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돌아오듯 돌아온 책

여행의 이유

by 김패티


"허영과 자만은 여행자의 적이다."


소설가 김영하가 자신의 책 '여행의 이유'에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를 읽고 한 말이다



포세이돈과의 불화. 오디세우스는 괴로웠다. 귀향길이 전쟁보다 더 험난했다.



오디세우스는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키클롭스)를 눈멀게 하여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고, 마녀 키르케와 요정 칼립소의 섬에서 발이 묶이기도 했했다. 그는 험란한 여정에서 부하들을 잃기도 하고, 신들의 도움(특히 아테나의 지원)을 받기도 하며 위험을 넘나들며 고향 이타카에 도착한다.



오디세우스의 귀향길은 서사적 여정, 신화적 여정이므로 정확히 그 거리를 측정할 수는 없다. 학자들은 오디세우스가 트로이(현재 튀르키예 서부)를 출발하여 고향인 이타카(그리스 서부의 이오니아 제도)로 돌아간 것이므로 10년이나 걸릴 길은 아니었다.



오디세이아를 읽은 사람들은 오디세우스의 지혜에 대해 말하지만 김영하는여행자의 바람직한 자세를 생각한다. 무사히 귀가하려면 집 떠난 자의 달라진 자기 정체성에 적응하고, 자기를 낮추며, 노바디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럴 때야 위험을 피하고 온전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여행 에세이라고 하면 흔히 아름다운 풍경 사진과 맛집 정보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 는 그런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왜 우리는 여행을 떠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시작해, 여행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인지를 철학적으로, 그러면서도 친구와 대화하듯 편안하게 풀어낸다.



나는 이 책을 코로나로 세상이 하수상하던 때에 읽었다. 그리고 격랑처럼 몰아친, 여행을 갈 수 없었던 코로나 시대, 그때 읽었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2019년 9월 19일,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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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독서정원 송년회 행사로 책 교환하는 순서가 있었다. 자신이 읽은 책 중에 누군가와 함께 읽고 싶은 사람을 생각하며 가져와 바꿔 읽는.



송년회장에 먼저 도착한 사람에게 참가자들이 제출한 책 중에 먼저 고를 권한을 주었다. 읽은 책도 있었지만 책의 면면이 낯설다. 나도 읽고 싶은 책이 많았다. 그렇게 차례로 골라가고 남은 책은 정호승 시인의 '슬픔이 기쁨에게'와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였다. 나는 둘 다 읽었고, 둘 다 집에 있는 책이었다. 무엇을 골라도 좋았지만 '여행의 이유'를 들었다.



책속에 크리스마스 카드를 넣어서 내기로 했다. 나도 기대를 하며 카드를 찾았지만 카드는 없었다. 대신 뜻밖의 메모를 발견했다.



"2019년 9월 19일 영문 선생님이"



이 책을 낸 사람이 수진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수업 시간에 책 읽기에 대해 말할 때 이따금 거명하는 이름. 내가 좋아하는 사람. 책 읽기 어렵다고 엄살하지만 잘 읽는 사람의 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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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서 나간 책이 돌아서 내게로 왔다.



책장을 펼치니 낯익은 문장들이 눈에 들어오지만, 이상하게 처음처럼 읽힌다. 글자들이 마치 오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친구같다. 그 책은 같은 모습이되 어딘가 달라진 느낌이었다.



훌훌 넘기다 "노바디의 여행" 쪽을 다시 펼쳐든 것도 우연이 아닌 것만 같다. 돌아온 책이 내게 묻는 것만 같았다. 너는 그동안 어떤 여행을 했느냐고.



오디세우스의 십 년 귀향은 단순한 지리적 이동이 아니었다. 그는 폴리페모스의 동굴에서, 키르케와 칼립소의 섬에서, 수많은 위험 속에서 자신을 시험받았다. 포세이돈의 분노를 산 것은 그의 오만함 때문이었고, 귀향이 이토록 험난해진 것도 그가 스스로를 너무 크게 여겼기 때문이다.



김영하는 바로 그 지점을 짚어낸다. 오디세우스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지혜도 있었지만, 결국 그가 '노바디'가 될 줄 알았기 때문이라고. 자신을 비우고, 낮추고, 때로는 익명의 존재가 되어야만 진짜 귀향이 가능하다는 것. 여행은 우리를 부풀리는 것이 아니라 깎아내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오디세우스는 마침내 도착했지만 나는 여전히 귀향 중이다. 귀향하는 내내 허영과 자만을 내려놓고, 노바디가 되어야만 비로소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고향을 향해서 가는 나의 귀향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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