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은 어려운 수학을 배운다고 생각했다. 하긴 내가 어릴 때는 수학은 중학교에 진학을 하고서야 배웠고, 초등학교라 불리는 국민학교에서는 산수를 배웠다. 내 아이가 학교에 갔을 때, 산수는 없어지고 수학으로 바뀌었다는 걸 알았다. 내용을 보면 크게 달라진 게 없어보이는데, 왜 산수를 수학이라고 할까.의구심을 품은 채 국정교과서니까,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았다.
산수적 방법과 수학적 방법은 다르다. 산수적 방법은 도표 또는 수의 사칙 연산만을 이용해 해결해야 한다는 제한된 조건에서 문제를 푸는 것이다. 이와 달리 수학적 방법은 방정식, 피타고라스의 정리, 사인, 코사인 등 문자를 이용해 문제의 의미를 표현하고 사물을 일반화시켜서 문제를 푸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더 전문적인 풀이 방법을 동원한다는 것이다. 간단한 예로 원주율을 구할 때 3.14를 곱한다는 게 산수적이라면 수학적으로는 ∏(파이)를 사용한다.
지난 주 화요일 심야독서 시간에 참여자 중 한 사람 수학전공자의 특강이 있었다. 그에게 특별히 부탁하기는 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 무얼 배우는지, 체계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등을 정리해 달라고 했다. 참여자의 연령만큼이나 다양한 학년의 아이들이 있을 테니, 초중고에서 배우는 수학의 얼개를 그려보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학적 사고란 어떤 것인가? 이날 참여자 중에도 나온 질문이었다. 무엇을 수학적 사고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이 책에서 구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내가 이해한 수학적 사고의 예는 <슬픈 열대> ,< 신화와 의미>등을 쓴 레비스트로를 통한 설명이었다.
"사람들이 가끔 이(구조주의)를 굉장히 새롭고 혁신적인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 이것은 사실은 이중오류다. 첫째, 인문학에서도 구조주의와 같은 것이 르네상스 때(갈릴레오가 '수학적인 방법론으로 기술하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부터 있었다. 이보다 핵심적인 오류는 언어학이나 인류학 같은 데서 구조주의라고 하는 방법론은 자연과학에서 옛날부터 하던 걸 그대로 가져왔다는 데 있다." (신화와 의미)
레비스트로가 말하는 자연과학의 방식이 바로 수학적 방법론을 말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레비스토로는 구조적인 생각으로 통해 인류 사회를 이해하려고 했다. 그는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 신화와 그리스 신화, 미국 원주민 신화가 다 다른 것 같지만 그 기본을 구조적으로 보면 비슷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 사고가 수학적 사고라는 것이다.
수학적 사고란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꼭지가 있다. 5강 ‘답이 있을 때 찾을 수 있는가’이 그것이다. 201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게일-섀플리 이론은 애초에 두 명의 수학자가 ‘수학적 사고란 무엇인가’를 알려주기 위해 수학 교육 저널에 게재한 논문이었다고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예로 남녀의 짝짓기를 든다. 짝을 고르는 일처럼 사람의 마음에 관한 것이 수학적 사고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남녀 각각 100명 모두가 안정적인 짝을 지을 수 있는가?' 라는 설정으로 시작하는 이 이론으로 사람의 마음처럼 답이 없을 것 같은 문제조차 명료하게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수학적 사고라고 설명한다.
이 책은 안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을 극명하게 선긋기하듯 드러날 수 있는 게 했다. 다 읽었는데 어느 것도 설명하기 어렵다는 게 그렇다. 그러니 내용을 요약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글러먹은 일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목차에서 이미 내용을 요약하고 있다. 친절하다. 보통 요약할 때 목차를 참고하면 여러가지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읽기 전이라면 목차를 읽는 것으로 무엇을 다뤘는지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읽은 후라면 목차를 보면서 다시 내용을 상기할 수 있다. 목차를 참고해도 내용을 요약하려면 자신의 언어로 씨실과 날실을 엮어내야한다. 그러나 이책은 예외다. 목차가 바로 요약이다.
화요심야독서회에서 이 책을 추천한 회원은 '확률과 통계'부터 읽어도 괜찮다고 부담을 덜어주었다.수학에서 가장 수학적이지 않은 것이; 확률과 통계라며, 문과생들이 선택하는 과목이 바로 확률과 통계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철학영역이라 알려진 트롤리 문제해도 그렇다. “망가진 자동차에서 누구를 살릴 것인가?”는 현재 MIT에서 자율주행 자동차에 들어갈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한 게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인공지능이 피실험자들이 위험한 상황 앞에서 내릴 ‘윤리적인 판단’을 확률 데이터, 즉 수학적인 문제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미래에는 인간의 윤리 자체가 확률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확률론은 선한가 악한가. 사람들은 확률론 그것 자체가 선하거나 악하다고 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나도 그렇다. 저자는 여기에 하나를 더하면서 확률론의 선악 이야기를 마친다. "확률론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을 뿐더러 선하고 악한 것도 확률론이 지배를 받는다." 선하다고 결정한 것도 악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고, 악하다고 생각하는 것들도 약간의 선한 효과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확률없이 일상생활이 가능한가?
오늘날 아이들을 일찌감치 수포자로 만드는 것들이 어느 땐가는 비 올 확률을 이해하듯 이해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한다. 확률론이 처음 나온 게 17세기였다면서. 인간이 세상을 관찰하며 떠오른 직관이 이론으로 다듬어지고, 점차 널리 활용되다 마침내 일반 상식이 된 확률처럼. 지금은 복잡하고 어려운 수학 이론들이 어느 땐가 누구나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상식이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려운 수학을 배운다고 생각한 것의 답을 얻은 듯하다. 산수로 시작해야했던 과거가 있다면 요즘 아이들은 바로 수학으로 들어가도 될 만큼 수학의 이론이 다듬어졌고 상식이 된 게 많다는 뜻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수학적으로 사고 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사고하며 살 수도 있다. 그러나 수학적으로 사는 게 도덕적으로 그릇된 답을 피할 수 있다. 확률이론이 그걸 뒷받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