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투스
아비투스 | 도리스 메르틴
근래 독서모임을 가장 떠들썩하게 한 책이었다. 대부분 부정적으로. 여러가지 예를 들며 불편함을 토로했는데, 상류층, 하류층 등의 말을 조금도 조심하지 않고 사용하는 것부터, 아비투스 정의도 틀렸다는 의견이었다.
저자는 상류층의 다양한 아비투스를 소개한다. 아비투스는 타인과 나를 구별 짓는 취향, 습관, 아우라로 계층 및 사회적 지위의 결과이자 표현이라 설명한다. 계급마다 공유하는 사고 방식, 말투, 행동 등이 있는데, 진정한 상류층으로 편입하려면 이러한 아비투스를 인지하고 내재화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저자는 아비투스가 삶, 기회, 지위를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저자는 인간은 자신과 다른 계층의 아비투스를 목표로 삼는다고 하며, 하류층 출신은 중산층의 아비투스를, 중산층 출신은 상류층의 아비투스를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또한 목표로 삼은 다른 계층으로의 상승을 위해 아비투스를 바꾸라고 주장한다. 저자가 제시한 계층 이동의 방법은 성공한 이들의 아비투스를 분석한 이 책을 읽고 노력하면 아비투스를 바꿀 수 있고, 궁극적으로 계층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7가지 아비투스 자본은 다음과 같다. 심리자본, 문화자본, 지식자본, 경제자본, 신체자본, 언어자본, 사회자본. 이 7가지 자본으로 계급을 나눌 수 있고, '고급 아비투스'가 있다고 말한다.
불편하다, 동의하기 어렵다해서 저자의 주장이 모두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말하자면 한 문장 한 문장이 다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부분에서 옳을 수 있으나 전체에서 틀렸다게 중론이었다. 틀렸다기 보다는 동의하기 어렵고, 기분 나쁘다고들 말했다. 심지어 부분에서 옳은 소리라 할지라도, 그 옳은 소리조차 '재수없게' 말한다고도.
반짝인다고 모두 보석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말해지는 수저론, 즉 흙수저, 목수저, 금수저 등 나눌 수 있다 치자. 금수저로 태어났다고 해서, 그가 경제자본이 넉넉해 값비싼 문화를 향유한다고 해서 그런 사람들 모두를 상류층이라고 할 수 있는가는 다른 얘기다.
이 책을 읽으며 떠올린 책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 아비투스를 잘 갈아탄 사람이야기라할까. <힐빌리의 노래>. 이 책의 저자 제임스 밴스는 남부 백인 하층 노동자 계급 출신이다. 주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성공을 한 인물이다. 언감생심같은 오하이오주립대를 다니고, 서울대만큼이나 한국인에게 유명한 예일대 로스쿨을 거쳐 변호사로 변신하는데 성공한다. <힐빌리의 노래>는 이 성취 과정을 그린 자전적 기록이다. 저자는 책에서 백인의 소외와 가난, 가정해체와 체념의 문화를 날 것 그대로 보여주며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한다.
"신분상승이 단순히 돈만 많아지는 문제가 아니라 생활방식이 달라지는 문제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부자와 권력자들은 그저 돈만 많거나 권력만 거머쥔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은 우리와는 다른 규범과 관습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내가 예일대 친구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크래커 배럴(남부 음식 판매 프랜차이즈)에 갔을 때 아주 분명히 깨달았다. 어렸을 때는 크래그 배럴이 고급 식당의 최고봉이었으며 할모 할배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식당이었다. 그러나 예일대 친구에게는 그저 공중위생을 위협하는 지저분한 식당에 불과했다."
<힐빌리의 노래> 저자 제임스 밴드는 하류층 아비투스를 가진 사람이 상류층 아비투스로 환승에 성공한 사람일까?
그럼에도 불편한 것은 이 책의 요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왜 아직 성공하지 못했는가? ‘자기 계발’에 게을렀던 것 아닌가? 스스로 자책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나는 상류층에 편입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싶지 않아.' 혹은 '나를 계발시키고 싶지 않다.’ 라는 주장조차 할 수 없게 몰아부치는 것 같다.
이 책은 뼈아픈 이야기도 한다. 예컨대 "상위 10%, 나아가 상위 3%의 고급 아비투스를 가진 사람이 위로 도약한다. 이것을 못가진 사람은 위로 오르지 못한다." "성공한 사람은 결코 삶을 탓하는 것처럼 말하지 않는다.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누구나 최정상으로 도약할 수 있다. 학습한 것을 끈질기게 고집하지 않는 한, 그리고 늘 하던대로 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상상할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 같은 말이 그렇다.
책을 읽다보면 꽤나 그럴듯해서 혹하는 부분도 있었다. 새겨들을 만한 말도 적지 않았다.
"아직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역경이 닥치면 괴로워하고 심지어 원망하는 반면, 행동력 높은 사람은 주저앉지 않고 재빨리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최정상에 있는 사람은 지식보다는 대화나 사고능력, 개방성 등 지식을 다루는 '방식'에 더 주의를 기울인다."
"평범한 이들은 좋은 성적과 졸업장으로 노력하는 자세를 익히고 성과를 통해 두각을 나타내는 법을 배운다."
"언어는 내용을 교환하기 위한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언어는 언제나 부와 지위, 그리고 권력을 표시한다.
하류층의 자녀들은 모범적인 조언자와 롤모델을 갖는 경우가 훨씬 드물다. 그 차이가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좋아하는 이모가 슈퍼마켓 계산대에 앉았느냐, 아니면 자동차 기업 아우디의 전략기획팀에 앉았느냐가 어린 조카의 아비투스에 영향을 미친다."
상류층 하류층 구분하는 저자에게 과하게 비뚤어진 생각을 했다. 마치 공부 못하는 자식을 둔 부모가 내놓을 게 없을 때 '건강이 뭐니뭐니 해도 제일 중요하지요.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겁니다" 와 같은, 하나마나한 말을 하는 심리 같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