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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Oct 24. 2021

성장은 아이가 하는 것

부엉이와 보름달



추운 겨울밤에, 단지 부엉이를 보러 나간다고?


  흰눈이 쌓인 몹시 추운 겨울입니다. 잠잘 시간도 한참 지난 밤중에 니사는 아빠와 부엉이를 보러 나갑니다. 부엉이를 보러 가기 위해 니사는 오랫동안 기다려왔습니다. 부엉이를 보려면 두려움에 맞설 용기, 추위를 참고 이겨내는 인내심, 조용히 하기, 부엉이를 못 보더라도 실망하지 않을 만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바람은 없고 나무는 커다란 동상처럼 서 있었습니다. 눈이 쌓인 들판은 달빛이 밝아 먼데까지 환하게 빛났습니다. 멀리서 기적 소리가 슬픈 노래처럼 들립니다. 기적 소리에 농장의 개가 짖어대자 다른 개들도 따라 짖었습니다. 기차소리와 함께 개 짖는 소리까지 잦아들 숲은 꿈속처럼 고요해집니다.


  책은 서정적인 글과 보름달이 환히 비추고 있는 눈 덮인 겨울밤 숲의 풍경은 영상을 보듯 서사적으로 그려 어린 니사의 감정을 그대로 전달해 그 순간, 그 곳으로 데려갑니다. 그 기분을 살려 이야기의 감동이 아이들에게 녹아들 수 있게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읽어주면 좋겠어요. 니사가 부엉이를 보고 느낀 감동을 오래 간직하도록 느릿느릿 책장을 넘겨도 좋겠지요.   

 

 글쓴이 제인 욜런은 "우리 아이들을 부엉이 구경에 데려간, 나의 남편 데이비드에게", 그림을 그린 존 쇤헤르는 "부엉이 구경을 나갈 만큼 자란, 나의 손녀 니사에게"라는 헌사를 책머리에 실었습니다.


 잠 잘 시간도 지난 추운 겨울밤에 단지 부엉이를 보겠다고 나서는 아빠와 아이를 나도 저렇듯 기꺼이 보내주었을까. 추위와 위험을 무릅쓰고 부엉이를 본다는 게 아이에게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이냐며 남편을 말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인 욜런과 존 쇤 헤르는 달랐습니다.     



부엉이 구경을 가서는 소망 말고는 어떤 것도 필요가 없단다


   부엉이 구경을 가는 날, 니사는 설렘과 기대감에 아빠보다 먼저 준비를 마치고는 문을 열고 어두운 밖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한 겨울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털모자에 목도리를 두르고 두꺼운 외투에 주먹장갑으로 단단히 무장을 했습니다. 하지만 선뜻 문 밖으로 나서지 못합니다. 저라면 또 한 번 아이를 설득하고 남편을 말렸을 것 같아요.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된단다. 굳이, 어린 아이에게, 한밤중에 부엉이 구경을 ---" 이런 말들로.


그러나 니사와 아빠는 집을 나섭니다. 뽀드득뽀드득 눈을 밟으며 니사는 앞서 성큼성큼 걷는 아빠 뒤를 따라갑니다. 아빠를 놓치지 않으려면 뛰어가야 합니다. 아빠는 니사를 기다려주지도 않고, 니사도 아빠를 부르지 않습니다. 부엉이 구경을 하려면 조용히 해야 한다는 규칙을 니사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조용한지 이들을 지켜보는 돌담 밑 토끼와 여우 그리고  나무 위의 새조차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이윽고 시커먼 소나무 숲에 도착한 아빠는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아빠 얼굴에 달빛이 하얗게 쏟아져 은빛 가면을 쓴 것 같습니다. 아빠는 하늘의 지도를 읽으며 부엉이를 부릅니다. "부우 우우우우 엉." 큰뿔부엉이 소리 같았지요. 통나무 구멍 앞 들쥐도 두 귀를 곤두세우고 소리를 듣습니다. 거듭 "부우우우우우엉" 불렀지만 부엉이는 쉽게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어요. 하지만 니사는 실망하지 않습니다. 부엉이를 본 날도 있고 못 본 날도 있다고 오빠한테 들었어요. 부엉이를 보려면 실망하지 않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요. 


니사와 아빠는 계속 걸어갔습니다. 아빠는 여전히 앞서 갈 뿐 니사를 위해 걸음을 늦추거나 잘 따라오는지 돌아보지도 않았어요. 종아리를 넘는 눈길, 추워서 코와 볼이 얼어서 화끈거리지만 니사는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니사를 안고 가지 않는 아빠가 매정하게도 보이지만 그건 제 생각일 뿐입니다. 니사는 이미 자기 몸은 자기가 알아서 따뜻하게 해야 된다는 것을 잘 압니다.


깊고 컴컴한 밤의 숲은 ‘코 밑까지 끌어당긴 따뜻한 털목도리가 입김에 젖어 축축했습니다. 입가가 꺼끌꺼끌" 하도록 긴장하게 합니다. 시커먼 나무 뒤에 뭐가 숨어 있을 것 같지만 니사는 묻지 않습니다. 입을 앙다물고 아빠의 손을 꼭 잡고 용기를 내 나아갈 뿐입니다. 부엉이 구경을 나가서는 용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공터에 도착한 니사는 달빛에 비춰 눈부시게 하얀 눈을 ‘아침마다 먹는 우유보다 더 하앴습니다’로 기억합니다. 보름달이 머리 위로 높이 떠있고 달빛은 빈터 한가운데로 쏟아져 내립니다. 아빠의 부엉이 울음소리에 니사는 장갑으로 입을 눌러 막았습니다. 부엉이 소리를 듣기 위해서서는 어떤 다른 소리도 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윽고 메아리가 되어 느릿느릿 들려오는 부엉이 울음소리.

"부우우우우우엉- 부우우우우우엉." 

"부우우우우우엉- 부우우우우우엉."

"저녁은 먹었니?" "숲은 별일 없어요." 

아빠와 부엉이는 대화를 하는 듯합니다.


니사는 비로소 입에서 벙어리장갑을 뗍니다.

부엉이 그림자가 가까이 다가오자  니사와 아빠는 말없이 지켜봅니다. 입 안에 열기가 가득 담겨서 할 말이 가득히 열기가 되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마침내 부엉이와 마주 보게 되었을 때, 아빠는 커다란 손전등으로 부엉이를 비춥니다. 일 분! 삼 분! 어쩌면 백 분이었는지도 모른다고 니사는 부엉이와 마주한 감동을 전합니다.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부엉이의 모습이 화면 가득합니다.  V자로 펼쳐진 날개, 두툼한 다리와 날카로운 발톱, 부리부리한 두 눈을 마주한 순간 ‘훅’하고 저도 숨을 멈추었습니다. 어떤 추위도 문제없어 보이는 융성한 가슴 털과 무서운 바람도 이겨 낼 단단한 날개가 어떤 소망이라도 다 이룰 수 있고 어떤 어려움도 다 이겨낼 것 같습니다. 


 숨 막히는 대면의 순간이 지나고 부엉이는 숲으로 돌아갑니다. '집으로 가야지.' 아빠의 말에 니사는 드디어 말을 해도 되고 웃어도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아무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입안 에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감동을 함부로 발설해서는 안 될 것처럼 보입니다. 


'부엉이 구경'이라는 니사네 집만의 의식을 성공적으로 마친 니사는 비로소 아빠의 품에 안겨 돌아갑니다. 그날  ‘부엉이 구경을 가서는 소망 말고는 어떤 것도 필요가 없단다.’ 아빠가 늘 말해 주신 말의 의미를 니사는 비로소 자신의 경험으로 온몸에 새겼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힘든 고난이 함께 하지만 그 것들에 휘둘려서는 안 돼요. 다만 이루고자 하는 소망만이 중요할 뿐입니다.  

  


성장은 아이 자신의 것이니까요


  책을 읽고 나서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아빠가 니사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요. 니사가 부엉이 구경을 나가는 경험을 통해 어렵지만 이루고자 하는 소망만 있다면 다 이겨 낼 수 있다는 메시지입니다. 부모에게는 지켜 봐 주는 기다려 줄 수 있는 힘에 대한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달은 여성을 상징합니다. 이 책의  보름달은 성인 여성인 엄마이지 않을까요. 아빠와 니사의 도전을 지켜보며 환하게 빛을 밝혀 주며 아이의 모든 것을 다 지켜보니 말입니다. 아빠는 딸의 도전을 묵묵히 지켜볼 뿐 도와주지 않지요. 앞서 걸어가며 아이의 손을 잡거나, 두려움을 달래주지 않아요. 심지어 말도 걸지 않고 혼자서 걸어가게 하지요. 아빠와 딸의 관계란 그런 것 같아요. 살갑게 감정을 공유하지는 못하지만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며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주는. 달은 모든 것을 지켜보며 감싸줍니다. 니사와 달리 제가 다정한 아빠를 가져 보지 못한 엄마라 그렇게 보였는지 모르겠습니다.


니사의 도전은 왜 부엉이 구경이었을까요? 부엉이는 그리스 신화에서 지혜의 여신 아테네의 상징입니다. 부엉이의 큰 눈은 미래를 내다보는 예언의 능력을 상징하지요. 깜깜한 밤에만 활동하고 쉽게 눈에 띄지 않는 부엉이는 그러고 보니 지혜 찾기 같습니다. 지혜란 쉽게 발견하기 어렵고 얻기 위해선 어둠 속에서 헤매는 과정이 있으니 말입니다.


 부엉이 구경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비로소 아빠는 니사를 안아줍니다. 소아정신과 전문의 서천석 선생은 기다리는 것이 부모의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아이가 힘든 과정을 자기 힘으로 넘어선 순간까지 기다려야 한다. 미리 손을 내미는 부모는 약한 부모다. 하지만 기다림이란 부모에겐 얼마나 갖기 힘든 미덕이던가? 이 책이 부모에게 서늘한 깨달음을 주는 부분은 그 지점이다. 기다리는 것이 부모의 사랑이다."  그러니 아이들을 잘 키운다란 말보다 아이들이 잘 자란다는 말이 맞는 표현인 것 같아요. 성장이란 아이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이니까요.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울프 스타르크 글, 에바 에릭손 그림 <아빠가 우주를 보여준 날> (크레용하우스) 

에이미 크루즈 로젠탈 글, 제인 다이어 그림<쿠키 한 입의 인생 수업> (책읽는곰)

줄리 풀리아노 글, 에린 스테드 그림 <고래가 보고 싶거든>(문학동네)

미야자와 겐지 글, 야마무라 코지 그림<비에도 지지 않고>(그림책공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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