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집, 집으로 본 한 여성 생애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by 김패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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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꼼꼼한 독서감상문을 썼다는 건, 특별히 감흥이 컸다는 뜻이다.


1. 성(姓)이 말하는 것

결혼한 여성이 원래 성을 그대로 유지하는 한국 사회. 언뜻 보면 여성의 정체성을 존중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가족 구성원들이 같은 성을 공유하는 집에서 홀로 다른 성을 지닌 사람으로 산다는 것." 이것은 여성을 주체적 존재로 여겨서가 아니라, 피가 섞이지 않은 여성을 영원한 이방인으로 남겨두기 위함이었다. 부계 혈통주의에서 여성은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감히 따르지 '못한다'.

이 불편한 진실을 처음 명확히 이해했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우리는 종종 한국 여성이 결혼 후에도 자기 성씨를 유지한다는 사실을 자주권의 증거로 내세우곤 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배제의 논리가 숨어 있었다.

세계에서 드물게 여성가족부라는 관청을 만든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만약 여성이 진정으로 환대받는 사회였다면, '평등을 일상으로'라는 구호도, 여성가족부 자체도 필요 없었을 것이다.

인류학자 김현경은 진정한 환대란 "어떤 경우에도 그의 사람 자격을 부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이 그런 환대를 받는다면, 성이 바뀌고 안 바뀌고가 무슨 문제일까.


2. 집은 누구에게나 같은 의미일까

엄마에게 집은 쉼터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집이 쉼터이기 위해, 다른 누군가에게 집은 일터가 되었다." 보수도, 출퇴근도, 휴일도 없이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가사노동의 현장. 엄마는 운전을 배우고 싶어 했고, 친언니를 만나러 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시부모님은 며느리의 외출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집처럼 편안하다'는 말이 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가 쉬는 공간을 집이라 부른다면, 엄마에게 집은 집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가족에게 집이 집이기 위해서, 엄마는 집을 비워서는 안 되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100년 전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독립된 경제력과 정신적 자유를 누릴 공간 말이다. 그녀는 또한 "집안의 천사를 죽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라고 강요받는, 자신을 희생하는 여성상을 거부하라는 뜻이었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이 말은 현재진행형이다. "집안 전체가 나의 공간이었으나 내 공간이 아니다"라는 여성들의 하소연이 그 증거다.


3. 집이 계급을 만든다

'대구의 강남', '그 동네에서도 가장 비싼 집'에서 살았던 5년. 그 기간 동안 나는 집이 가진 계급과 자본의 속성을 똑똑히 보았다.

단지와 단지로 이루어진 아파트와 고급 빌라는 비슷한 계급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신분제 공간이었다. 계급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었다. 그것은 개발된 구역과 개발되지 않은 구역을 가르는 '길'이었고, 아파트 단지를 둘러싼 '담'이었으며, 학교에서 아이들이 이루는 '그룹'이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도로명 주소를 변경할 때, 새 주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민원이 폭주했다. 사람들은 부자 동네로 인식되는 이름을 원했다. 심지어 동네 이름을 아예 바꾼 경우도 있다. 집값 때문이다.

요즘 아파트 이름들이 점점 길어지는 것도 같은 이유다. 더 이상 진달래 아파트, 개나리 아파트처럼 시골 노인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소박한 이름은 나오지 않을 것 같다.


4. 여성과 불안

혼자 사는 여성의 일상을 지배하는 감정이 있다면, 그것은 '불안'이다.

창문과 현관문의 잠금 상태를 강박적으로 확인한다. 쓰레기를 내놓을 때도 복도에 사람이 없는지 살핀다. 엘리베이터 문 여는 소리에 외사경으로 바깥을 힐끔거린다. 밤늦게 옆집 현관문 소리가 들리면, 한두 번 목례를 나눈 것이 전부인 옆집 여자의 안위를 걱정한다. 가끔 낯선 남자가 창밖에서 지켜보는 악몽에 가위눌리기도 한다.

계층도, 세대도, 삶의 궤적도 다른 다양한 여성들을 지배하는 한 가지. 그것은 바로 불안이다.

내 딸이 독립해 집을 구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도 안전이었다. 우선 큰길에 면해 있을 것. 남성이라면 처음부터 고려 조건이 아닐 것들이 여성에게는 필수가 된다. 환갑이 넘은 지금도 이 두려움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5. 품위를 지키는 일

"내가 존중받기를 원하는 만큼 남의 마음을 섬세하게 헤아리는 사람이고 싶었다."

품위는 인간에 대한 예의다. 동시에 가진 것 없는 자가 자기혐오에 빠지지 않기 위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방어선이다. 어떤 환경에서는 자연스럽게 몸에 배는 품위와 교양과 인격이, 다른 환경에서는 필사적인 노력을 통해 만들어야 하는 태도가 된다.

피곤하고 지친 나머지 화만 남은 이들에게는 인간성을 유지하는 데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불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최후의 보루까지 내몰렸을 때, 거기까지 참고 견뎌온 필사적인 노력이 무너지는 것을. 예의를 따질 수만 있어도 희망은 있는 것인데.


6. 독립의 조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어도, 원하는 하나쯤은 성취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들을 버리고 쓸모 있는 노동자로 살자고 다짐했다.

독립을 위해 필요한 것은 집과 일이었다.

한때 가정폭력으로 고통받는 여성을 돕는 일을 했다. 그들은 집을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폭력이 있을 집으로 돌아갔다. 이유는 경제력이었다. 매 맞지 않고 살려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재일교포 사회학자 강상중은 '일이란 사회로 들어가는 입장권'이라고 정의했다. 일은 밥벌이인 동시에 정체성이다. "나의 정체성은 작가가 아니라 집필노동자였다. 비로소 내 나이에 걸맞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7. 장소와 자리

인류학자 김현경은 'place'가 '장소'로도, '자리'로도 번역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 단어는 '물리적 장소'이자 '상징적 자리'다.

"장소에 대한 투쟁은 존재에 대한 인정을 요구하는 투쟁이기도 하다." 여성은 사생활의 영역인 집에서조차 장소 상실을 겪는다.

자기만의 방이라는 특권을 생각할 때마다 대구에 살았던 집들이 떠오른다. 우리 집에서 가장 넓은 방을 가진 사람, 집의 크기나 방의 개수와 상관없이 언제나 자기만의 방이 있던 사람은 할머니뿐이었다.

할머니의 권력은 아들을 가진 어머니에게서 나오는 가부장적 위력이었다. 반면 엄마는 집 안의 어느 곳에나 있어야 했으므로, 집 안의 어느 곳도 소유해서는 안 되었다. 엄마는 장소 그 자체였다.

그런 엄마에게도 침범할 수 없는 공간이 있었다. 집안팎에서 이중노동을 하면서도 잠들기 전까지 시와 소설을 읽었던 엄마. 독서는 엄마에게 유일한 정신적 공간이었을 것이다.


8. 나의 어머니

내 어머니는 저자의 어머니와 달랐다. 사람들은 어머니를 '치마만 둘렀지 대장부'라고 말했다. 부잣집 딸이 가난한 집에 시집온 배경이 만든 효과였다.

아버지는 손이 귀한 집의 3대 독자였지만 가난했다. 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는 시집살이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친정, 외가의 도움으로 살림을 일구셨다. 외할머니가 오시면 아버지는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가엾었다.

우리는 '외가 장학금'으로 학교를 다녔다. 아버지가 가부장적 위력을 누리기에는 턱없었다. 어머니는 아버지 앞에서 기세가 등등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머니가 성평등적 의식이 있으셨다는 뜻은 아니다. 딸들에게 간섭이 많았고, 아들 편애를 대놓고 하셨다. 우리는 어머니의 편애가 오빠를 유약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오빠는 유약한 게 아니라 '가정적인 남자'였을 뿐이다. 그걸 깨달은 건 결혼 후, 남편과 비교하면서였다.


9. 빚진 자들

"자기만의 공간이 있었다면 엄마는 가족 관계에서 호칭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불릴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 승진과 출세, 성공과 사회적 지위를 생각할 때, 다른 누군가는 식사와 설거지, 청소와 빨래를 고민한다. 누군가가 바깥에서 '중요하고 대단한' 성취를 이루는 동안, 다른 누군가는 집 안에서 '하찮고 대단한' 일을 감당한다.

전자는 후자에게 빚진다.

만약 딸이 아기를 낳아 기르면서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나는 딸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세상이 달라지고, 교육을 받았고, 책을 읽었다 해서 나는 확 바뀌지 못한다. 나는 보수적이다. 작가가 그토록 안쓰러워하는 어머니의 삶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10. 상실과 그리움

문득문득 그립다. 그리움이 24시간 계속되게 하는 것은 없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18년 함께 살았던 강아지를 잃었을 때도 그랬다.

그리움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것은 그립게 하는 대상을 알기 때문이다. 설명할 수 있으면 좀 더 견디기가 수월하다. 말할 수 있으면 그건 더 이상 문제가 아닌 것처럼.

불현듯 깨달았다. 내가 잃은 것은 어머니와 개 한 마리가 아니라, 다정한 존재와 함께한 내 삶의 한 시절이었다. "지금은 없는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시간을 부르는 일이다."


11. 동네가 주는 위로

집과 동네가 위로가 되었다. 동네 산책은 계획을 할 때도 있고, 목적지를 바꿔도 괜찮고, 중간에 돌아와도 상관없었다.

상념을 지우고 '걷는 것', 걸으면서 '보는 것'. 사라진 것과 사라지고 있는 것에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낡고 애잔한 이 동네의 골목이 선망하고 동경하던 이국의 거리보다 좋았다.

나도 당신도, 어딘가로부터 누군가로부터 떠나온 이방인이다. 나는 더 이상 떠돌지 않아도 된다는 것, 담장이나 길을 찾아 이동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마음 놓였다.

하지만 여전히 어딘가로 떠나는 꿈을 꾼다.


맺으며

이 책은 집이 한 여성에게 미친 영향에 대한 이야기다. 집을 통해 본 한 여성의 성장기라는 점에서 자전적이지만, 집이라는 '물리적 장소' 안에서 여성의 '상징적 자리'를 가늠해 보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내가 겪은 일은 나만 겪은 일이 아니고, 나의 생각은 타자로부터 받아들인 여러 생각의 총합이며,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걸 일반성이자 보편성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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