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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Mar 13. 2019

어린이에게 억울한 일은 무엇일까?

 그림책에 물들다 | 가출 기차

      

                 

가출 기차 |아사노 아쓰코 | 한겨레출판사

   

어린이에게 억울한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아, 싫어. 우리 엄마 정말 싫어."

사쿠라코는 억울한 마음에 길 위의 작은 돌을 발로 힘껏 찼습니다. 사쿠라코는 지금 가출중이거든요. 9살 인생에 처음있는 일입니다. 

 

사쿠라코는 억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침대에 누워 있는 동생을 돌보고 있는 중이었어요. 동생이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주며 방안 공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아주 잠깐 창문을 열었지요. 그 순간이었어요. 뭔가가 방 안으로 날아 들어와 엄마가 아끼는 꽃병을 깨뜨리고 맙니다. 꽃병이 깨지는 소리에 놀란 동생을 안아 달래고 있을 때 엄마가 들어오시더니 빼앗듯 아기를 받아 안았습니다.


 “꽃병을 깨다니, 어쩌다 그런 거니? 안리가 옆에 있을 때는 위험한 놀이는 안 했으면 좋겠구나."

 "나, 안 했어." 

 "그럼 누가 했는데? 설마, 안리는 아니겠지?"

 "내가 한 거 아냐. 창문으로 뭔가 들어와서...."

 "사쿠라코 거짓말하면 안 돼. 꽃병은 이미 깨졌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일부러 한 건 아니니까. 하지만 잘못한 것에 대해선 잘못했습니다, 하고 말해야지. 그렇지?” 


사쿠라코는 자신의 말은 들을 생각도 하지 않는 엄마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사쿠라코가 거짓말을 한다고 단정까지 하다니 어이없습니다. 게다가 동생 안리만 놀란 게 아니었어요. 사쿠라코도 놀란 가슴을 쓸며 엄마에게 안기고 싶었지요. 하지만 사쿠라코는 엄마 맘대로 확정한 '억울한 죄'에 말문이 막혀 눈물만 흘립니다. 


사쿠라코는 엄마에게 자신이 잘못한 게 아니라고 해명하려 했지만 자기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고 싶은 말을 찾지 못합니다. 억울한 마음에 무작정 집을 나와서 걸었습니다. 더 이상은 기차가 다니지 않는 낡은 기찻길까지 왔을 때였습니다. 만약 가차가 온다면 타고 어디든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엄마는 동생에게만 관심이 있을 뿐, 자신이 사라져도 모를 거라는 생각도 합니다. 잠깐 상상을 했을 뿐인데  정말 기차가 달려오더니 사쿠라코 앞에 멈추었습니다. 이 기차는 가출한 아이들만 탈 수 있습니다. 사쿠라코가 첫 손님입니다.  문이 끼익 닫힐 때 누군가 달려와서 기차를 탔으나 알 바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이 가출을 꿈꿀 때


 마른풀 역, 큰가지 역, 깊은바다 역. 가출기차는 차례로 이 역들을 지나면서 가출한 이유도 제각각인 손님을 태웁니다. 큰가지 역에서 탄  황조롱이의 가출 이유는 호버링을 못한다고 꾸짖는 부모님 때문에 가출했다고 합니다. 호버링은 움직이지 않고 헬리콥터처럼 하늘에 가만히 멈춰 있는 기술을 말합니다. 

“난 열심히 연습했으니까. 난---형이랑 누나보다 날개가 약한가 봐. 호버링이 너무 어려웠어. 하지만 형이랑 누나보다 훨씬 열심히 하고 노력하고 연습했어---. 그런데 아빤, 그런 건 당연히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형이랑 누나가 너만 했을 때는---.”

황조롱이가 말끝을 흐리면서 눈물을 훔쳤어요. 


어린이 독서교실을 운영하는 작가 김소영은 자신의 책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독서교실에 온 아이가 신발 끈을 묶는 운동화를 신고 왔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이가 신발 끈을 묶는 것을 어려워하면서 천천히 묶기에, 마침 그날 읽었던 책에 '시간이 흐르면 어려웠던 일이 쉬워져요'라는 이야기가 있어서, 저자가 그 구절로 아이를 위로하자 "그것도 맞는데, 지금도 묶을 수 있어요. 어른은 빨리 할 수 있고, 어린이는 시간이 걸리는 것만 달라요."라고 아이가 말하는 데서 저자는 다만 느릴 뿐 어린이도 할 수 있으며 어린이는 어린이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누구나 처음은 있고,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흔치 않지요. 그렇지만 어른들은 처음이었던 그 시절을 대부분 윤색된 기억으로 회상합니다. '왕년에 누나는, 형은, 아빠는 말이야' 하면서, 윤색된 기억의 잣대로 이제 막 시작하는 사람들을 평가하고는 하지요. 때문에 어른들의 눈에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못하는 것으로 보이고, 모르는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기차는 계속 달려서 깊은바다 역에 도착하고 그곳에서는 심해어인 산갈치가 탑니다. 산갈치는 '멍하니 있으면 안 된다'라고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는 엄마 때문에 가출했다고 말합니다. 

“멍하니 이 생각 저 생각하는 거 재미있지? 그런데 엄만 좀 더 조리 있고 제대로 된 생각을 하라면서 화를 내. 멍하니 있으면 안 된다는 거야. 조리 있고 제대로  된 생각이 뭐냐고 물었더니, 장래에 도움이 되는 생각이래. 바보 같지? 할 일 다 하고 모처럼  멍하니 있는데, 왜 장래 일 같은 걸 생각해야 하느냐고.” 

사쿠라코도 산갈치처럼 가끔 멍하니 공상하는 걸 좋아하지만 어른들은 그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지요. 


 엄마는 이상하게 자기 자녀가 공부는 안 하고 놀고 있는 것만 보입니다. 남의 집 아이는 뭐든 열심히 하고 잘하는 모습만 보입니다. 또 자녀에 대해서 열 가지 중 아홉 가지 잘하는 것은 못 보고, 한 가지 못하는 것만 봅니다. 엄마들의 관점이 원래 그렇습니다. 산갈치의 부모도 다르지 않았어요.


아이는 아이의 시간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어른이 되어서 어른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지만, 어른들은 자꾸 아이란 어른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 또는 어른이 되어서 더 잘 살기 위해 어린이 시절에 무언가를 해야 하는 사람으로 본다는 것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 눈으로 보면 아이들은 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지요. 



우리 엄마도 똑같아요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은 모두들 단숨에 읽었다고 해요. 책 속의 아이들이 가출한 이유를 모두 공감한다고 대답합니다. 세상의 모든 어른들은 다 같은 것 같다며 자못 흥분된 어조로 공감 백배라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어요. 그중에 아끼는 화병을 깨뜨렸다고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사쿠라코의 엄마에게서 자신의 엄마를 발견한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는데요, 그 아이는 엄마가 우아한 목소리로 '누구나 잘못할 수 있는 거지만 거짓말하는 건 더 나쁜 거'라고 말할 때 엄마에게 질렸다고도 합니다.  


"퇴근해서 돌아왔더니 집안은 어지럽고 아이들은 텔레비전 삼매경에 빠져 있더라. 엄마가 왔는데도 아이들은 텔레비전에서 눈도 안 떼며 다녀오셨어요 목소리만 들리더라. 텔레비전 앞에 넋을 맡긴 아이들이 한심했지만 나무랄 수도 없어서  '내가 안 볼 때 놀고 내가 볼 때는 공부하는 척이라도 해라'라고 했더니, 방금 숙제 끝내고 겨우 쉬는 참이라도 하면서 이번엔 아이가 억울해하더라"며 부모는 부모대로 어려운 점이 있다고 했어요. 


부모와 자식은 서로의 기대에 관해서 그렇게 어긋나기도 합니다. 부모들도 자신의 부모에게 겪었던 억울함을 그대로 대물림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고는 하지요. 동화책에는 부모가 아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들어 있고, 부모가 키우고 싶은 아이가 동화책 속에 있기도 합니다. 동화책 한 권 읽고 생각이 많아진 날이었어요.



#김소영. <<어린이의_세계>> 사계절.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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