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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Mar 17. 2019

정색하며 읽을 수 없는 이야기

그림책에 물들다 | 옛날에는 돼지들이 아주 똑똑했어요

옛날에는 돼지들이 아주 똑똑했어요 | 이민희 저   | 느림보



눈길을 끄는 제목  


이 그림책의 제목에 눈길이 가나요? 그랬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돼지’와 ‘똑똑하다’라는 말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돼지' 하면 자동 연상되는 것들은 미련하고 게으르고 지저분하다는 것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런 돼지가 똑똑했다니, 앙큼한 상상 때문 아닐까요? 


돼지들이 똑똑했던 때, 그들은 에펠탑과 같은 높은 기술도 가지고 있었죠. 그러고도 그들은 쉴 새 없이 연구하고 실험을 합니다. 물론 틈틈이 춤을 추기도 했지요. 기술이 발달 할수록 할 일이 너무 많아 쉴 수 없었던 돼지들은 허공에 걸린 외줄 철제 빔에 앉아서 식사를 합니다. 돼지들 대신 위험한 일을 할 누군가를 찾는 합리적 이유를 보여주는 그림이기도 해요.

 

그때까지만 해도 텔레비전에는 읽다만 책이 놓여 있고, 벽에는 뭉크의 '절규',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같은 그림이 걸려 있었지요. 


한편 돼지들이 데려온 사람들은 똑똑했어요. 덕분에 돼지들은 마음껏 춤을 추며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됩니다. 돼지가 했던 일을 이제 사람이 하면서 돼지들은 춤을 추고, 춤을 추고, 춤만 춥니다. 다만 다양한 무늬와 색깔의 옷을 입었던 돼지들은 점차 똑같은 꽃무늬 옷을 입고, 맨몸에 꽃무늬만 문신처럼 보이다 뭔가에 취한 것처럼 춤을 추던 그들은 마침내 벌거숭이가 되고 맙니다. 

 

사람들도 돼지가 그랬던 것처럼 점점 일이 많아지면서 대신을 일을 할 로봇을 데려옵니다. 돼지들이 춤에 빠져들었다면 사람들은 단추-리모컨이 보여주는 세상으로 빠져듭니다.  


마지막 책장을 닫고 났을 때 가장 먼저 드는 느낌은 서늘함이었어요. 이 그림책의 경우 결말을 보여주지 않고 질문으로 남겨 둔 것이 더 효과적이었지요. 답이 없어도 알 수 있어요. 돼지들의 모습이 곧 인간의 미래 모습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으니까요. 또 한 편으로는 묻고 있는 것이죠. 돼지들처럼 살 것인가, 다른 문을 열고 사람들의 시간을 계속 살 것인가 하고 말이죠. 



돼지의 시대가 지고 사람의 시대가 왔으나


말이 주요 교통수단이었던 시절, 뉴욕이나 런던 같은 대도시는 말똥 문제가 몹시 심각했었지요. 말똥 문제는 자동차 출현으로 말금하게 해소되었고, 일자리마저 늘었으니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긍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기술의 발달이 낙관적 미래를 보여주지 않아요. AI 등장은 자동차 등장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를 낳았는데, AI의 학습능력이 인간을 초월한 능력자로 만들지도 모른다는 예측 때문이에요. 실제로 우리는 벌써 여러 해 전의 일이 된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대결에서 알파고가 승리하는 걸 목격한 바 있기도 하지요. 이것은 AI의 학습능력을 증명해 보이는 기록할 만한 사건이었다고 말합니다. 


청소년들의 희망 직업 상위에 교사와 경찰, 그리고 공무원이라는 것에 걱정들 하지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이들의 희망을 말릴 수도 없습니다. '평생 일자리'라는 개념은 사라진 지 오래됐고, AI로 인한 일자리 구조적 변화도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또 변화무쌍한 경제 흐름이 불안한 부모의 경제활동도 아이들의 희망 일자리 선택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짐작해 볼 수 있지요. AI가 사람을 밀어내고 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고,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알고 있으면서도 인간은 그 길을 가고 있고, 막을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가장 난해한 것은 돼지의 옷입니다. 처음에는 다양한 디자인과 무늬, 색깔의 옷을 입던 돼지가 점차 하나의 꽃무늬가 그려진 옷을 입더니 급기야는 문신이라도 새긴 듯 맨 몸에 꽃무늬만 남았습니다. 마침내는 벌거숭이가 되었구요. 유감스러운 것은 사람들의 옷이 돼지 옷을 닮아가는 듯한 모습입니다. 돼지가 입은 옷의 변화는 무얼 말하는 걸까요? 이야기가 품고 있는 메시지를 이해하는데 큰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그냥 넘어가도 좋을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작가는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 이기심을 돼지에 빗대어 표현했다고 합니다만.    

 

결같이 똑같은 무늬의 옷이나 동작에서 어떤 답답함을 느낍니다. 춤 말고는 다른 걸 할 줄 모르는 돼지들은 상상력이 닫혀버린 것이지요. 실제로 우리의 일상은 기계에 의존하는 것들이 늘어나면서 시나브로 기계의 편리함에 익숙해지고기계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기왕에 가지고 있던 능력마저 무디어지거나 잃어버리고있음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의 문화가 지고 새로운 문화가 그 자리에 들어서듯 돼지의 시대가 지고 사람의 시대가 되는 과정이 이 책의 대부분의 내용입니다. 돼지의 시대에 비해  분량은 적지만 사람의 시간은 돼지의 시간과 똑같이 반복될 거라는 짐작을 할 수 있어요. 끝없이 되풀이될 것 같은 이야기는 로봇이 사람 대신 집을 짓는 장면에서 끝이 납니다.  


 그리고 돼지들이 넘겨준 일을 맡게 된 인간은 돼지들의 삶을 그대로 반복합니다. 돼지들이 춤을 추었다면 인간은 단추-리모컨을 들고 있는 게 다를 뿐입니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일까요? 


 이 그림책은 취학 전 아이들이 읽기에는 조금 어려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돼지와 사람, 로봇으로 이어지는 고리는 문명의 발달이 가져올 불길한 미래를 암시하고 있지요. 그 맥락이 철학적이기 때문에 단순한 재밋거리로 읽고 넘길 만한 그림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책에서 제시하는 문제들은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결과입니다. 아이들은 태어나 보니 그런 세상에 와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많은 질문을 만나게 될 거예요.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 중에는 피해 갈 수 없는 질문도 있습니다.


 이 그림책을 읽으며 숨은 그림 찾기놀이를 해보세요.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들이 숨겨 있어요. 찾기 어렵지 않지만 다 찾았나 확인해보려면 책 뒤표지에 원래 그림의 목록을 보면 됩니다.

 

책에 숨겨놓은 문화유산은 모두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입니다. 첫 장면에 등장하는 에펠탑을 볼까요. 이 에펠탑은 사람들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철제 구조물로 인정받는 것이지요. '부지발에서의 춤을', '생각하는 사람', '모나리자', '절규' 등. '마천루에서의 점심을' 은 록펠러센터를 건설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그림으로 묘사한 것이지요. 점심조차 여유롭게 먹을 시간이 없다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무한한 능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기도 하지요. 이것들은 모두 기계 문명의 상징인 단추가 없던 시절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인간은 이미 전화번호도 까먹고, 길찾는 법도 기계한테 물어보고, 점점 AI에게 의지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도대체 인간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남을까요? 그렇다고 정색하며 읽기도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던큰 웰러 <우주뱀의 습격> 마루벌

이민희 <라이카는 말했다> 느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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