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
마욜린 판 헤임스트라의 '우주에서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단순히 우주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나열하는 책이 아니다. 저자는 시인이자 소설가로서, 천문학과 이슬람 신비주의를 접하며 우주를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을 제시한다.
지은이 마욜린 판 헤임스트라는 네덜란드 사람이다. 시인이자 소설가, 극작가이고 언론기관 <데 코스트리 판던트>우주 전문 기자로 활동한다. <우주에서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In Lichtjaren heeft niemand haast)는 저자의 첫 논픽션이다. 번역은 레베카 솔닛의 <야만의 꿈들> 등 다수의 책을 번역한 양미래 작가가 했다.
줄거리
이 책은 우주 비행사들이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며 느끼는 조망 효과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우주 비행사들은 지구로 귀환 후 가장 활발한 지구 활동가가 되는 데,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는 하나의 푸른 구슬이며, 모든 생명체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조망효과란 우주를 탐험하고 온 우주인에게서 나타나는 큰 심리적 변화를 말한다. 그들은 우주 탐험 후 자연관, 생명관, 윤리관 등 가치관 인식의 변화를 겪는다.
인간은 우주를 탐험하면서 자신이 우주의 일부임을 자각하고,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고 한다. 그들은 우주를 배경으로 지구를 바라보면서 지구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당면한 환경 문제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우주 비행사의 시각으로 지구를 볼 것을 요구하며, 우리 모두 지구를 보호해야 할 책임감이 있음을 일깨워 준다.
밑줄 긋기
"우리는 달을 발견하러 갔다가 지구를 발견했다."27p
인류가 달 탐사를 통해 얻은 가장 큰 성과는 달에 대한 새로운 지식 획득이 아니라, 정작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하는 것이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구가 우주 속 작고 푸른 점에 불과하다는 사실,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의 유일성임을 깨닫게 해 준다.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는 국경이나 인종의 구분 없이 하나의 공동체라는 것, 그러니 갈등과 분열이 왜 생기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갑자기 현재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괴한 일들을 생각할 때 가슴이 답답해지고 서글퍼진다. 저들에게 무엇이 더 필요한 게 남아 있는 건가. 추잡하고 기괴한 욕망덩어리만 보일 뿐.
'세대간 기억 상실증이죠.' '모든 세대가 이런 세재보다 적은 수의 별을 보며 자라지만, 예전에는 어땠는지 기억하지 못해요. 그러니 아무도 별을 그리워하지 않고요.'
세계 지도를 보면 유럽인과 북미인의 99%가 빛으로 오염(빛공해)된 하늘 아래 살고 있다. 오늘날 이러한 대륙에서 태어난 어린이 80%는 단 한번도 은하수의 장관을 온전한 형태로 볼 수 없을 것이다.54p
밤의 한반도를 찍은 구글 지도를 볼 때 묘한 자부심 같은 걸 느끼곤 했다. 휴전선을 경계로 확연히 구분시켜주는 조명, 문자로 말로 남북 경쟁에서 승리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 같아서다. 구세대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한 탓이겠지.
여름밤 모기를 쫓으며 밤하늘의 은하수를 보던 기억이 있다. 은하수가 기우는 것을 보면서 어린 눈으로도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었다.
내가 보았던 은하수는 책 속에나 있지 않을까. 세대 간 기억 상실, 너무나 적절한 표현이다. .
만약에 모든 사람이 진정으로 어떤 존재이며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상태로 하루를 시작한다면, 만약에 생명체가 출현하는데 필요한 자연적인 힘과 상황의 미세한 조정을 계속 인식한다면, 만약에 빅뱅이 조금이라도 늦게 발생했다면 모든 것이 폭발했을 것이고 조금이라도 빨랐다면 원자가, 즉 물질이 형성되지 못했을 것임을 안다면, 만약에 이 모든 일이 얼마나 있을 법하지 않은 현상인지를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그러면 우리가 서로를 그리고 이 행성을 더 잘 돌보지 않을까요?
순간 그의 책에서 터무니 없는 숫자가 떠오른다. 지금과 같은 우주가 형성될 확률, 즉 10^(10^123)분의 1, 소수점 이하 영이 수십억 개에 이르는 확률.(---) 이렇게 터무니 없는 우주론적 균형 잡기가 우리 삶을 지탱하고 있다. 74-75pp
우리가 사는 장소, 나, 너라는 경외로움.
우리가 얼마나 작고 운 좋은 존재인지를 일깨우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를 더 거대하고 강인한 존재로 만들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프랑스 천체물리학자 파투마타 케베는 그의 저서 <원스 어폰 어 문>에서 달의 인력에 반응하는 지구의 단단한 표면이 매일 약 30cm정도 상승하고 하강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이 현상을 땅의 호흡이라고 부른다. 케베에 따르면 '공감'이란 "우리가 다른 사람, 자연, 우주 전체와 함께 느끼는 감정'이다. 공감은 함께 느끼고 함께 경험한다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단어. 동기화된 상태. 지구와 달 사이에 이러한 동기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지구는 균형을 잃고 혼돈에 빠지고 말 것이다. 88p
지구와 달이 이렇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관계라는 것, 이는 느끼지 못하지만 자연과 우주와 나가 서로 연결되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걸 깨닫게 해준다. 하찮은 나 개인이지만 이렇듯 우주적 존재이기도 한 것. 스스로 대단하고 경외롭다.
'공감'은 인간 사이에 필요한 소소한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과 우주까지 확장시켜 생각한 점이 인상적이다. 지구와 달의 동기화, 밀물 썰물 등의 원리는 알고 있었지만 이 균형이 깨지면 혼돈이 발생한다는 것, 지구가 지속가능한 행성이 되려면 이것들이 시스템적으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건 가만 두면 절로 이루어 질테니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균형은 우리가 노력해서 맞춰야 하지 않겠나.
폰 데르 된크는 우주 조약이 갱신된 지 한참 지났으며, 이 분야의 발전 속도를 고려하면 이는 시급히 처리해야할 문제라고 주장한다. 달은 국제 수역과 더불어 '인류 공동의 유산'에 속하니까.
'인류 공동의 유산'이라니. 생각해 보면 이상한 말이다, 우리는 이렇게 도달할 수도 없는 모든 장소를 정말이지 누구에게서 물려받은 걸까?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은 없지만 지금처럼 우주선을 쏘아올리다가는 언젠가 지구가 토성처럼 우주쓰레기 띠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저녁 때 집으로 돌아오다 문득 올려다 본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다 금성일까? 물었더니 곁에 있던 사람으로부터 인공위성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답이 돌아왔다.
우주 쓰레기가 급속히 불어나면서 지구는 2015년 이미 2만 개의 쓰레기 조각에 둘러 싸여 있다고 한다. 칼 세이건은 존재가 알려지기를 기다리는 놀라운 것을 찾기 위한 우주 여행을 갈망하면서 우주에 떠다니는 쓰레기는 상상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그러나, 오늘 뉴스는 '쿼드리플데믹이 일어나는 건 아닌지에 대해, 대통령 체포에 대해, 집값에 대해' ---속보라며 알려준다.
길 위에 난 모퉁이를 지나면
우물 한 정, 성 한 채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저 더 많은 길이 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알지도 못하고 묻지도 않는다.
모퉁이를 돌기 전의 길만 볼 수 있으므로,
그저 모퉁이를 돌 기 전의 길을 바라볼 뿐.
-페르난두 페소아
시인은 모퉁이를 돌기 전의 길만 볼 수 있다고 한다. 제한적으로 알고 있는 정보로 우물 한 정이, 성이 한 채가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을 할 뿐. 하물며 우주에 대해서야, 우리가 무얼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우주에 찍힌 점 하나, 일시적인 형태, 운석 충돌의 후손, 인간 피부 속 무수한 유기체 결집인 나---. 220p
근사한 책이다. 저자가 말하는 '우주에서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말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지구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준다. 지구를 새로 보게 한다. 경이로운 존재로서 나, 나가 살고 있는 지구를 소중히 여겨야 할 이유에 설득력 당한다.
추천하고 싶은 사람
시대의 우울에 갇힌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어제 대설주의보가 내렸었다.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 사람들은 밤을 새며 그 눈을 맞았다.
눈과 추위를 막기 위해 은박지를 뒤집어 쓴 사람들이 서글픈 눈요정같아 보였다. 눈물이 났다. 누가, 왜, 저들을 떨고 서 있게 하는가.
우주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며,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도록 격려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작은 부분일 뿐이며, 더 큰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을 상기하면서 이 책을 읽어 보시라 권하고 싶다.
우주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사람에게는 우주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여 삶에 대한 통찰력을 얻게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바쁜 일상에 지친 사람에게도 권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주의 광활함과 시간의 무한함을 느끼며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을까.
우주와 인생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흥미로운 질문들을 던져줄 것 같다. 인간의 존재 가치 등에 대한 저자의 통찰력 있는 분석은 자기 삶을 돌아보게 하는 기회를 준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위로와 희망을 얻고,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모두 우주의 별입니다. 각자의 빛을 잃지 않고 빛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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