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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Mar 13. 2019

비 좀 맞기로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아

 그림책에 물들다 | 비오는 날의 소풍

비 오는 날의 소풍 | 가브리엘 벵상 | 황금 여우


비 좀 맞는다고 어떻게 되겠나


 "에르네스트, 자네 제정신인가? 이런 날씨 아이를 데리고 나서다니." 

비 오는 날의 소풍이라니요. 비 오는 날 소풍을 가는 에르네스트와 셀레스틴느를 이웃들은 이상한 눈으로 봅니다. 그러나 에르네스트 아저씨는 걱정하는 이웃에게 큰소리로 대답합니다.

 "비 좀 맞는다고 어떻게 되겠나!"

 

비 오는 날의 소풍이라니, 인식의 전환입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인물들의 조합, 곰과 쥐의 만남, 이들은 만남에서 이미 세상의 인식에 전환이 시작되었다고 봐요. 


비오는 날의 소풍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셀레스틴느는 다음 날 소풍 계획으로 잔뜩 흥분되어 있었지요. 이것저것 음식을 장만하고 나니 더욱 신이납니다. 하지만 이 일을 어쩌지요? 비가 옵니다. 

에르네스트 아저씨는 셀레스틴느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추어 상황을 설명합니다.

"어쩌지? 셀레스틴느야, 우리 소풍 못 갈 것 같다. 밖에 비가 와!"

셀네스틴느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셀레스틴느는 비가 야속합니다.

잘 준비한 도시락을 들고 허탈하게 의자에 앉아있는 셀레스틴느를 보는 에르네스트 아저씨도 안타깝기는 매한가지 입니다.

왜 안 그렇겠어요. 속이 상해 누구라도 속상할 거예요. 이들은 하고 싶은 일을 지금 당장 꼭 하고 싶어하지요.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떼를 쓰고 심지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어버리는 아이도 있어요. 셀레스틴느도 어떤 떼를 써도 이번만은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에르네스트 아저씨가 놀라운 제안을 합니다.

“비 안 오는 셈 치고 소풍을 가면 어떨까?”

 아이가 떼를 써도 보통은 “안 돼!”라는 말을 하는 게 어른들이잖아요! 떼쓰는 아이에게 '망태할아버지가 와서 잡아 간다.' 고 말하고는 했는데!

셀레스틴느처럼 실망하는 아이에게 여러분은 어떤 제안을 하실 수 있을까요?



빗속의 소풍


빗속의 소풍이 제대로 진행되었을까요? 

"준비 됐지? 자 출발!"

"네, 아저씨. 쨍쨍 내리쬐는 저 햇빛 좀 보세요!"

비가 내리는데 햇빛이라뇨! 셀레스틴느는 밀짚모자도 썼어요. 셀레스틴느는 확실하게 '비 안오는 셈' 치고 있어요.

"셀레스틴느야, 얼른 가자. 남들이 쳐다 보잖아!"

비록 실망하는 셀레스틴느를 위한 소풍이지만 에르네스트 아저씨는 이목이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닙니다. 


숲에 천막을 치고 놀고 있을 때 숲의 주인은 이상한 눈으로 이들을 보며 하며 나이를 헛 먹은 철없는 행동으로 치부합니다. 

"선생, 그 나이에 이런 어린애 같은 장난을 하시다니...." 

에르네스트 아저씨와 셀레스틴느는 어린아이 장난이라고 치부하는 숲의 주인을 천막 안으로 불러들입니다. 

"가지 마세요. 아주 따끈한 차가 준비되어 있어요."

"그렇게 하시죠! 선생님. 자, 텐트 안으로 들어오세요!"

에르네스트 아저씨는 숲 주인에게 비오는 날 소풍을 오게 된 내력을 설명합니다.

두 어른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는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훗날 아이는 오늘을 어떻게 기억할까요?


완벽히 준비했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이 종종 일어납니다. 학업도, 일도, 여행도. 심지어는 철저하게 준비해서 완벽할 거라 믿었던 일이 어그러지기도 합니다. 바로 그 때 셀레스틴느는 에르네스트 아저씨와 갔던 비오는 날의 소풍을 기억할 거예요. 비오는 날의 소풍이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예상치 못한 일,  불합리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실망만 하거나 속상해만 하지 않고 지혜롭게 풀어나가는 힘을 셀레스틴느는 얻지 않았을까요.     


일전에 <리디아의 정원>(사라스튜어트)을 읽은 어느 독자는 말합니다. "얼굴도 모르는 외삼촌인데, 어떻게 설득해서 아이를 보낼 수 있었을까요?" 이 책은 1930년대 대 공황으로 아버지는 직장을 잃고 온 가족이 큰 어려움에 빠졌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가족들은 의논 끝에 리디아를 외삼촌 댁으로 보냅니다. 단 몇 마디의 말로 아이를 일으며 세우기는 어렵습니다. 몇 마디 말로 아이를 설득할 수는 없습니다. 몇 마디 말로 아이 마음을 단단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때



서울 근교 도서관에서 인근 지역 학교 학부모들과 어린이 독서 지도 공부를 한 날이었어요. 공부가 끝나고 사람들과 함께 그 동네에 맛있는 옹심이를 끓이는 집이 있다 해서 우르르 몰려갔습니다. 옹심이를 기다리며 엄마들은 아이들 교육에 관한 여러 가지 궁금한 것을 묻고 답하며 떠들썩한, 넓은 창 너머로 싱그럽게 푸른 나무들이 보기 좋은 집이었어요.


이윽고 주문한 옹심이가 막 식탁에 놓일 때 안개처럼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음식점으로 올 때 구름이 짙어지고는 있었지만 비 예상은 하지 못했어요. 엄마들이 아이들 귀가를 어떻게 것인가 대책을 마련하느라 잠시 어수선했습니다. 맛있는 옹심이를 앞에 두고. 나는 바쁜 사람들은 먼저 가도 좋다고 하고 소란이 정리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때 사람들의 시선을 한데 모으는 전화가 왔지요.


 "엄마, 어딨어? " 

전화 속 아이는 엄마를 사뭇 야단치는 듯했어요. 

"왜 안 오는 거야!" 

전화를 받던 엄마는 주위 여러 사람에게 민망해하며 조용히 말하라 했지만 아이는 엄마 말은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이 정도 비는 좀 맞아도 돼!" 

엄마는 단호한 말로 전화를 끊었지만 민망했지요.

    

비 오는 날 우산 들고 교문 앞으로 마중 온 엄마를 만나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이지요. 그렇지만 사정이 있어 우산을  들고 마중 올 수 없는 엄마를 둔 아이들은 그런 날 더 쓸쓸하지요. 이런저런 사정으로 비 오는 날 아무도 마중을 못 갈 수도 있지 않던가요? 그걸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다면 아이들은 제 나름대로 해법을 찾을 거예요. 친구 우산을 같이 쓰고 오든가, 처마 끝으로 처마 끝으로 이어 달려오든가, 비가 그칠 때를 기다리는 것도 해법이고. 아니면 빗속을 처연히 걷는 것도 해법일 수 있습니다. 비를 맞는 느낌도 나는 나쁘진 않지만.

 

아무튼 아이들이 비 오는 날 귀가하는 방법을 하나만 갖게 만든 것도 우리들 탓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좀 전까지 독서를 얘기하며 아이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자고 했는데요. 지혜는 스스로 터득한 것일수록 진짜 자기 것이 된다고 모두들 맞장구를 쳤는데요. 그러나 우리는 아이들이 스스로 지혜를 터득하기를 기다려주지 않아요. 그런 날들이 쌓여서 엄마를 호통치는 듯한 아이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셀레스틴느를 기르는 에르네스트의 인식의 전환처럼 육아에서 인식의 전환은 소소한 일상에서 더 절실히 필요합니다. 일상의 진부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작가 가브리엘 벵상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로 잘도 표현했어요. 이야기에 꼭 필한 것 외에는 모두 생략한 그림, 노란색과 하얀색 주조로 그린 환하고 사랑스런 이야기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이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더군요.




함께 읽으면 좋은 책


김연철<망태 할아버지가 온다>(시공주니어) 

이민희<라이카는 말했다>(느림보)

존 쇤헤르, 제인 욜런<부엉이와 보름달>(시공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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