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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Mar 09. 2019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은

 그림책에 물들다 | 지하철은 달려온다

지하철은 달려온다 | 신동준 글, 그림 | 초방                           



호기심과 재미로 똘똘 뭉친 존재


아이들은 어떤 그림책을 좋아할까요?  <지하철은 달려온다>를 읽으면서 아이들은 왜 이 책에 열광하는지 그 까닭이 궁금했습니다.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담긴 것도 아니며 신기한 그림이 들어 있지도 않은 책인데 말입니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상을 탄 책이라서 아이들이 좋아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표지의 지하철 노선과 역을 알리는 주황과 보라색 직선과 동그라미 그림이 추상화가 몬드리앙을 떠올리게한다고 해서 좋아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무언가 의미로운 대답을 기대하는 제게 아이들의 답은 간단합니다. 재미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특징을 설명한다면, 그들은 호기심과 재미로 똘똘 뭉친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어른들이 보기에 아무리 훌륭한 책이라 해도 재미가 없거나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는다면 읽으려 하지 않지요. 그런 점으로 아이들이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유아교육 전문가인 이상금은 “그림책 주제 선택의 2대 요소는 날개를 달아주는 상상의 요소와 달아나고 깊은 호기심을 충족하는 모험의 요소”라고 말합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경험치 만큼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지요. 경험의 두께가 얇은 아이들로서는 상상이 좁은 범위에 한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림책에는 어린이로 하여금 그 모든 경계를 지우고 한계를 훌쩍 뛰어넘게 하는 힘이 들어 있습니다. 엄마와 함께 타 본 지하철, 그 한정된 경험에 상상을 보태기에 <지하철은 달려온다>는 맞춤한 책입니다. 



지하철 타기와 아이의 상상 더하기

 

  복잡한 사람들 틈에 섞여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간 지하철역. 요새는 승차권을 따로 발급받는 사람이 적어졌습니다만 그림책에서는 승차권을 따로 끊지요. 표를 끊는 즐거움이 생략되었지만 개찰구를 통과할 때 아이들은 ‘내가 할 거야. 내가 할 거야’ 새로운 경험의 즐거움을 맛보고자 합니다. 개찰구를 통과하는 순간 요새는 새로운 음성이 들여오지요. "마스크를 쓰세요." 먼 훗날, 우리는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이 장면을 보게 될 테지요. 그것만으로도 드라마 배경을 알 수 있게 되겠지요. 


  엄마의 손을 잡고 플랫폼에 서서 지하철을 기다릴 때의 긴장된 호기심, 이윽고 지하철이 들어와 멈춰섭니다. 마법처럼 자동문이 스르륵 열리고 각양각색의 생김새와 표정으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문이 닫히기 전에 타야한다는 조바심, 엄마 손을 놓치면 안 된다는 불안감, 마침내 승차한 지하철에는 역시 제각기 다양한 표정을 한 사람들과 신기한 것들이 아이를 기다립니다.  


 도착해야 할 역은 몇 번 째 정거장인지 세어도 보고 이름도 확인하고 의자에 예의바르게 앉았습니다. 그러나 예의바른 자세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터널의 까만 어둠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신호 불빛에 다시 마음을 빼앗겨 숫제 차창 밖을 주시하면서 또 다른 흥분을 맛보기도 합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상상하기란 못다 채운 욕구 채우기이며 일상의 긴장이나 불만을 풀고 즐거움을 맛보게 하는 방편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에게 지하철 타기란 긴장, 흥분, 두려움, 그리고 놀람 등의 평범한 감정을 담은 상상을 총체적으로 맛보게 하는 즐거움입니다. 이 책에는 어린아이들의 발달에 필요한 여러 가지 요구를 채워주는 요소들이 들어 있습니다. 때문에 아이들이 환호하는 책이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주인공인 그림책


 <지하철은 달려온다>에는 주인공이 따로 없습니다. 20여 개의 문장과 그래픽 이미지로 끌어가는 스토리의 주인공은 바로 독자 자신입니다. 

 이야기는 표지를 넘기면 바로 나오는 앞면지에서 이미 시작됩니다. 사용했던 지하철 승차권을 이용해 만든 화살표를 따라 가다보면 지하철 노선도가 한 폭의 추상화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이 장면은 한 편 글의 머리말 혹은 영화의 크레디트 타이틀 같습니다. 


지하철이 어디서 출발해서 어디를 행해 가는지도 알 수 있을 만큼 그림은 사실적입니다. 마침내 지하철을 타러 갑니다. 빵빵대는 차들과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을 지나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면서 옷가게, 신발가게, 꽃가게, 가방가게가 들어선 상가를 지나며 기웃기웃 눈쇼핑도 합니다.


 승차권을 끊기 위해 동전투입구에 돈을 넣거나 교통 카드를 충전하고 타는 곳을 확인한 다음 개찰구를 통과하여 이윽고 승차대에 섰습니다. 내가 탈 지하철은 3호선 구파발행. 바람을 몰고 지하철은 내게로 달려옵니다. 전광판에 구파발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음을 알리는 사인과 음파처럼 크게 퍼져나가는 주황색 동그라미는 열차 안내방송을 듣고 있는 듯한 현장감을 줍니다.  이윽고 멈춰선 열차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리고 타고, 문이 닫히고 지하철은 떠납니다. 어두운 터널을 주황색 불빛을 길게 그리며 지하철은 달립니다.  


 <지하철은 달려온다>의 문장은 “터미널은 서 있고 버스는 달린다. 차들은 빵빵대고 사람들은 바쁘다.” 와 같이 시종일관 담담합니다. 담담한 문장은 도시의 입구라 할 수 있는 고속버스터미널의 분주하고 복잡함과 빠르고 화려한 도심을 지나는 여정을 따라 방음 커튼을 친 것 같은 효과를 줍니다. 덕분에 독자는 마치 방음이 잘 되는 맑은 유리창으로 도시의 거리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논픽션 그림책을 위하여    


 이 책은 2004 볼로냐라가찌상 / 논픽션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좋은 논픽션 그림책은 단순히 ‘사실을 모아 놓은 책’을 넘어서 독창성과 예술성을 지닙니다. 하자드(Hazard 1999)는 좋은 논픽션 그림책이란 “너무 많은 내용을 담아 어린이 마음을 압도하지 말고, 어린이 마음 속에 씨앗을 뿌려 자랄 수 있게 하는 책, 지식을 과대평가하지 말고 지식의 한계를 올바로 이해하고 있는 책”이라고 정의합니다. 책 선정의 1차적인 목적을 지나치게 교육과 연계하여 고르고 읽혀서 생길 수 있는 한계를 하자드는 지적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림책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그림책 시장이 왜곡돼 있다고 걱정합니다. 사실주의의 ‘이야기하기’가 강세이고, 논픽션의 경우도 학습물이나 교양물 위주로 학습에 도움주기가 목적인 책이 다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보니 논픽션의 그림은 내용 이해를 돕는데 필요한 삽화가 되고 아무래도 정성이 덜하지 않나 하는 일정한 편견도 있습니다. 


 이 책이 나왔던 2003년 즈음은 그런 의견이 팽배해 있던 때라 <지하철은 달려온다>는 당연이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뜻밖의 사건 때문이었어요. 세계적인 아동 도서전에서 상을 타게 된 것입니다. 이 사건은 사람들의 그림책을 보는 눈과 마음을 열게 해주었습니다. 

 논픽션 그림책은 그림이 정보를 왜곡하지 않는 한도 안에서 작가 고유의 그림체를 예술적 기법으로 그리고, 주제는 어린이 생활과 관련된 지식을 다룰 것을 권합니다. 


 어린 아이들은 책을 보다 자기가 알고 있는 사물이 나오면 ‘똑같다’는 말을 하며 좋아합니다. 가령 금붕어를 책에서 본 아이가 수족관을 갔다면 물고기를 가리키며 책속의 금붕어와 수족관의 물고기가 같다는 사실에 흥분하며 손뼉을 치고 좋아합니다.


지하철을 타본 아이들이 이 책을 보며 자신의 경험과 책을 비교하며 즐거워하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따라서 책을 고를 때는 아이들의 생활 경험과 관련된 것이 유익하고, 책 읽기가 의미 있게 하려면 언어적인 상호작용 뿐만 아니라 아이가 그것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더해져야 합니다, 


그림책 만으로도 사회사를 살펴볼 수 있어요. 이 책에는 지금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승차권, 달라진 지하철과 승차에 관한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이 그림책이 나올 때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많아진 지하철 노선 등,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기술, 기술의 발달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합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김성은 글, 한태희 그림<열두 달 지하철 여행>(책읽는 곰, 2021)

김경화 글, 김성찬 그림 <남극으로 가는 지하철>(한솔수북, 2019)

김효은 <나는 지하철입니다>(문학동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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