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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Jun 07. 2019

겁내지 말고 말을 하렴

그림책에 물들다 | 안녕, 친구야

안녕, 친구야 | 강풀 |웅진주니어


어린이에게 상상력이 없다면, 그 긴 시간 무엇으로 채울까    


한밤중, 잠을 이루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있습니다. 오늘 처음 엄마 아빠와 떨어져 혼자 자는 날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엄마 없이 혼자 잠드는 게 쉽지 않습니다. 살그머니 일어나 엄마 아빠에게 갑니다. 그러다 문지방에 발가락을 찧는 바람에 주저앉아 큰 소리로 웁니다. 엄마 아빠가 달려올 줄 알았는데 아무도 오지 않습니다. 혼자 잠을 자도록 한 엄마 아빠가 야속하기도 하여 약이 올라 더 큰소리로 울었습니다. 그때 창문 너머에서 아이에게 그만 울라고 하는 누군가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담장 위에 아기 고양이입니다. 엄마 아빠에게 가려던 것을 포기하고 아이는 고양이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어린이가 고양이의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자기 안 깊은 곳에서 나누고 싶은 말을 자신에게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까만 밤 자기처럼 잠 못 자고 혼자 울고 있는 고양이에게서 아이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는지도 모릅니다.     


 아이는 아기 고양이의 문제 해결을 돕기 위해 동행을 하다 문득 자신의 문제를 돌아봅니다. 아기 고양이 또한 혼자 잠을 자지 못해 엄마 아빠에게 가려다 자신을 돕기 위해 따라나섰다는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볼 용기를 발견합니다.     


 아이들은 혼자 있는 시간, 상상 놀이를 합니다. 아이들은 왜 굳이 그토록 위험하고 무서운 장면을 담은 상상놀이를 할까요? 상상 놀이 속에서 아이들은 왜 위엄 있게 명령하는 것을 좋아할까요? 전문가의 말을 빌자면 일상에서 아이들은 약자이거나 명령을 받는 자이면서 스스로 강하게 살아가야겠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때문에 생존을 건 게임을 상상 속에서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상상놀이는 장소에 구애 없이 일어납니다. 자신의 방, 숲 속, 바닷가, 목욕탕 등 어디든 자신의 경험치만큼 상상의 나래를 펼칩니다. 자유로운 상상놀이는 하는 동안에도 아이들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상상놀이는 어린이를 살게 하는 힘입니다. 어린이 그림책 비평가 김상욱은 어린이의 상상놀이에 대해 “현실적인 대응책을 마련할 수 없는 어린이들이 스스로의 생존 방식이기도 하며, 어린이 문학의 역사에서 빼어난 작품들 대부분이 판타지 작품인 까닭도 여기에 있다.”라고 말합니다.     



만화풍으로 그린 그림책         


 이 책은 장면을 나누어 구성하는 만화적 기법을 사용한 그림책입니다. 작가 강풀은 웹툰으로 잘 알려진 사람입니다. 따스한 감성을 담은 만화로 웹툰에서 큰 관심을 받기도 하지요. 유명한 그림책 작가들 중에는 만화로 시작한 예가 적지 않습니다. <슈렉>, <치과의사 드소토 선생님>, <당나귀 실베스터와 요술 조약돌>의 작가 윌리엄 스타이그, <우리 할아버지>,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의 존 버닝햄도 만화가 출신의 그림책 작가입니다. <비 오는 날>, <새벽>의 작가 유리 슐레비츠도 만화를 좋아하여 한동안 많은 만화책을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만화풍으로 그린 그림책 <아기돼지 세 마리><구름 공항>의 작가 데이비드 위스너는 고등학교 때부터 만화책을 만들었지요.     


 아이들은 만화를 좋아합니다. 재미있어합니다. 만화 주인공의 생각이 깊지 않고 조심성이 없는 말과 행동 그런 것들이 아이들의 구미에 맞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점과 연관해서 시사 만화가 박재동이 ‘창비 어린이’ 창간호에서 한 말을 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화나 영화 등을 바라볼 때 지나치게 건전한 작품, 바람직한 작품만 보지 말고 어린이의 입장이 되어 재미있는 것은 재미있는 것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시각을 기본으로 깔고 시작하기”를 제작자에게 권하는 말입니다.    

 

박재동은 같은 책에서 “내용이 유익한 작품을 바라지만, 만약 재미있고 천박한 내용의 작품과 재미없고 유익한 내용의 작품을 비판해야 한다면, 내 생각이 꼭 옳다고 믿진 않지만, 난 재미없고 유익한 작품을 먼저 비판하고 싶다. 재미없는 잔소리는 아이들에게 고문과 같은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를 말을 덧붙였습니다.     


 어린이의 특성을 규정하라면 ‘호기심’과 ‘재미’를 들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재미없으면 읽으려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염치없을 정도로 재미를 추구하지요. 만화는 그런 아이들 특성에 잘 맞습니다.        

    

 예술 작품에서 일반적인 규정이란, 울타리 안에 가두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지요. 따라서 좋은 그림책은 만화풍의 그림책이라 해서 그림책 본래의 미덕을 잃어버린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만화에 대한 편견이 있어 왔던 것은 사실입니다. 실제 비난받을 만한 작품도 적지 않기는 하지만요. 때문에 어린이 책을 이야기할 때 만화에 인심이 박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면 만화와 그림책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말과 그림이 있다는 점에서 둘 다 같은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의 저명한 만화가 테즈카 오사무는 만화의 경우 ‘생략’, ‘과장’, ‘변형’이 기본 요소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아동화 특히 유아화의 특징과 비슷한데, 그런 이유로 만화의 그림이 예술성을 띠게 되면 독자들이 외면한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그림책은 문학과 예술에 뿌리를 두고 있고, 만화는 낙서와 아동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림책은 그림으로 말을 한다는 점에서는 아직 말이 서툴고 문자에 낯선 어린이가 주요 독자이지요. 그런 점에서 그림책이 가진 본질 중에 하나는 어린이를 위한 책이라는 것입니다.        


 

모 윌렘스를 꿈꾸며


 다만 이 책은 한두 가지 불편하게 읽히는 점이 있습니다. 의미 없는 대사로 몰입을 방해하는 어린이의 얼굴 모습입니다.    

 

 그림책은 몇 페이지 동안 글자 없이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있고, 이야기 전체를 그림만으로 진행시킬 수도 있습니다. 좋은 그림책 속의 언어는 따로 뽑아내어 모으면 한 편의 시와도 같은 문학성이 녹아 있습니다. 어린 시절은 말의 집을 짓는 때입니다. 그런데 만화적 일상어를 아이들이 즐긴다 해서 그림책에서 그대로 사용한다면 그림책 지닌 본래의 가치를 놓칠 수 있다고 봅니다.     


연속된 그림으로 이야기를 연결하면서 동적, 시간적, 제3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만화적 기법을 사용하여 글이 없어도 이야기를 상상하는 데 지장 없어요. 그림으로 더 많은 상상을 하는 어린이에게 또 말을 하는 것은 어린이의 몫인 상상을 방해할 뿐입니다. “‘어디가?’ 아이가 물었습니다. ‘집 찾으러.’ 고양이가 대답했습니다.”는 군말입니다.

       

 그림책은 글은 물론이거니와 그림으로 어린이의 표정, 몸짓 등을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써 독자의 몰입을 돕습니다. 그러나 만화는 반대입니다. 만화는 배경이나 사물을 대체로 사실적으로 그리고, 주인공을 보편적이고 단순하게 그린다고 합니다. 인물을 너무 세밀하게 묘사할 경우 오히려 독자의 몰입을 방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만화풍으로 그렸으되 어린 독자의 몫이 많은 그림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남습니다.        


 책을 읽으며 모 윌렘스와 윌리엄 스타이그를 생각했어요. 만화적 기법과 상상을 마음껏 사용하여 아이들이 흥미로워하고 좋아하는 걸 콕 짚어 그려낸 이들이지요. 우리에게도 너무 진지하지도 말고, 너무 가볍지도 않은 그림책 작가의 출현을 기대해 봅니다.



겁내지 말고 말을 하렴     


 <안녕, 친구야>는 어려움에 빠졌을 때 겁내지 말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어린아이들에게 부모로서 들려주고 싶은 작지 않은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용감한 아이, 겁 많은 아이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는 어떤 사람도 될 수 있지요.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결과가 올지 몰라 두려움에 갇혀 있는 동안 나는 없어지고 오직 더 큰 두려움만 자리하지요.     


 고양이를 따라나설 것인가 말 것인가는 아이의 선택입니다. 고양이를 따라나설 경우 예상할 수 없는 어려움을 미리 겁내서 포기하고 말았다면 아이는 낯선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도움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모험을 할 기회를 잡지 못했겠지요.     


경험은 힘입니다. 경험만큼은 잃어버리거나 빼앗길 염려 없는 단단한 자신만의 힘이지요. 이 아이의 성공 경험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힘이 되는 자산이 되었을 거예요. 세상은 위험도 있고, 두려운 것도 있지만 손을 내밀면 잡아주는 따스한 사람도 있다는 신뢰라는 자산 말입니다. 도움을 받아서 이룩한 성공 경험은 이후 도움을 요청하는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는 아량으로 이어질 테지요. 세상에 대한 믿음을 얻고 나면 아이들은 뭐든 제 힘으로 배우고 저절로 자랍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만화풍 그림책)


레이먼드 브릭스 <눈사람 아저씨>(마루벌, 1997)

레이먼드 브릭스 <바람이 불 때에>(시공주니어, 1999)

모 윌렘스 <내 토끼 어딨어?>(살림어린이, 2008)

데이비드 위스너 <아기 돼지 세 마리>(마루벌,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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