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파랑새를 잡았나요?

'행복은 발가락 사이로'를 읽고

by 김패티


"헤어 소수자"라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헤어 소수자'라니, 대머리의 애환이 담긴 이 능청스런 말을 칼럼에서 읽었다. 찰지다.


이광이 작가가 한겨레신문에 연재했던 칼럼을 책으로 냈다.

신문에서 보았던 유쾌함과 애잔함이 책 한 권에 담겼다. 중년의 쓸쓸한 이야기도 있고, 인생의 황혼기를 보내는 노모와 함께하며 느끼고 깨달은 이야기도 있다. 무엇보다 말을 참 재미지게 부린다.

책을 읽다 보면 표지 사진이 흐릿한 게,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인생은 지나고보니 찰나였다. 앞으로 내가 갈 시간은 더더 찰나일게 분명하다. 삶은 갈수록 가속이 붙는다는 걸 겪어 알고 있다. 작가는 그 찰나를 잘도 잡아 썼다.


수필을 쓰고 싶은 분께 추천한다.

무엇을 쓸지, 속사정을 얼마큼 드러낼지, 단어 고르기는 어떻게 할지 등을 주목해서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글을 읽다 보면 작가의 말솜씨는 어머니를 닮은 것 같다.

인생에 대한 어머니의 통찰이 대단하시다.

인생 도처에 스승이 계시다.


일부를 옮겨본다. 순전한 팬심으로.







50대에 새 일자리를 얻어 광주에 내려갔을 때, 홀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아야, 방 얻어 따로 살어라."


장손인 나는 짐을 싸 들고 당연지사 어머니 아파트로 들어갔는데, 노모가 동거를 거부한 것이다.


“어릴 때 니들 키우고 다 커서 또 뒷바라지해야 겄냐, 나 늙어서 못한다!”는 이유였다.


이것은 속사정이야 어떻든 구설에 오를 일이다. 귀향해서 일하면서 홀어머니를 팽개치고, 지 편하자고 각각 두 집 살림을 한다? 이것은 모양이 너무 빠진다.



나는 궁리 끝에 세 개 항을 제시했다.


첫째, 기존 용돈에 하숙비를 얹어 도톰하게 드린다.

둘째, 아침은 집에서 먹겠지만 점심 저녁은 대개 밖에서 먹고 올 것이니, 그리 걱정 안 하셔도 된다.

셋째, 내 방 청소와 빨래는 스스로 해결한다.


일주일이 지나 모자는 세 개 항에 합의했다. 나는 그렇게 어머니와 둘이서 8년을 살았다.




새해가 시작되는 정월 어느 날, 볕이 드는 거실에 앉아 내가 말했다.


"아침에 세수하는 손가락 사이로 왔다가 저녁에 양말 벗는 발가락 사이로 하루가 가버린다 하더니, 세월이 참말로 그렇지 않으요?"


노모 응수한다.


“그래, 그 말이 듬쑥한 말이구나. 아야, 바닷가 펄 밭에서 자잘한 칠게 잡아 놓은 통발 있지? 그것이 엎어지면서 게들이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잖아, 얼마나 빠르냐? 설날 뚜껑을 열면 삼백예순 날들이 저 칠게마냥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드라."


아침 손가락과 저녁 발가락 사이에서 하루를 얘기했더니, 뻘뻘뻘뻘 도망가는 칠게의 달음질에서 일 년을 얘기한다.



일을 많이 한 것이 짧고, 냄새나고 그런 것이므로, 아침 손가락의 향긋한 커피는 저녁 발가락의 구릿한 냄새 덕분이겠네, 불교의 연기緣起처럼. 그래서 좋은 시간들은 발가락 사이에서 시작되는 것이로구나. 그런 기특한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노모, “그 손가락 발가락 얘기는 아침에 세수하고 나서 저녁때까지 많이 걸으라는 얘기 같다” 하신다.


인생의 입동에 접어들어, 지난가을 삶의 모서리에서 반짝거리던 순간들, 강변의 일몰과 산사의 아침, 어머니와 스님과의 얘기들, 그리고 퍼덕거리는 물고기를 쥐었을 때 같은 비릿한 순간들, 그때그때 산문이라는 이름으로 써 놓았던 조각들을 한 데 엮어 보았다. 글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몸으로 써야 하기 때문에, 그 일은 필연적으로 성찰이며, 성찰이 덜 익었을 때는 부끄러움일 것이다. 성찰은 시계의 초침처럼 늘 새롭고 끝이 없는 것이라, 그것으로 부끄러움을 가리기는 어려운 일이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4527566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