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가 진짜 노릇 하는 세상

혼모노

by 김패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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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 <혼모노>의 표제작 '혼모노'는 신애기가 햄버거를 먹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신애기에게 신내림한 장수할멈은 양념도 하지 않은 채식을 먹었는데, 신애기는 버거 속 채소는 다 빼고 패티만 먹는다. 이 대조적인 모습이 소설의 주제인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처음부터 날카롭게 제시하는 것 같다.



이 장면은 독자에게 즉각적인 의문을 품게 한다. 과연 신애기에게 진짜 장수할멈이 내렸는가? 신령이 사람을 바꾸면 그 신령의 본질도 바뀌는가? 아니면 그도저도 아닌, 신애기가 거짓으로 신내림을 받은 척하는 것인가? 신애기의 신령 정체성과 진정성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불러일으킨다.



소설속 화자 문수가 이 장면을 목격하며 느꼈을 의심, 그리고 자신의 30년 무당 인생 전체가 흔들리는 불안감과 어떤 배신감이 생생하게 전달되는 강렬한 도입부다.



성해나 작가의 소설집 <혼모노>는 진짜와 가짜의 경계라는 질문을 다채롭게 던지고 있다. 총 7편의 단편이 수록된 이 소설집은 단순히 사전적 의미의 '진짜'를 찾는 것을 넘어, 진짜의 의미 자체가 혼란스러운 시대에 우리가 무엇을 믿고 무엇을 욕망하는지 묻는다.



표제작 '혼모노'는 30년 경력의 박수무당 문수가 자신의 신령인 '장수할멈'을 젊은 신애기에게 빼앗기면서 겪는 정체성의 혼란을 그린다. 문수는 신애기에게 조롱당하며 자신의 무당 인생이 흉내만 내는 가짜였는지 고뇌한다. 그러나 마지막 굿판에서 그는 신령이 떠난 후 비로소 '진짜 가짜'가 됨으로써, 명예나 시기, 심지어 진짜와 가짜의 구분에서도 놓여나는 역설적인 해방감을 경험한다.


이 작품은 직업적 정체성과 신념과 실재의 괴리, 그리고 늙음과 젊음의 세대 갈등을 깊이 있게 다룬다.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 는 아동학대 논란을 일으킨 유명 감독을 옹호하는 팬심과 도덕적 죄책감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다. 이 작품은 윤리적 딜레마와 덕질 문화, 그리고 개인이 집단 심리에 휩쓸릴 때 발생하는 모럴의 붕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스무드'는 재미교포 3세 듀이가 한국 땅을 밟으면서 겪는 혼란과 따뜻함을 그린다.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 사회의 모습은 정체성의 문제를 새롭게 조명하며, 선입견 없는 순수한 관계에서 오는 위로와 치유를 담고 있다.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 는 '인간을 위한 건축'을 주창하는 교수 밑에서 고문실을 설계하는 건축가 구보승의 이야기다. 구보승은 희망을 주지 않음으로써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건축 구조를 설계하며 목표 달성에만 매진하는 광기를 보인다. 이 작품은 미셸 푸코의 권력 이론이나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같은 지적 담론과 결부된 윤리 의식의 마비를 다루며, 인간성을 배제한 채 목표에만 집중하는 현대인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 소설집이 특별한 이유는 '진짜'의 기준이 무엇이며, 그 기준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집요하게 파고들기 때문이다. 작가는 본래 '장인', '진짜'라는 긍정적 의미였던 '혼모노'가 온라인에서 조롱의 밈으로 변질된 현상에 주목했다. 이처럼 긍정적인 본뜻이 일그러지는 사회상을 반영하며, 다수가 믿으면 거짓도 진실이 되는 시대를 정직하게 마주한다.



소설은 세대 사이의 갈등을 손쉽게 봉합하지 않는다. 젊은 세대가 가식적으로 느끼는 기성세대의 인위적인 도덕을 벗겨내며, 세상은 완벽한 선인도 악인도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읽는 나도 혼란스럽다. 나 스스로 옳다고 믿었던 가치관에 대해 갸우뚱하게되고, 이제까지 지니고 있어온 관습적 태도는 구태 인습인가도 여겨지고, 이런 것들이 강제로 부서지는 느낌이 든다.



소설은 '진짜'는 외부의 평가나 명예가 아닌, 스스로 개척하고 혼신을 다하는 삶의 태도를 말하는 것 같다.



'혼모노'의 문수가 깨달은 '진짜 가짜'의 자유나, '구의 집'의 광기와 같이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인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은 외부 스펙보다 내면의 확신과 자존감이 중요하다는 역설로 읽힌다.



AI시대, 가짜가 진짜인척 말하고 노래하는 시대, 그래서 더 손으로 만든 것들에 끌리는 것이리라.



사람들이 성해나 작가의 문장은 빠르고 단단하며, 강한 흡인력을 갖추고 있다고 평하던데, 그 말이 좀 이해된다. 무겁지 않게 읽히지만 주제는 가볍지 않은 소설이다.



혼모노ㅡ일본말이라는데, 그동안 한국에서는 일본말의 의미를 비틀어서 쓰는 거 같다. 약간의 냉소와 조롱까지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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