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일전에 SNS에 유머 글이 그림과 함께 올라온 걸 웃으며 본 적이 있어요. 버스를 타던 할머니가 "이 버스엔 사람은 하나 없고 죄다 방위야." 하는 그림입니다. 버스 안엔 이미 타고 있던 예닐곱 명의 군복차림의 젊은이가 있었고요.
그날은 그냥 웃고 넘어갔어요. 그러다 김현경 선생의 <사람, 장소, 환대>를 읽고 그냥 웃고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알았어요.
이 책 첫장부터 무심했던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어떤 보이지 않는 공동체-도덕적 공동체-안에서 성원권을 갖는다는 뜻이다. 즉 '사람'임은 일종의 자격이며,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인간'과 다른 점이다. '인간'이라는 것은 자연적 사실의 문제지, 사회적 인정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그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31)
‘사람답게 산다’는 게 뭘까요? 그런 생각 한 번쯤 해보신 적 있으시죠?
바쁘게 일하고, 관계에 치이고, 때론 무시당하거나 투명인간이 된 느낌이 들 때,
“나 지금 사람 대접 받고 있는 걸까?” 싶은 순간이 있지 않습니까.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는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하는 책이에요.
‘사람답게’ 산다는 건 도대체 뭘까?
이 책은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사람, 장소, 환대.
내용은 머리말, 본문 9장과 부록 1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머리말 "그림자를 판 사나이"라는 사람이라는 자격, 사람답게 하는 장소, 그리고 환대 이야기를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의 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 한 편으로 문을 엽니다. 이 이야기만으로도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습니다만, 오늘은 가볍게 넘어갑니다. 언젠가 한 번 이에 관해 깊지 않지만 생각한 것을 정리한 글이 있습니다.
첫 번째 키워드는‘사람’이에요.
사람은 태어났다고 자동으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사람으로 인정받을 때’ 비로소 사람다워진다는 게 저자의 말이에요.
앞서 할머니의 사람은 없고 방위만 있다는 말을 가만 들여다 보면 이 말은 단순히 버스에 민간인이 없고 군복 입은 사람들(방위병)만 있다는 표면적 의미를 넘어섭니다.
핵심은 할머니가 방위병들을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고 '방위'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서 '누가 진짜 사람으로 인정받는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할머니에게 '사람'이란 (물론 할머니는, 우리도 따져가면서 말하지는 않지요. 무의식적으로 인식할 뿐) 각자의 개성과 이야기를 가진 고유한 존재입니다. 반면에 '방위'로 불린 이들은 군복을 입고 똑같이 보이며, 개인의 특성보다는 '방위병'이라는 역할로만 인식되고 있습니다.
김현경은 이를 통해 '사람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사회 안에서 고유한 개인으로 존중받고 인정받는 과정이라고 설명합니다.
생각해 보면, 학교 다닐 때 이름 대신 번호로 불렸던 유쾌하지 않은(불쾌한 것까지는 느끼지 못했어요. 어이, 5번! 하고 불렸을 때) 기억이 있습니다. 유쾌하지 않았던 이유를 그때는 몰랐는데, 이 글이 이유를 알게 해 줍니다.
일 년에 서너 번은 만나는 사람 좋은 후배가 있습니다. 하루는 그가 이야기 속에서 남편을 지칭하기를 "이 인간이~"라고 해서 그때도 역시 그저 듣기 좋은 말을 놔두고 그렇게 부르느냐며 나무람 비슷하게 말하며 웃고 지나갔습니다. 기분이 그랬을 뿐 역시 따져보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몹쓸 인간 같으니라고'와 '이런 몹쓸 사람 같으니라고' 한 다음에 뒤에 각각 무슨 말이 올까요? 다만 두 글자 차이지만 그 속에 담긴 뉘앙스는 크게 다릅니다.
"이 인간이"는 그래도 나은 것일 수 있습니다. 그보다 못한 게 다양하게 있을 텐데요. 투명인간 취급받는 것라든가, 사물 취급 받는다든가.
그보다 더 나쁜 게 기분 나빠서 되도록 생각도 하고 싶지 않지만, 권력이든 돈이든 힘을 가진 이들이 국민들 앞에서 공공연하게 거짓말하거나 했던 말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는 인사들도 있습니다. 그런 이들을 보노라면 투명인간 내지는 말을 못 알아듣는 짐승처럼 여김받는 것 같아 모욕적입니다. '무시하고 말면 그뿐'이 안 되더라구요.
두 번째 키워드는 ‘장소’입니다.
나는 '내 방, 내 일을 하기 위한 방과 책상을 갖게 된 지 얼마 안 됩니다. 노트북을 들고 거실로, 식탁으로, 아이들 책상으로 옮겨 다니며 읽고 쓰고는 했지요. 온 집안이 다 내 공간 같은데 막상 내 공간이라 말할 만한 공간이 없었던 셈입니다.
내 방, 내 책상(책을 늘어놓거나, 필기도구나 각종 문구들이 열린 채로 놓여 있어도 되는) 을 갖게 된 게 얼마 안됩니다. 가부장적 질서에 익숙한 나는 불편했으나 당연한 것으로 문제 제기를 하지 않고 살았지요. 바깥에서 딸들에게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말하면서도 정작 나는 스스로 예외였던 겁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장소'의 개념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는 사회적·존재론적 의미를 갖습니다. '장소'는 사람됨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데요, 장소란 단순히 물리적 위치가 아니라, 사회 안에서 한 개인이 인정받고 자리매김할 수 있는 상징적 공간을 의미합니다.
장소에 대한 김현경 선생의 생각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이 책의 부록 "장소에 대한 두 개의 메모"입니다. "여성은 장소들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자리를 발견하는 것일까? 그리고 사회는 여기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질문합니다.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곧 이 장소에 대해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며 주인 혹은 손님으로 환대받을, 환대할 권리를 갖는다."
그러나 '막상 여성은 집안에서조차 장소 상실을 겪는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장소는 사회 안에서 받아들여지고 인정받는 위치를 의미합니다. 사회적 인정이란 다른 사람들이 나를 한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존중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속할 수 있고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적 자리를 의미합니다.
장소가, 즉 이런 사회적 자리가 없다면 그 사람은 비록 물리적으로는 존재하지만 사회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겠지요. 노숙인이나 난민들은 종종 사회에서 진짜 '사람'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그냥 문제나 숫자로만 취급되는 경우도 이에 해당됩니다.
장소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리,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기도 해요. 김현경 선생은 자신의 엄마를 예로 들며 '엄마가 집안에 친구를 초대하는 걸 봄 기억이 없로 없다면서, 혹 있다해더라도 아버지가 퇴근하기 전에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선생은 이것이 단지 엄마세대의 문제인가 질문합니다. 페미니즘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이지만 충분히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여성에게 밤길은 성폭행을 두려워하며 걷지 않는가.
책을 읽는 동안 잠자던 내 신경을 한올한올 일으켜 세움 받는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 키워드는 ‘환대’입니다.
환대는 그냥 친절하게 대하는 걸 넘어서, ‘당신이 여기 있어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마음이에요.
요즘엔 사회도, 회사도, 관계도 자꾸 선을 긋잖아요. 누구를 안으로 들일지, 누구를 바깥으로 둘지.
그런데 그 기준이 너무 좁고 빠르다 보니까 서로를 받아들이는 여유가 없어지는 것 같아요.
책이 말하는 핵심은 이거예요. "사람은 장소 안에서, 환대를 받으며, 사람다워진다."
그럼 우리는 어디서 사람다워질 수 있을까요?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회사?
가끔 얼굴 붉히는 가족과의 공간?
아니면 나 혼자 고요히 숨 돌릴 수 있는 그 작은 카페 한켠?
결국 이 책은 우리에게 조용히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사람답게 살고 있나?
나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람으로 대하고 있나?
나는 누구에게 환대를 건네고, 누구를 외면하고 있나?
『사람, 장소, 환대』는 정답을 주는 책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을 멈춰 서서 다시 바라보게 만들어요.
그리고 그게 우리가 조금 더 따뜻하고 단단한 사람이 되는 첫걸음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