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 빙하의 부엉이(혼자 읽은 책)
인간의 도움 없이도 야생에서 꿋꿋이 살아가는 부엉이를 보는 감동이 읽는이에게로도 전이된다.
갈색 털이 부스스한 새는 강렬한 노란 눈으로 우리는 주의 깊게 살폈다. 처음에는 우리가 마주친 이 새가 어떤 종류인지도 몰랐다. 부엉이는 분명했는데 내가 그동안 봤던 어떤 부엉이보다도 덩치가 컸다. 독수리만 한 크기였지만 털이 보송보송하고 더 통통했으며 귓깃이 몹시 컸다, 흐린 회색빛의 겨울 하늘을 배경으로 역광으로 마주한 이 부엉이는 진짜 새라기에는 너무 크고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마치 누군가가 곰에게 깃털을 한 주먹 급히 여기저기 붙인 다음 정신 못 차리는 멍한 야수를 나무 위에 올려놓은 듯했다.
-서문에서
표지 그림만으로도 보는 이의 마음을 꽉 채우는 책이 있다. <동쪽 빙하의 부엉이>가 그런 책이다. 눈 덮인 설원에 물고기 한 마리 단단히 움켜쥐고 책 보는 이와 눈을 마주하는 부엉이 그림, 요즘 유행하는 말로 "추앙"하게 한다. 부엉이를 추앙하다니! 인간의 손길이 태양계 바깥으로까지 뻗는 세상에 살면서 가당키나 하느냐 힐난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눈앞에서 마주쳤다면 '추앙'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표지 그림에 대한 첫인상은 어릴 적 만났던 부엉이에게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다가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진짜 새라기에는 너무 크고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마치 누군가가 곰에게 깃털을 한 주먹 급히 여기저기 붙인 다음 정신 못 차리는 멍한 야수를 나무 위에 올려놓은 듯했다”라고 소개한 장면에서다. 체격이 큰 동물은 뭔가 위풍당당하고 기품이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나. 글쓴이의 부엉이이에 대한 첫인상은 나와는 아주 다르다.
부엉이가 신이하다는 인상은 어릴 적 생겼다. 어릴 때, 나는 외가로 보내져서 자란 적이 있다. 나만 왜 외가로 보내져서 외롭게 자라게 했는지, 어린 마음에도 그게 슬프고 화가 나서 종종 바다와 산으로 쏴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고는 했다. 지금은 도시가 들어섰지만 외가가 있던 남양은 바다와 산, 논밭이 이 있는 시골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산에서도, 논밭에서도 바다에서도 일을 하여 꽤 넉넉하게들 살았다. 외가도 꽤 큰 염전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붉은 해가 소금밭 너머로 지도록 앉아서 염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구경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해가 지도록 야산을 쏘아 다니기도 했다.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루였다. 해가 져 어둑해진 산모롱이를 돌아 집으로 갈 때였다. 뭔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커다란 것이 이쪽 나무에서 저쪽 나무로 옮겨갔다. 컸다. 순간 눈앞을 가렸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날아간 맞은편 나무를 보다 기겁하고 말았다. 불그스름한 노란색 동그라미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린 상상으로는 도깨비였다. 도깨비에 대해 찰나에 오만 가지 상상이 지나갔다. 공포에 사로잡혀 뛰었다. 나는 달리기를 잘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날만큼은 아니었다. 외가에서 일하는 김 씨 아저씨가 내가 날아가듯 달려가는 걸 뒤에서 보고 불렀다는데, 듣지 못했다. 나중에 안 건데 부엉이라고 했다. 부엉이에 대한 나의 인상은 그렇게 결정됐다. 장대하게 큰 몸으로 신령한 위엄을 갖춘 동물로.
"우리를 위협적인 존재로 판단한 이 새는 도망치려고 몸을 틀어서, 길이가 2미터나 되는 날개로 이리저리 얽힌 나뭇가지를 치면서 날았다. 새가 자취를 감추자 흩어진 나무껍질 조각들이 소용돌이치며 아래로 떨어졌다." 이 사람은 부엉이를 직접 본 사람인데, 나는 어둠 속에 빛나는 눈만 본 사람으로 과연 부엉이를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동안 내가 품어왔던 부엉이에 대한 인상도 같이 떨어져내릴 것만 같았다.
북슬북슬한 깃털이 추위에 견디도록 잘 설계된 보온 장치일 듯, 부엉이를 엑스레이에 비춰보면 실제 몸은 가냘퍼서 기겁을 하지도 모르겠다. 다리가 짧고 몸이 무거워 뒤뚱거리며 걷는 줄 알았던 펭귄이 실은 롱다리였다는 것을 알고 놀라워했던 것처럼.
표지 그림 속 부엉이는 "블래키스톤물고기잡이부엉이Blakiston’s Fish Owl"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부엉이 중 가장 큰 종류이며, 큰 생명들이 멸종 위기에 쉽게 내몰렸듯, 블래키스돈물고기잡는부엉이도 멸종 위기종이라고 한다. 앉은키 70~80cm, 날개를 활짝 펼치면 2미터가 넘는 부엉이.
무언가를 관찰하고 관찰한 것을 기록한 글이 대부분 그렇듯, 도입은 굉장했는데 어쩐지 갈수록 지루해졌다. 부엉이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땅을 푹푹 빠져가면서 걸어가는 저자의 발걸음에 집중한다. 그의 발걸음을 따라가다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고생 끝에 사로잡아 장착한 신호기를 부엉이가 부숴버리거나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는다. 끝이 보이지 않는 연해주 어딘가에서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출판사는 이 책을 "멸종 위기에 처한 지구에서 가장 거대한 부엉이 ‘블래키스톤물고기잡이부엉이’의 보전 계획을 세우기 위해 수년간 미국과 러시아 연해주를 오가며 그 자취를 좇고 기록한, 한 동물학자의 피 땀 눈물로 범벅된 집념의 여정. 경이로우면서도 숨 막히는 원시림의 야생성으로 빛나는 한편 폭설과 폭우로 인한 고립 등 삶과 죽음의 경계가 강 얼음 정도 두께인 연해주의 겨울과 봄을 수차례 지나는 동안, 함께 탐사에 나선 동료들과의 우정, 어딘가 수상하고 투박하지만 다정이 넘치는 현지인들의 도움, 그리고 약간의 싸구려 보드카와 러시아식 사우나 덕분에 저자 조너선 슬래트는 마침내 물고기잡이부엉이를 구하기 위한 여정을 완수한다. 무언가의 생존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전부를 바치는 이들의 좌절과 성취의 기록."이라고 상찬한다.
그럴 만하다. 자신의 전부를 바치다시피 헌신적인 연구자 덕분에 이 희귀한 부엉이의 정체가 조금 드러났다. 저자의 연구 목적은 결과를 바탕으로 인간과 야생이 공존할 수 있는 방안 찾기다. 그러나 현실은 난망해서 서식지의 절반 정도가 벌목 회사가 임대한 지역에 속해 있다. 국가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사유지라는 뜻이다. 그래도 저자의 노력은 멈추지 않는다. 임도(산림을 관리하기 위해 낸 도로)를 정리해 차량 통행을 제한하고, 부엉이가 둥지를 틀 나무는 베지 않도록 조언한다. 현지인의 생계가 달린 문제이기에 무조건 벌목을 해서는 안 된다는 요구하지 않는, 공생으로 나아가는 합리적인 제안이다.
블래키스톤스톤물고기잡는부엉이, 이 책이 아니었더면 이런 동물이 있는 줄이나 알았을까. 글쓴이가 이 희귀한 부엉이를 연구하러 간 곳은 동토의 땅 연해주. 버스도 일주일에 두 번 지난 곳, 고장이 나도 도로에 멈춰 있는 것 밖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곳, 눈보라로 기다림이 일상인 곳, 그런 곳에서 감자와 보드카로 버티면서 이룩한 성과가 이 책이다. 이 책을 추천한 최재천 교수는 10년 가까이 열대정글을 헤집고 다녔지만 비할 바가 아니라고 말한다.
8년이 지난 2018년 다시 숲을 찾은 글쓴이는 블라디보스토크 일대를 휩쓸었던 2년 전의 태풍에도 무사히 살아남은 물고기잡이부엉이 한 마리를 만나고 감격스러워한다. 인간의 도움 없이도 야생에서 꿋꿋이 살아가는 부엉이를 보는 감동이 읽는이에게로도 전이된다.
이 책은 무엇을 하든 그 자체가 의미가 있다면 누가 알아주는지 여부에 상관없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덤으로 들려준다. 앞뒤 재서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얄팍한 내 심사가 들통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