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글이 된 에세이

서재 이혼 시키기

by 김패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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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열의 저서 <서재 이혼시키기>는 사랑과 관계라는 명목 아래 잃어버렸던 ‘개인의 고유한 영토’를 되찾아가는, 실천이 쉽지만은 않은 아름다운 독립 선언문이다. 이 책은 단순히 서재라는 물리적 공간을 분리하는 차원을 넘어, 또 부부, 자녀와의 분리를 넘어 타인과 얽히고설켜 살아가던 한 개인이 어떻게 스스로의 삶을 복원해 나가는지를 담담하면서도 다소 시니컬한 날카로운 산문의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책의 문을 여는 1장에서 작가는 부부 관계의 본질을 '닮음과 다름'이라는 거울에 비춘다. 우리는 흔히 부부를 일심동체라 부르며 서로의 모든 것을 공유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지만, 저자는 그 밀착된 관계 속에 숨겨진 의존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사랑하기에 닮아가고 싶어 하지만, 그 닮음이 곧 나를 지우는 과정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독립과 의존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속에서 '서재 이혼'은 결코 결별의 신호가 아니다. 오히려 상대의 색깔에 물들지 않은 나만의 순수한 공간을 확보함으로써, 서로를 객관적이고 온전한 한 인간으로 존중하기 위한 성숙한 사랑의 방식이다.


이어지는 2장에서는 자녀와의 관계를 다루며 더욱 단호한 목소리를 낸다. 저자는 자녀를 독립시키는 과정을 '탯줄 자르기'라는 상징적인 행위로 정의한다. 부모에게 자녀는 자신의 생애를 연장한 존재처럼 느껴지기 마련이지만, 저자는 이를 과감히 부정한다. 자녀의 삶은 자녀의 것이며, 부모는 그들의 성취나 실패에 자신의 정체성을 투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녀로부터의 독립은 곧 부모 스스로가 자신의 삶으로 귀환하는 선언이다. 자녀라는 거울을 치우고 났을 때 마주하게 되는 허허벌판 같은 적막이야말로, 부모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된다.


마지막 3장에 이르러 논의는 비로소 '온전한 자기 자신과의 만남'이라는 종착지에 닿는다. 가족과 사회가 부여한 무수한 역할극의 무대에서 내려와, 오직 자신만이 존재하는 서재 안으로 숨어드는 일이다. 이곳에서의 고독은 외로움이 아니라 축복이다. 타인의 시선과 기대라는 소음을 차단하고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비로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게 된다. 서재는 곧 내면의 성소이며,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자기 대면은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때로 '성스러운' 의식이 된다.


<서재 이혼 시키기>는 '따로' 있을 때 비로소 '함께'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역설을 관통한다. 나를 지키는 나만의 서재를 가질 때 타인을 향한 이해도 깊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서재 이혼시키기는 부부 간 책을 따로 장서한다는 뜻을 넘어선다. 관계에 지쳐 자신의 모양을 잃어버린 모든 이들에게, 이제 그만 타인의 서재에서 걸어 나와 자신만의 문을 닫고 홀로 앉아보라고 다정하게, 그러나 권유는 단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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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이혼 시키기



이화열

2023

앤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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