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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Oct 14. 2021

사랑도 잊고 살았네!

그림책에 물들다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찰리 매커시 글.그림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

   

질문이 많은 책이네요. 질문은 보다 젊었을 때, 생각도 감각도 영민하던 때에 품었던, 그러나 사노라 잊고 지낸 것들입니다. 질문을 받아 들고 주체하기 어려운 감정에 휩싸였어요. 질문 대부분에 기분 좋은 답을 준비할 수 없었어요. 어쩌면 그렇게도 아쉽고 안타까운 답변만 생각나는지요. 가을이라는 계절 탓인지도 모르겠어요.


 어디에서 오는 길인지 알 수 없지만 소년은 집으로 돌아가는 중입니다. 가는 길에서 두더지를 만나고 차례로, 여우를, 말을 만납니다. 이들 네 인물에 대해 작가는 우리 안에 있는 특성들이라고 말합니다. 관심을 주고 싶고, 받고 싶고,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으며 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살아가는 동안 만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라고 말합니다.     


두더지는 케이크에 집착하는 인물이지요. 두더지에게 케이크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작고 하찮은 것일 수도 있고 그게 전부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무엇에든 지나친 집착은 자신을 힘들게 하지 않을까요?      


여우는 동행 중에 가장 말수가 적어요. 상처 때문이에요. 여우는 누군가 쳐놓은 덫에 걸려 있었지요. 여우를 옭아맨 쇠덫을 두더지가 날카로운 이빨로 갉아냅니다. 덫에 걸리지만 않았다면 너를 잡아먹었을 것이라는 여우의 말에 두더지는 개의치 않았지요. 두더지는 소년에게 말합니다. “어떤 일에 어떻게 대처하는가가 우리가 가진 큰 자유‘라고 합니다. 덫에서 풀려난 여우는 말없이 발자국으로 하트를 그려 마음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이번엔 물에 빠진 두더지를 구해주는 것으로 보답을 합니다.     


성장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젊은 아빠를 압니다. 그는 종종 어떤 결정도 하기 어려워하고, 기피하려고 해서 주변을 걱정하게 했어요. 자라는 동안 아들에 대한 기대가 큰 부모님으로부터 여러 가지 지원을 받았어요. 하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일이 종종 있었지요. 왜 잘하지 못하느냐는 야단을 들으면서 그는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야단맞을 일도 없지 않을까 생각했대요. 실수하거나 미흡한 결과에 맞은 야단이 반복되면서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아요. 그림책을 함께 읽은 어느 분은 그림책 속 여우가 자신의 남편 같다고 말했어요.



아름다움은 발견하고 가꾸고 지키는 것

     

셋은 나란히 앉아 별똥별이 커다랗게 꼬리를 남기며 떨어지는 모습을 봅니다. 아름답지요. 건사해야 할 아름다움이 아주 많다고 하면서.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것입니다. 오랫동안 드나들었으면서도 그곳에 목련이 그토록 아름다웠는지를 몰랐다는 사람이 있어요. 아름다움은 발견하는 것이고, 가꾸는 것이며,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럴 때 자기 것이 됩니다.     


이 책의 마지막 인물 말이 그들의 길에 합류합니다. 말은 이들 중 가장 경험이 많고 경험만큼이나 지혜도 많아요. 그들은 함께 있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는 선문답 같은 말을 합니다. 진짜 좋은 사이는 만나서 아무 말 없이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라고 생각해요. 침묵이 힘들어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 사이는 부담스럽지요.   

   

네가 했던 말 중에 가장 용감했던 말이 무엇이냐고 소년이 말에게 묻자 ‘도와줘,’라는 말이라고 대답합니다. 내 약점을 대담하게 보여줄 때가 정말 강하다고 느낄 때라든가, 도움을 청하는 건 더 이상 노력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포기를 거부하는 거라는 등 말이 들려주는 지혜를 소년은 귀 기울여 듣습니다.     

 

소년이 자신에 대해 남들이 속속들이 알게 될까 봐 걱정한다는 말에 두더지는 사람들은 네가 특별하길 요구하지 않는다고 해요. 어떻게든 내가 능력 있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나를 설명하느라, 그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애쓰느라 적지 않은 시간을 쓰고도, 막상 남들이 그걸 어떻게 생각할까, 신경 쓰느라 쓸데없는 힘과 시간을 낭비했는데요. 그걸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어땠을까요.   

   

우리는 모두 계속 나아가야 할 이유가 필요하다고 말이 말합니다. 여우는 비로소 ‘너희 셋’이 이유라고 말을 합니다. 한편 살아가는 일이 항상 순조롭지만은 않은 게 인생이지 않던가요? 때로는 그저 일어서서 계속 나아가는 것만으로도 용기 있고 대단한 일이라고 말은 말합니다. 그저 일어서서 나아간 많은 날들이 쌓여서 뭔가가 이뤄지기도 하고, 뭔가가 해결되기도 하고, 잘 산다는 건 그런 것 같아요. 그러므로 삶이 완벽해야 한다는 것은 심각한 착각입니다.      


말은 하늘을 날 수 있지만 다른 말이 질투해서 날기를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네가 날 수 있든 없든 너를 사랑하는 것을 달라지지 않는다는 소년의 말에 말은 용기를 내어 마음껏 하늘을 날아봅니다. 무얼 말하는 걸까요?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는 감정은 자연스러워요. 감정을 숨길 필요도 없어요. 부럽다고 말을 해도 좋아요. 그건 열등감도 무엇도 아닙니다. 문제는 그것 때문에 나를 괴롭히지는 말아야겠지요.  


집이 가까워지면서 말수가 적어진 소년에게 ‘삶은 힘겹지만 너는 사랑받는 존재’라고 들려줍니다. 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줍니다. 내일 일은 알 수 없지만 지금 서로 사랑하는 게 중요하며 가는 길에 먹구름이 몰려와도 계속 가야 하며 만약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문제가 닥친다면 그때는 바로 눈앞에 있는 사람에 집중하라는 조언을 들려줍니다. 말은 마치 남은 지혜를 소년에게 다 전수해 주기라도 하듯 많은 말을 들려줍니다. 가야 할 길이 아직도 멀다고 느껴지면 뒤를 돌아봐라, 얼마나 많이 왔는지 알게 해 준다.      



나만을 위하 고른 한 문장


책을 함께 읽은 사람들에게 이 책에서 자신을 위한 문장 하나를 골라보자고 했어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누군가가 널 어떻게 대하는 가를 보고 너의 소중함을 평가하지 말라는 것을 골랐어요. 사람 사이에서 상처 받았다는 건 나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 때문이지요. 생각해보면 일상에서 하는 누군가에 대한 평가가, 그 사람 전체를 잘 알아보고 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그렇지만 상처 받게 되지요. 그래도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말라는 말의 조언에 읽는 우리도 모두 따뜻해했어요.      


"그때 그랬다면, 좀 낫지 않았을까?"

“그때 왜 그렇게 말하지 못했을까?”

"그러면 어쩌지?"

지나고 후회하고, 또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걱정하며, 사랑도, 우정도, 친절도 잊고 살았어요. 





함께 읽으면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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