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패티 Mar 17. 2019

삶이란, 타자에게 빚진 삶의 줄임말

그림책에 물들다 |  일과 도구 

   



더불어 살아가는 일


 “한 사람이 구두를 만들며 살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옷을 만들기 때문이다. 내가 그림을 그려서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누군가 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지요. 이 말은 보육이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것인데요, 아이를 키우는 데만 마을 하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로 바꾸어 말해도 틀리지 않아 보입니다.


 농장이 있고, 병원이 있으며, 구두 공장, 의상실, 중국집, 목공소, 그리고 화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림을 그려서 밥을 먹고 살고, 누군가는 농사를 지어 신발을 사며, 또 어떤 사람은 신발 만들어 옷을 사고 그림을 관람하는 등, 서로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도움을 주고 받으며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공간이 마을이지요. 그러므로 나의 밥상에 올린 생선 구이와 시금치나물에는 어부의 삶과 농부의 삶이 함께 들어 있는 것이지요.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의 삶을 가꿔가는 곳이 마을이지요.

     

 당신이 만약 시인이라면 당신은 분명 이 한 장의 종이 안에서 구름이 흐르고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구름이 없으면 비가 없고, 비가 없으면 나무가 자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무가 없으면 우리는 종이를 만들 수 없습니다. 종이가 존재하려면 이 종이도 여기에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름과 종이가 서로 공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종이 안을 더욱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햇빛을 보게 됩니다. 햇빛이 그 안에 없다면 숲은 성장할 수 없습니다. 사실은 아무것도 자랄 수가 없습니다.

-종이 안의 나무, 나무꾼과 제재소, 나무꾼이 먹는 빵과 종이-                         (틱낫한, ‘공존’ 중에서)

     


 내가 쓰는 이 종이 한 장에 나무꾼의 삶이 들어 있음을, 얼굴을 본 적도 음성을 들어 본 적도 없는 나무꾼의 삶이 내 삶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음을 알려주는 시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효율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소비자는 생산하는 과정을 본 적이 없어 밥상에 김치가 오르기까지 햇빛과 바람과 구름과 그 아래서 허리 구부려 일하는 농부의 땀이 실감 나게 와 닿지는 않습니다.


 이 책은 과정이 보이지 않아 고마움을 모르는 채 살기 쉬운 현대인에게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삶이 내 삶에 미치는 영향을 깨닫게 해 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고맙고 의미 있는 존재라는 것을요.


     


숨은 그림 찾기 

     

 <일과 도구>는  한 여자 아이가 고양이와 함께 이웃에 마실 가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마실 가는 길에 여자 아이와 고양이가 들릴 곳이 지도에 그려져 있습니다. 이 지도가 글의 목차이기도 합니다. 출발을 표시하는 화살표를 따라 본문에서 펼쳐지는 이야기 순서대로 이들은 이동을 합니다. 먼저 농장에 들립니다. 다음은 병원, 구두공장, 의상실, 그리고 중국집과 목공소를 들린 다음 화실에 들리는 것으로 이야기도 끝이 납니다.


 그런데 이 많은 도구들은 다 어디에 쓰이는 걸까요?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도구들은 일터 주인의 필요와 성격에 따라 배열이 다릅니다. 자주 사용하는 도구를 앞에 큰 그림으로 배치하고 가끔 사용하는 도구들은 뒤쪽에 작은 그림으로 그려놓았습니다. 이 도구들을 사용하여 일을 하는 모습과 함께 생산의 과정까지 보여줍니다. 가만히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각각의 도구가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도 알 수 있어요.


각각 일터의 도구 배치와 일하는 장면은 이와 같은 방식의 구성이 일곱 번 반복됩니다. 일을 하는 장면에서는 여자 아이와 고양이도 각각 도구를 들고 그 일터에 맞는 복장으로 일을 합니다. 동네 한 바퀴를 다 돌고 그림책의 이야기가 끝나가는 부분에서는 각 일터에서 만난 사람들이 여자 아이와 고양이에게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손을 흔들며 따뜻하게 인사하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아이와 고양이가 각각의 일터를 체험하면서 만든 것들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그림책은 끝납니다.


 이 그림책은 숨은 그림 찾기 놀이를 하듯 읽어도 재미있습니다. 우선 여자 아이와 고양이가 동네 한 바퀴를 도는 동안 시간이 흘렀음 알 수 있는 작은 장치는 작업장 곳곳에 그려 넣은 시계입니다. 시계를 찾으려면 숨은 그림 찾기를 해야 합니다. 오전 11시를 알리는 농장의 벽시계, 12시를 알리는 병원 의사 선생님 책 상위의 연필꽂이용 시계, 구두공장 작업대 위의 탁상시계는 오후 1시, 양장점 작업대 위의 앙증맞은 탁상시계는 오후 2시, 중국집 벽걸이용 전화기의 시계는 어느덧 오후 3시를, 목공소의 괘종시계는 오후 4시, 화실의 책장 위 손목시계는 오후 5시를 가리키며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숨은 그림 찾기 놀이는 사람을 찾는 데도 할 수 있습니다. 우선 마을지도에서 여자 아이와 고양이 찾기를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에 나오는 일터를 찾는 이들의 모습이 아주 작은 그림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각 일터마다 일하는 사람과 고양이, 그리고 여자 아이 찾기도 할 수 있어요. 일하는 사람들은 제각기 일에 몰두하고 있어 누가 왔는지도 모르고 있는 듯한 모습들입니다. 이밖에 아이들에게 친숙한 도구 찾기를 해도 좋을 것입니다. 작가의 섬세함이 독자에게 즐거운 놀이를 선사한 셈입니다. 아이들이 놀이를 하듯 그림 속 비밀을 찾아가면서 장난스럽게 책과 친해질 수 있습니다.


 이 책의 길 안내 잡이를 하는 여자 아이와 고양이는 작가 권윤덕의 대표작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에서 일찍이 만난 등장인물이어서 더욱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작가는 '진주'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기르는데, 책 속의 고양이가 진주를 닮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이란, 타자에게 빚진 삶의 줄임말

     

 작가는 말합니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여러 작업장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발견한 도구들의 신기함을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하고 싶었다고. 그래서 화면 가득 도구들을 그려 넣었다고 합니다.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이라는 특성 때문에라도 도구들의 쓰임새를 독자들에게 하나하나 설명할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또 그 많은 도구를 다 그려 넣지 않더라도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알기에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각각의 일터의 수많은 도구들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필요한지까지 생각을 넓혀줍니다.


 이 책의 그림은 비단에 그렸습니다. ‘물감이 곱게 스며들고, 뒷면에서 칠할 수 있어 은은한 색과 선명한 색을 모두 얻을 수 있’는 특성을 잘 살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말합니다.  무엇보다 비단을 선택한 것은 일터와 그곳에서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싶은 작가의 의도를 담기에 가장 적합한 재료였기 때문이라고 부연합니다. 저는 그림에서 일하는 사람의 수고와 가치를 대하는 작가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일하는 사람을 대하는 작가의 마음이 전해지길 바랐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보여준 마을은 세상에 없습니다. 작가가 그려낸 마을이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각각의 일터를 고를 때 지금도 필요하고 앞으로도 꼭 필요해서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에 염두를 두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꼭 필요한 것들을 생산하는 일터만으로 마을을 그렸습니다.  농부와 농장, 의사와 병원, 제화와 구두장이, 목수와 목공소, 재단사와 의상실, 그리고 화가와 화실은 그렇게 선택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특히 눈에 띄는 점은 각각의 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한결 같이 젊은이들이라는 점입니다. 실제로는 한두 가지 직업을 제외하면 젊은이들이 꺼려하는 일터인데 말이지요.


  “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자기의 일터가 소중하고, 그런 만큼 모두 가치 있게 여겨져야 한다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작업장을 꿈의 공간처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었어요. 일하는 분들이 자기 일에 몰두할 때 모습을 보면 그 공간이 실제로 꿈의 공간이기도 했고요.”


 책 속의 현장은 현실과 많이 다르지만, 작가는 작업장은 누구에게나 꿈의 공간이어야 한다고 믿어 일하는 사람을 젊은이로, 기타를 치는 구두장이로 표현했습니다. 모두가 버리고 떠나는 일터가 아니라 거기서 젊은이들이 꿈과 희망을 찾았으면 바람을 그려 담았습니다.    


 글쓴이가 누군가 농사를 짓기 때문에 그림 그리는 일로 밥을 먹을 수 있다고 말한 것처럼, 구두를 만드는 일만으로, 옷을 짓는 일만으로도, 가구를 만들고 집을 짓는 일만 열심히 해도, 그 일로 밥을 먹고살 수 있고 보람을 느끼며 살 수 있게 되었으면 하고 소망해 봅니다.


 오늘날 우리는 상점에 진열된 상품을 보면서 상품의 생산과정을 생각하지는 못할 겁니다. 생활이 생산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지요. 그 결과 향유하는 사람 다르고 노동하는 사람이 다른, 그 사이에서 땀 흘려 일하는 가치가 왜곡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일하는 사람이 수십 년 일하며 살아온 자기의 삶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세상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그림을 그렸다”는 작가의 말이 마음에 남습니다. 자신의 몸의 일부인양 능숙하게 도구를 다루는 모습은 보는 이에게 무척이나 아름다웠으나, 더 이상 그 일을 배우려 하는 이도 없고, 자식들마저 부끄러워하는 일이라며 사진 찍기를 불편해했다는 작가의 인터뷰도 마음에 남습니다.      


작가가 그림책 한 권을 집필하는데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요? 하루 만에도 뚝딱 완성되는 그림책도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 책 <일과 도구>는 취재와 집필까지 2년 이상 걸렸다고 합니다. 그가 쓰고 그린 덕분에 나는 다른 일을 하면서 이 책을 볼 수 있어요.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아드리앵 파를랑주<여기 내가 있어>(웅진주니어)

페터 엘리오트 글, 키티 크라우더 그림<서부시대>(논장)

하세가와 요시후미<내가 라면을 먹을 때>(고래이야기)

이명애<내일을 맑겠습니다> (문학동네)



매거진의 이전글 정색하며 읽을 수 없는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