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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Mar 25. 2019

죽음은 어른도 어려워요

그림책에 물들다 | 오소리의 이별 선물

오소리의 이별 선물|수잔 발리 그림, 글|보물창고


죽음은 불편한 몸을 내려놓고 떠나는 거란다 

        

   

  몇 해 전 4월에는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수많은 생명을 바다에 잃은 사건으로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겼었습니다. 죽음을 맞은 사람들 수만큼이나 그들에 대해서 주위 사람들이 전해주는 사연도 다양해 보고 듣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습니다. 이 중에는 부모와 형을 잃은 일곱 살 어린이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외삼촌은 어린 조카에게 부모와 형의 죽음을 어떻게 말해야 하나 고민이 크다 했습니다. 아직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에게 죽음을 설명한다는 일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죽음에 대해 말하기를 꺼리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어느 날, 사랑하고 의지하던 가까운 사람을 별안간 잃는다면, 사람을 영원히 잃는다는 것은 어른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어린이라 해서 가족 등 소중한 것을 잃은 고통이나 슬픔이 어른보다 적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니 사실을 감추거나 왜곡하지 말고 전달해 주어 아이로 하여금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기회를 주는 것이 낫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또한 죽음을 대하는 아이가 힘들어할 때도 이해시키려 하기보다 아이의 슬픈 감정, 상실의 감정을 솔직하게 받아주어 어린이로 하여금 여러 가지 슬픔의 감정을 드러내도록 도울 필요가 있습니다. 슬퍼한다는 것은 소중한 이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아이에게 반드시 필요한 치유의 과정이기 때문이지요. 


『오소리의 이별 선물』은 지혜와 연륜을 갖추어 다른 동물들에게 큰 의지가 되었던 오소리가 죽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동물들은 큰 슬픔에 휩싸여 무엇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의지할 어른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가고 봄이 오자 동물들은 때때로 모여서 오소리가 살았던 때를 이야기하며 오소리가 이별의 소중한 선물을 남기고 떠난 것임을 알게 됩니다. 동물들은 오소리가 남긴 선물은‘다른 이에게 전해질 때마다 더 빛이 나고 더 특별해진다는 것도 느끼지요. 


『오소리의 이별 선물』은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룬 이야기입니다. 이 무거운 주제를 무겁지만 않게 할 수 있는 것이 그림책의 힘입니다. 특히 죽음과 같이 설명하기 어려운 한계상황에서 그림보다 훌륭한 의사소통에 그림책은 그 힘을 발휘하지요.   

 


고요하고 따뜻한 죽음     


『오소리의 이별 선물』은 지팡이 없이는 걷기도 힘들 만큼 나이가 든 오소리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차분히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 꿈의 연장처럼 그려진 죽음의 과정, 남아 있는 동물들의 슬픔, 계절이 바뀌고 오소리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슬픔을 극복하는 동물들의 이야기입니다. 


 오소리를 중심으로 뭔가를 하기 위해 기다리는 동물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고 인자한 표정으로 두더지에게 종이 오리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앞표지 그림은 크기나 모습에서 동물들 사이에서 오소리의 위치와 존재를 짐작하게 합니다. 


 속표지에서는 황혼 녘에 지팡이를 짚은 오소리가 홀로 어디론가 가고 있습니다. 배경의 황혼은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오소리의 일생이 황혼 녘에 다다르고 있음을 암시하지요.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기까지 글도 그림도 없는 백지가 나옵니다. 백지 앞에서 독자도 잠시 침묵하게 되지요. 


 다시 한 장을 넘기면 왼쪽 페이지에는 둥근 틀 안에 작은 그림을 오른쪽 페이지에는 화면 가득 큰 그림이 있있습니다. 돋보기를 코에 걸쳐 쓰고 지팡이에 기댄 채 먼 곳을 응시하며 커다란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있는 오소리, 그는 자신이 죽을 때가 가까워졌다는 것을 압니다. 배경은 온통 황금빛으로 물든 가을입니다. 가을이라는 시간적 배경은 글과 조응하여 조락의 분위기를 도와줍니다. 


 집으로 돌아온 오소리는 달님에게 잘 자라는 마지막 인사를 하고 커튼을 내립니다. 커튼을 내리면 바깥 풍경이 가려지지만 세상을 차단한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하루 일과를 마무리 하듯 생을 마무리를 하며 오소리는 친구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따뜻하게 타오르는 벽난로, 찻주전자, 촛불, 책이 가지런한 책장, 쉬지 않고 가는 벽난로 위의 시계, 그리고 홀로 흔들의자에 고요히 앉아 있는 오소리의 모습 때문일까요? 오소리의 죽음이 유별나지 않고 일상처럼 느껴지는 것은요. 평화롭기까지 합니다.


 오소리는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습니다. 죽는다는 것은 잘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남겨두고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다만 자신이 죽고 남은 친구들의 마음이 걱정될 뿐이었습니다. 친구들이 마음의 준비를 하기를 바랐고 너무 슬퍼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뿐이었습니다. 


  오소리는 상냥하고 현명해서 다른 동물들한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지요. 아는 게 많고 현명한 오소리는 다른 동물들에게 의지가 되었을 게 틀림없습니다. 동물들은 그를 존경했지요. 


 오소리의 죽음 과정을 작가가 어떻게 보여줄까 궁금했습니다. 흔들의자에 앉았던 오소리가 깊고 어두운 긴 터널을 통과합니다. 지팡이 없이는 걷기도 힘들었던 오소리가 몸이 가벼워지는 듯 터널을 날듯이 달려갑니다. 아프고 불편했던 몸을 내려놓고 터널 저편에 있는 다른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그렇게 오소리의 죽음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진행됩니다.  


 이튿날, 아침인사를 하러 나오지 않는 오소리가 걱정되어 집으로 찾아온 동물들은 오소리의 편지를 발견합니다. “긴 터널을 달려가고 있어. 모두들 안녕. 오소리가.” 오소리를 사랑했기에 모두들 깊은 슬픔에 빠지지요. 겨울이 오고, 하얀 눈이 온 세상을 덮지만 동물들의 슬픔은 덮어주지 못합니다. 필요할 때마다 자신들의 곁에서 의지가 되어주었던 오소리의 부재를 인정할 수 없었던 겁니다. 


 무겁고 긴 겨울이 가고 봄이 왔습니다. 동물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오소리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슬픈 이야기가 아니었어요. 동네에서 가위질을 제일 잘하는 두더지는 오소리한테 가위질을 배워 종이인형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개구리는 스케이트 타는 법을 배웠으며, 여우는 넥타이 매는 법을, 토끼 부인은 생강빵 만드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들은 이제 오소리가 가르쳐준 일들을 매우 잘하게 되었습니다. 오소리가 모두에게 특별한 추억을 나누어 주었던 거예요. 그들은 그것이 오소리의 이별 선물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남은 사람들의 몫  


 오소리의 작별인사는 짧았습니다. 오소리는 자신이 죽는 것은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동물들이 오소리의 죽음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을지를 걱정하여 너무 슬퍼하지 말기를 당부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은 그리 쉽게 잊히지 않지요. 동물들은 처음 겪는 오소리의 부재가 무척 낯설고 힘이 듭니다. 일이 생기면 언제든 도움을 청할 수 있었고 의논할 수 있었는데, 어찌해야 할지 모를 때 동물들은 혼란스럽습니다. 오소리가 죽던 그날 밤, 슬픔에 겨운 두더지는 침대에 누워 오로지 오소리만 생각합니다. 눈물은 끝없이 흘러서 덮고 있던 담요를 흠뻑 적십니다. 누구도 오소리의 빈 자리를 채워주거나 위로해줄 만한 힘이 없습니다. 제각기 저의 슬픔만으로도 견디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봄이 오면서 동물들은 때때로 모여 오소리가 살았던 때를 이야기합니다. 깊은 슬픔에서 조금씩 벗어나 이만큼이라도 이야기할 수 있게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이별의 슬픔을 극복하는 데 드는 비용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소리가 없는 지금, 동물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오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러나 앞표지에서 보았던 활기차고 떠들썩한 모습은 아니지만 동물들은 오소리가 자신의 삶에서 어떤 존재였는지 담담히 이야기 나누며 조금씩 힘을 찾아갑니다. 각자 지니고 있던 오소리에 대한 특별한 추억을 이야기하자 슬픔도 눈이 녹듯 사라지고 오소리는 그들 마음속에 소중한 존재로 남아 있음을 알게 됩니다. 


 동물들의 추억 속에 좋은 모습으로 남아 있는 오소리의 삶의 태도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답안 같습니다. 오랫동안 동물들 중심에 서서 경험을 나누고 지혜를 베풀었던 오소리의 생전의 흔적은 동물들의 마음속에 남아 다음 세대로 전해지겠지요. “생강빵은 오소리 아저씨가 만든 것이 최고였지.” “무슨 일이 생기면 오소리 아저씨한테 달려가면 뭐든 해결되었단다.” 이렇게 말입니다.


 좋은 추억은 힘이 셉니다. 추억을 정리하는 좋은 방법으로 앨범을 정리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사진 찍기가 쉬워져서일까요? 필름값을 아끼느라 꼭 필요한 때가 아니면 마음대로 사진을 찍기 어렵던 시절보다 앨범을 정리한다는 사람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한해를 마감하면서 혹은 어느 특정한 날에 그동안 찍었던 사진들을 내려받아하는 앨범 정리를 연례행사처럼 한다면 그 일 자체로도 추억이지요. 가족이 각자 고른 올해의 베스트 장면, 주고 싶은 마음이 담긴 사진, 등등 다양한 주제로 사진을 고르고 정리하고 메모까지 해두는 일, 생각만으로도 따스해집니다. 


  이 책에 나오는 오소리는 케네스 그레이엄의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에 나오는 바로 그 오소리입니다. 동물들의 중심에 서서 감동적이고 설득력 있는 말로 동물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인물이지요. 그래서인지 마치 우리 곁에서 살았던 어떤 인후한 인물의 이야기처럼 더욱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볼프 에를 브르흐<내가 함께 있을께>(웅진주니어)

마거릿 와일드 <할머니가 남긴 선물>(시공주니어)

브라이언 멜로니 <살아있는 모든 것은>(마루벌)

사노 요코 <백만 번 산 고양이>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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