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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Mar 11. 2019

더 늦지 않게 아버지와 화해를 해야겠다

그림책에 물들다 | 리디아의 정원



더 늦지 않게 아버지와 화해를 해야겠다


"더 늦지 않게 아버지와 화해를 해야겠다 마음은 먹었지만 아버지에 쌓인 원망이 많아서인지 쉽지 않았다. 아버지께 편지를 써볼까 했으나 막상 쓰려고 하면 아버지와 마주 앉은 듯 어색했다. 그렇게 편지 쓰기를 그만두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때 <리디아의 정원>을 만났다. 리디아는 아버지의 실직으로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자 도시에 살고 있는 무뚝뚝한 외삼촌 집에 보내진다. 어린 나이에도 낯선 곳에서 적응을 하고 외삼촌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노력하는 리디아를 보면서 마음이 흔들렸다. 무엇보다 리디아는 나와는 달리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게 다가 아니다. 꽃을 심고 가꾸어 좀처럼 웃음이 없는 외삼촌까지 미소 짓게 만든다. 마침내 아버지가 직장을 구했다는 소식이 오고 그리운 엄마 아빠, 할머니가 계신 집으로 돌아간다. 


  지금까지 나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하면서 지난 세월을 보내왔다.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이었는지를 어린 리디아의 편지를 읽으며 깨달았다. 어린아이도 저렇듯 가족의 일원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는데 나는 도대체 지난날 무엇을 하며 살아왔던가. 그렇다고 아버지께 전화를 걸 용기는 생기지 않았다. 나는 리디아가 편지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리운 아버지께'라고 쓰기 시작했다. 그 순간 마음속 깊이 있었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솟구쳐 올랐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느낌이었다. 나는 곰살궂은 딸이 된 듯 일상을 매일매일 이야기해온 듯 써내려 갔다.


  나는 아버지의 인생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재혼을 하지 않은 아버지의 속내를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새삼 아버지가 왜 재혼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궁금해졌다. 아버지에게 자식은 나뿐이었다. 아버지의 인생에 대해 생각하지 묻고 싶고 듣고 싶은 말들이 많아졌다. 나는 아버지께 금세라도 달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독서교실에서 <리디아의 정원>을 읽고 쓴 진영 씨의 글입니다.


 
저는 작아도 힘이 세답니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고, 이제는 아무도 엄마에게 옷을 지어 달라고 하지 않는다는 걸요…. 저는 작아도 힘이 세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다 거들어 드릴게요.” 어려운 형편 때문에 가족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가서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기대를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외삼촌께 쓴 리디아의 편지입니다. 1930년대, 세계는 경제대공황이라는 엄혹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입니다. 


리디아가 엄마 아빠, 할머니와 헤어지는 장면은 서글프지만 그래도 따듯합니다. 그러나 리디아가 멀고 낯선 길을 혼자 기차를 타고 와서 도착한 곳은 삭막하고 거대하며 우중충한 회색빛 도시. 그림책에서는 말조차 없습니다. 리디아에게 도시란 이런 곳입니다. 하지만 한 줄기 노르스름하게 환한 빛이 리디아를 리디아를 격려하는 듯합니다. 


이 무채색의 도시에서 사람들은 노동만 할 뿐입니다. 그러나 리디아는 "빛이 내리비치고"있다고 합니다. 리디아만이 발견할 수 있는 화분 때문이지요. 마치 빈 화분이 어린 정원사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 리디아는 집에서 가져온 꽃씨로 화분을 가꾸기 시작합니다. 어린 리디아의 움직임을 따라 아주 천천히 그리고 아주 조금씩 꽃이 피어납니다. 


짐작건대 외삼촌도 넉넉지 않은 빵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아내도 자식도 없고 말수도 적은 사람인 것 같아요. 리디아는 외롭고 그늘진 삼촌을 위해 특별한 계획을 세웁니다. 버려진 옥상에 정원을 만드는 일이지요. 비밀리에 가꿔온 정원을 공개하는 날 "행복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아요!" 리디아는 기쁨에 넘칩니다.  리디아가 표시한 화살표를 따라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읽는 사람도 설레게 합니다. “엄마, 아빠, 할머니께서 저에게 가르쳐주신 아름다움을 다 담아내려고 노력했어요.” 옥상 정원은 꽃 천지였습니다. 


버려진 옥상, 빈 화분은 어려운 시간을 살던 당시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합니다. 그러나 리디아의 힘은 여기서 발휘됩니다. 황폐한 옥상에, 빈 화분에 꽃을 심어 희망과 아름다움을 키워낸 힘 리디아의 힘. 웃는 얼굴을 볼 수 없었던 외삼촌도 변합니다. 옥상 꽃밭에 꽃이 만개했을 때 외삼촌은 꽃으로 뒤덮인 케이크를 들고 나타나셨습니다. "저한테는 그 케이크 한 개가 외산촌이 천 번 웃으신 것만큼이나 의미 있었습니다." 리디아는 기쁨에 넘칩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꽃을 가꾸듯 희망을 가꾸는 리디아를 사람들은 꼬마 정원사라 부릅니다.    



저, 이제 집으로 돌아가요


꽃으로 장식한 커다란 케이크와 함께 외삼촌은 편지 한 통을 리디아에게 주셨지요. 아버지가 취직하셨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였습니다.  얼마나 기다리고 고대했던 소식이었을까요. 리디아는 할머니께 마지막 편지를 씁니다 "저, 이제 집으로 돌아가요." 드디어 엄마 아빠 그리고 할머니가 계신 집으로 돌아가는 날, 떠나는 리디아를 꼭 안아주는 외삼촌. 기차역은 리디아가 처음 도착했던 역이 아닙니다. 따스하고 밝은 노란색의 기차역은 리디아가 만들어낸 변화의 상징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리디아는 언제나 그래 왔던 것처럼 할머니와 함께 들판으로 나갑니다. 화면 가득한 파란 하늘과 초록 들판도 변함없습니다. 인간의 일에는 무심한 듯 자연은 자연이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이 책은 어른들의 어려움으로 함께 어려움을 겪어낸 어린아이의 이야기를 편지에 담담히 그려 담았습니다. 처한 현실은 냉혹하지만 어린아이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은 다른 데서 생겨난 게 아니란 걸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어려움이란 극복할 수 있는 것이라는 부모의 긍정적 가치관이 아이를 키워낸 것이지요. 세상이 아무리 어려워도 아이들은 자랍니다.


리디아의 편지를 읽으며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행복해지는 이야기. 따듯한 정서의 힘은 얼마나 큰가요.    

어른들은 그림책들을 보면서 어린 시절 또는 현재 자신의 심리적인 문제를 찾아 해결해 나가기도 합니다. 그림책 속의 이야기들은 어릴 적에 누구나 겪었음직한 보편적인 일들은 어른들로 하여금 과거를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가족의 일에 어린 리디아도 저렇게 노력하는데, 저는 아버지를 위해 아무것도 한 게 없었어요." 진영 씨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들을 우선 편지로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함께 읽어보세요


이시원 <숲속 사진관에 온 편지>(고래뱃속. 2020)

남궁선 <어빠 어디까지 왔어?>(느림보. 2020)

데이비드 스몰, 사람 스튜어트 <이사벨의 방>(시공주니어.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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