 처벌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그의 사람자격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원을 확인하지 않고, 보답을 요구하지도 않으며, 어떤 조건이나 이유 없는 '환대’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라고 읽었다. 여성이 그 사회에서 올바른 태도로 환대받는다면 성이 바뀌고 안 바뀌고가 무엇이 중요할까. 그렇기만 하다면  '여성가족부' 홈페이지에 걸린 '평등을 일상으로' 구호 따위는 필요 없었을까? 아니 여성가족부 자체를 만들 생각을 하지도 않았겠지. 


"집은 우리에게 같은 장소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집이 쉽터이기 위해 다른 누군가에세 집은 일터가 되었다. 보수도, 출퇴근도, 휴일도 없이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가사 노동의 현장. 엄마는 운전을 배우고 싶어했고 같은 지역에 사는 친언니를 만나러 가고 싶어 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는 웬만해선 며느리 외출을 허락하지 않았다. "집처럼 편안하다'는 관용구대로 일과가 끝난 뒤 돌아가는 휴식의 공간을 집이라 한다면 엄마에게 집은 집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가족에게 집이 집이기 위해서 엄마는 집을 비워선 안 되었다."(p26 )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자유로운 창작을 하려면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때 자기만의 방이란 일정한 돈과 영역의 확보를 의미한다. 독립된 경제 주체로서의 활동과 아내나 어머니로서가 아닌 개인의 정신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독립 공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또 버지니아 울프는 에세이 ‘여성의 직업’에서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라고 강요하는 집안의 천사를 죽이라”면서 여자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자유를 주장했다. 100년 전의 주장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말을 종종 듣는다. '집안 전체가 나의 공간이었으나 내 공간이 아니다'는 여자들의 하소가 그것이다. 



신분과 집


집을 이야기하면서 '신분과 집'이라는 소 주제는 과격하지만 그렇게 정한다. '집'이 '현대적의 신분' 을 바꾸어주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 '대구의 강남', '그 동네에서도 가장 비싼 집'에 사는 5년동안, 나는 집이 가진 계급과 자본의 속성을 알아차렸다. 단지와 단지로 이루어진 아파트와 고급 빌라는 비슷한 계급의 사람들이 모여사는 신분제 공간이었다.

(---)나에게 계급은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개발된 구역과 개발되지 않은 구역을 가르는 '길'이었고 아파트 단지를 둘러싼 '담'이었으며, 학급에서 아이들이 이루고 있는 '그룹'이었다. 내가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길과 담과 그룹을 명확하게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사소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어떤 부류와도 '우리' 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44p)


두 개 이상의 도로에 면한 아파트에서 도로명으로 집 주소를 변경할 때 새로 결정된 도로명 집주소가 주민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변경을 요청하는 민원이 폭주한 적이 있었다. 기왕이면 부자동네라 인식되는 동네 이름을 원해서였다. 그정도가 아니라 동네 이름을 아예 바꿔버린 경우도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집값의 문제였을 것이다. 무엇이 집의 가치를 결정할까? 건물 크기, 땅 면적, 입지 조건, 업그레이드 정도, 학군, 그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 가장 큰 요인은 입지 조건, 입지조건을 가시적으로 증명하는 도로명에 의해부여된 집 주소가 가치가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것이다.  아파트 이름도 그 가치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갈수록 길어지는 아파트 이름도 그런 연유에서일 듯하다. 나 혼자 생각인지 모르지만 더 이상 진달래 아파트, 개나리 아파트, 목련 아파트처럼 시골 노인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이름을 가진 아파트는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창문과 현관문의 잠금 상태를 강박적으로 확인했다. 현관 밖에 쓰레기를 내놓을 때에는 복도에 사람이 없는지 살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면 현관문에 달린 외사경으로 바깥을 힐끔거렸고, 밤늦게 이웃집 현관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들리면 한두 번 목례를 나누었을 뿐인 옆집 여자의 안위를 걱정했다. 가끔 낯선 남자가 창밖에서 나는 지켜보는 악몽을 꾸다가 가위에 눌리기도 했다. 계층도 세대도 삶의 궤적도 다른 다양한 여성들을 지배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불안'일 것이다." (p 62)


아이가 독립해 나가며 집을 구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게 안전이었다. 안전을 보장해주는 조건은 여럿일 테지만 우선 고려한 것이 큰 길이 면해 있을 것이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어딘들, 누군들 두렵지 않을까만은 안전에 대해서만큼은 남성이라면 처음부터 고려의 조건이 아닌 것들이 여성에게는 추가된다.  겁이 많은 나는고생을 당연시하고 떠난 여행에서조차 숙소만큼은 안전해야 한다고 고집한다. 불안에 대한 두려움은 환갑을 넘은 나이가 되었어도 크게 변하지 않는다.        


"내가 존중받기를 원하는 만큼 남의 마음을 섬세하게 헤아리는 사람이고 싶었다. 품위는 인간에 대한 예의이자, 가진 것 없는 자가 자기 혐오에 빠지지 않기 위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방어선이었다. (품위를 잃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지만 결국 그런 사람이 되고 마는 일이 생기도 한다.) 어떤 환경에있는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몸에 배는 품위와 교양과 인격이 다른 환경에 있는누군가에게는 필사적인 노력을 통해 만들어야 하는 태도였다. 피곤하고 지친 나머지 화만 남은 이들에게는 인간성을 유지하는 데에도 노력이 필요했다."(p 83) 


더 무슨 말을 붙일 수 있으랴.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불면 그 나무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더구나 최후의 보루까지 내몰렸을 때 거기까지 참고 견뎌온 필사적인 노력이 무너지지 않을 수 없을 때, 공감한다. 예의를 따질 수만 있어도 희망은 있는 건데. 어떤 계급의 사람을 폄훼하거나 차별하는 말이 아니다. 그저 끝까지 내몰린 그들이 모두 안타까울 뿐.  "재개발의 희망조차 사라진 쇠락한 동네를 오르내리며, 창문 밖에서 오가는 거친 말소리를 들어야하는 진짜 현실을, 나는 떠나기 전에 이 동네에 많은 것을 보리고 싶었다."(p87"는 표현은 그래서 더 애달프다. 



여성의 일과 집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어도 원하는 하나쯤은 성취할 줄 알았다.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들을 버리고 쓸모 있는 노동자로 살자고 다짐했을 때, (---)독립을 위해 필요한 것은 집과 일이었다. (---)노동으로서의 글쓰기, 생계를 감당하는 글쓰기...."(p92)


잠깐이었지만 가정폭력으로 고통받는 여성을 돕는 일을 한 적이 있다. 그들은 집을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다시 폭력이 있을 것, 더 심해질 수도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이유는 경제력이었다. 그들에게 독립은 경제력에 달렸다. 경제력이 무엇이라 거창하게 설명할 것도 없이 매맞지 않고 살려면 가장 먼저 해결해야할 문제였다.

재일교포 사회학자 강상중은 채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에서  '일이란 사회로 들어가는 입장권'이라 정의한다. 여기서 '일'이란 밥벌이로써의 일을 말한다. "나의 정체성은 작가가 아니라 집필노동자였다. 비로소 내 나이에 걸맞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94p)도 결국 같은 말이다. 내가 무엇으로 하는 사람인가 정체성을 확립시켜주는 것도 일이다. 

 

"인류학자 김현경은 <사람, 장소, 환대>에서 'woman, place, and the social'이 어떻게 변역되고 연결되는지 질문한다. 그리고 첫단어가 나머지 두 단어와 맺는 불안정한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place'가 '장소'로도, '자리'로도 번역된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다시 말해 이 단어는 '물리적 장소'이자 '상징적 자리'이다. (---) " 장소에 대한 투쟁은 존재에 대한 인정을 요구하는 투쟁이기도 하다".(---)"여성은 이른바 사생활의 영역인 집에서도 장소 상실을 겪곤"한다."(p138)

 

내가 확보하고자 애쓰는 공간 실현은, 일종의 특권이다. "자기만의 방이라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마다 대구에 살았던 집들이 떠오른다. 우리집에서 가장 넓은 방을 가졌던 사람, 집의 크기아 방의 개수와 상관없이 언제나 자기만의 방이 있던 사람은 할머니뿐이었다. 그렇다고 여성인 할머니가 방을 가졌다고 해서 우리집이 성적으로 평들을 누렸다는 의미는 아니다. 할머니의 권력은 아들을 가진 어머니에게서 나오는 가부장적 위력이므로 남성중심적이었다. (---) 공감 분배에서 할머니와 가장 대비되는 사람은 엄마였다. (---) 엄마인 여자는 집 안의 어느 곳에나 있어야 하므로 집 안의 어느 곳도 소유해서는 안 되었다. 엄마는 장소 그 자체였다. (---) 엄마는 '읽는 사람'이었다. (---) 집안팎에서 이중노동을 하면서도 잠들기 전까지 시와 소설을 읽었다. 엄마에게 독서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자기만의 정신적 공간이었으리라."(p139)


내 어머니는 저자의 어머니가 겪은 일은 겪지 않으셨다. 오히려 사람들은 어머니를 '치마만 둘렀지 대장부'라고 말했으나 그것은 어머니 뒷배경-외가는 부자였다. 부잣집 딸이 가난한 집에 시잡을 오게 된 내력은 언제든 말할 기회가 있으리라-이 가져다 준 효과였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손이 귀한 집의 3대째 독자였고 가난한 집 아들이었다. 가진 것도 없이도 아들 유세를 하던 시대였으나 할머니는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는 시집살이라는 게 일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그보다는 오히려 친정, 나의 외가의 도움으로 집안 살림을 일구셨으니 아버지는 일가붙이도 없는 남자였다. 기억 속에 아버지는 외할머니가 오시면 외할머니를 어려워해서 몸둘 바를 몰라했다. 그런 아버지를 나는 가없이 여겼다. 어머니와 다툼이 생기면 대놓고 아버지 편을 들고는 했었다. 우리는 일명 외가 장학금으로 학교를 다니는 등 아버지가 가부장적 위력을 누리기에는 턱없었다. 여러 모로 어머니는 아버지 앞에 기세가 등등했다.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가 성평등적 의식이 있으셨다는 뜻은 아니다. 딸들에게 간섭이 많으셨고, 아들을 편애를 대놓고 하셨다. 우리는 두고두고 어머니의 아들 편애가 아들의 성장을 막아 오빠가 유약하다고 생각했으니, 참 생각해보면 유약이 아니라 '가정적인 남자'였을 뿐이었다. 오빠가 가정적이라는 건 결혼을 하고 남편과 비교하면서 깨달았다.       


"자기만의 공가이 있었다면 엄마는 가족 관계에서 호칭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불릴 수 있엇을 것이다. 지금 내가 가진 자리를 엄마도 가질 수 잇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승징과 출세, 성공과 사회적 지위를 생각할 때 다른 누군가는 식사와 설거지, 청소와 빨래를 고민한다. 누군가가 바깥에서 '중요하고 대단한 '성취를 이루는 동안 다른 누군가는 집 안에서 '하찮고 대단한 '일을 감당한다. 전자는 후자에게 빚진다."(p143) 


만일 딸이 아기를 낳아 기르면서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나는 딸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한 것이다. 세상이 달라지고 있고 교육을 받았으며 책을 읽었다 해서 나는 확 바뀌지 못한다. 나는 보수적이다. 작가가 그토록 안스러워하는 어머니의 삶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위로와 집


문득문득 그립다. 그리움이 스물네 시간 계속되게 하는 것은 없다. 심지어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18년간 함께 살았던 강아지를 잃었을 때도 그랬다. 그리움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것은 그립게 하는 것들을 알기 때문인데, 그걸 설명할 수 있으면 좀 더 견디기가 수월하다. 말할 수 있으면 그건 더 이상 문제가 아닌 것처럼. 그렇다고 해서 아주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되는 건 아니어서 불현듯 "내가 잃은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고는 하는 것이다. 떠나 보낸 것이 어머니, 그리고 개 한 마리가 아니라 다정 존재와 함께 한 내 삶의 한 시절이었다. 지금은 없는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시간을 부르는 일이다."(p175) 


집과 동네가 위로가 되었다. 동네 산책은 "계획을 할 때도 있고, 목적지를 바꾸어도 괜찮고 중간에 돌아와도 상관없었다. 상념을 지우고 '걷는 것', 걸으면서 '보는 것'. (---) 사라진 것과 사라지고 있는 것에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낡고 애잔한 이 동네의 골목이 선망하고 동경하던 이국 거리보다 좋았다."는 말은 이 글 어디부다 공감한다. 밑줄은 자기 마음이 가 닿는 곳에 긋게 마련. 


나도 당신도 , 어딘가로 부터 누군가로부터 떠나온 이방인이다. 나는 더 이상 떠돌지 않아도 된다는 것, 담장이나 길을 찾아 이동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마음 놓였다. 그러나 여전히 어딘가로 떠나는 꿈을 꾼다.


 "이 책은 집이 한 여성에게 미친 영향에 대한 이야기, 또는 집을 통해 본 한 여성의 성장기라는 점에서 자전적이지만, 집이라는 '불리적 장소' 안에서 여성의 '상징적 자리'를 가늠해 보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내가 겪은 일은 나만 겪은 일이 아니고, 나의 생각은 타자로부터 받아들인 여러 생각의 총합이며,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걸 일반성이자 보편성이라고 말한다."(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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