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바가바드 기타'
바가바드 기타는 힌두교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 속에 등장하는 일부로, 인도 철학의 핵심적인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경전이다. 힌두교 3대 경전은 베다, 우파니샤드 그리고 바가바드 기타를 말한다. 바가바드 기타는 '거룩한 자의 노래 또는 '신의 노래'라는 뜻이다. 이 책은 아르주나라는 전사와 그의 스승 크리슈나의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야기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쿠르족의 판다바 왕국의 왕에게는 다섯 명의 왕자가 있었다. 왕이 죽으면 전통에 따르면 맏이가 왕위를 계승해야 하지만 맏이 드리타슈트라는 장님이어서 차남 판두에게 넘어가게 된다. 그러나 판두마저 죽게 되자 판두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판두의 맏아들이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을 때, 장님인 드리타슈트라의 맏이가 이에 불복하여 반란을 일으킨다. 이에 판두의 3남인 아르주나 (바가바드 기타의 주인공)가 드리슈트라의 맏이를 치기 위해 전장으로 나가게 된다.
아르주나는 이 전쟁의 의미가 무엇인가 고민에 빠진다. 전쟁의 상대는 사촌들이며 죽고 죽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때 크리슈나가 등장한다. 크리슈나는 마부이자 아르주나의 스승이기도 하다.
"크리슈나여, 도대체 우리와 싸움을 하려고 정렬해 있는 이들은 내 친족들로 그들과 싸워야 하다니 도대체 이 전쟁은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전쟁에 승리한다하더라도 사촌 형들, 스승, 친구를 죽이고서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아르주나는 불살생주의자였다. 살생을 금하는 아르주나로서 사촌을 죽여야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바가바드 기타는 고민하는 아르주나를 설득하는 이야기다. 바가바드 기타는 챕터가 18개나 된다. 다시 말해서 18개 챕터는 아르주나를 설득하기 위해 크리슈나가 동원한 이야기가 18가지나 된다는 뜻이다. (우리가 읽은 책은 청소년을 위한 것이어서 10장으로 줄여 정리되어 있다.)
"아르주나여, 너는 전사다. 군인은 정의를 위해 전쟁에 참여하게 된 것을 기뻐해야 한다.전쟁에서 자신의 직분에 따른 의무를 다하는 것이 명예로운 일이다. 만일 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의무를 저버리는 일이며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다. 그러니 확고한 결단을 하고 일어서라. 즐거움과 고통, 이익과 손해, 승리와 패배를 같은 것으로 보고 이 위대한 전쟁에 뛰어들라. 다만 죽이면서 쾌감을 느끼거나 비감에 젖지 마라. 다만 너의 직분에 맞는 의무를 다하라. "
바가바드 기타는 이런 식으로 주저하고 질문하는 아루주나와 그를 설득하는 크리슈나 간의 대화가 주요 줄거리다.
주저하는 아르주나에게 크리슈나는 주저말고 전쟁에 최선을 다할 것을 주문한다. 행위를 하되 행위의 결과에 대해 집착을 버리고 행하라고 한다. 바가바드 기타에서는 자신의 다르마를 따를 것을 요구한다. 다르마(Dharma)는 힌두교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각 개인이 지녀야 할 도리, 의무, 정의를 의미한다. 바가바드 기타에서는 다르마에 따라 자신의 의무를 다할 때 그게 올바른 길이라고 말한다.
크리슈나의 '힘을 다해 나가서 싸우라' 명령은 삶이 불합리하며 잔인하기까지 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헤쳐나가라는 의미다. 인간은 유년기, 장년기, 노년기의 몸을 차례로 거쳐 죽음 다음에는 죽음 다음의 몸을 입는다. 이 과정에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모두 경험하지만 이런 경험은 흘러가는 것. 일시적으로 왔다 갈 뿐이니 변화에 동요하지 말며, 기쁨도 괴로움도 동일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진정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크리슈나는 말한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현재의 삶뿐이다. 현재의 삶을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하다. 진짜 삶은 오직 현재의 삶에 있다. 진짜 삶에 도달하는 방법으로 바가바드 기타에서는 이를 위해 카르마 요가, 즈나나 요가. 박티 요가를 배우라 한다.
요가란 다이어트나 건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의 태도를 말한다. 의도적으로 노력해서 하는 모든 행위가 요가이다. 카르마 요가는 행위의 요가이다. 직분에 맞는 의무를 열심히 행하는 것이 카르마 요가다. 다만 열심히 하는 행위 자체는 올바른 행위여야 한다. 올바른 행위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갈고 닦는 노력이 필요한데, 이를 즈나나 요가라고 한다. 즈나나 요가는 지혜의 요가다. 카르마 요가와 즈나나 요가를 통해 어느 정도 깨닫는다 해도 요가 정진을 멈춰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육체를 입은 인간은 이기적인 욕망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참자아(아트만)를 얻기 이해서는 평생 헌신해야 하는데, 내가 결정해서 무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모든 것을 신에게 맡겨라. 박티요가는 헌신의 요가다. 이렇게 할 때 사람은 태어남과 죽음이 반복되는 윤회의 바다를 쉽게 건널 수 있다고 바가바드 기타는 말한다.
바가바드 기타의 핵심은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삶을 살며, 그 삶에 최선을 다할 것을 요구한다. 오늘을 살라, 현재의 삶이 없이는 진리에 다다르지 못한다고 말한다.
포스트잇을 여러군데 붙였으나 그 중 하나만 옮겨 적는다.
참자아(아트만)를 깨닫는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람이 됨을 의미한다
"(----) 고통과 기쁨에 동요하지 않고 모든 것을 평등하게 보는 사람, 어떤 상황에나 만족하며 자신을 제어하고 굳은 믿음을 가진 사람, 기쁨, 경쟁심, 두려움, 열망에서 멀리 벗어난 사람, 즐거움과 괴로움을 동일하게 여기는 사람, 비난과 칭찬을 동일하게 여기며 침묵하고 어떤 상황에도 만족하는 사람" (98-99)
어떻게 하면 즐거움과 괴로움을, 비난과 칭찬을 동일하게 여길 수 있을까? 영원하지 않다는 것, 모든 것을 흘러간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즐거움도 괴로움도, 비난도 칭찬도 집착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지금 좋은 선택이라해도 그게 영원히 좋은 선택이 될지 알 수 없으며, 지금 결과가 나쁘다한 들 그 결과의 미래 또한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뚜벅뚜벅 무소의 뿔처럼 나아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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