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는 비단길이 아니다

성장소설 읽기 : 하이킹 걸즈

by 김패티

비단 같지 않은 길, 실크로드


“비단으로 만든 길은 아니어도 비단같이 고운 길을 말하는 거야.”

라고 생각했던 은성이가 얼마나 죽을 고생을 할까요. 은성이가 불만스럽게 꼬집은 것처럼 이 험한 길을 어찌 실크로드라고 이름 붙였는지 고약한 일입니다. 실크로드는 역설의 공간입니다.


여행은 돌아올 곳이 있기에 떠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이킹 걸즈>는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두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은성이의 하이톤과 보라의 들릴 듯 말 듯한 소리가 빚어내는 이중주에 미주 언니의 중성적 음색이 덧대어진 불안한 화음이 빚어내는 여행기. 두 소녀가 떠나야 했던 이유, 여정, 그리고 돌아오기까지의 이야기가 1200km, 70일 동안 길 위에서 펼쳐집니다. 여정은 우루무치 공항에서 시작하여 투루판, 고창고성, 하미, 명사산, 둔황까지 이어지고, 하루 여덟 시간씩 오직 걸어서 이동합니다.


선택할 수 없는 선택


은성은 떠나긴 했지만 “왜 이 거지 같은 길을 걸어야만 하는지 억울할 뿐”입니다. 주먹을 쓰게 만든 사람이 있고, 어려운 환경도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개은성” “미친 주먹”이라는 별명처럼 은성은 한 주먹, 한 성깔합니다. 주먹을 쓴 대가로 한 학년 유급을 하고, 실크로드를 걷게 됩니다.


은성이 엄마는 은성이 나이 때 은성이를 낳았습니다. 스스로 파멸해버린 인생을 사는 것 같은 엄마도 할 말은 있습니다. 딸이 제 인생의 발목을 잡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엄마와 갈등을 못 견뎌 뛰쳐나온 은성이를 쫓아오던 할머니가 트럭에 치여 돌아가시는 일이 생기면서 은성도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아이가 됩니다.


실크로드 여행은 소년원에 가야 하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기획된 재활프로그램입니다. 은성은 ‘까짓 거’하는 심정으로 선택한 실크로드 걷기가 이렇게 힘들 줄 몰랐겠지요.


보라는 시끌벅적한 은성이 하고는 많이 다른 동생입니다. ‘범생이’로 보이는 보라가 소년원에 가야 한다는 게 은성은 이해가 안 됩니다.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없어 보이는 보라가 대체 무슨 일로 실크로드 도보 여행을 떠나야 했을까요.


“훔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어. 엄만 내가 좋아하는 만화 따윈 다 소용없는 거라고 그리지 못하게 했고, 내 만화책을 모두 찢어 버렸어. 학교 애들은 툭하면 날 괴롭히고 때렸어. (...) 걔네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내가 자기들을 무시한다고 생각할까 봐 시키는 대로 다했어.(...) 미칠 것 같을 때마다 물건을 하나씩 훔쳤어. 그래서 성공하면 긴장감이 사라지면서 마음이 안정돼(189쪽)”


은성이가 주먹으로 친구들을 괴롭혔다면 보라는 폭력을 당한 경우입니다. 폭력으로 미칠 것 같을 때마다 보라는 남의 물건을 훔칩니다. 보라가 실크로드를 걷게 된 이유입니다. 두 사람이 폭력의 직접적인 관계는 아니지만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어 실크로드에서 만났습니다.



함께 걷는 길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사람들은 실크로드 도보 여행을 통해 아이들이 무엇을 얻게 하고 싶었을까요?


70일 동안, 오로지 걸어서 1200km를 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걷는다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의지로 행하는 행위입니다. 아이들은 발톱이 빠지고 갈증에 시달리며 70일 동안 걷는 일은 혹독한 체험을 합니다.


고통스러운 여정이 힘들기도 하지만 마치고 돌아가도 두 아이는 힘들 때 기댈 사람이 없습니다. 은성은 의지했던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보라는 아이들의 폭력도 괴로운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가 있을 뿐입니다. 돌아갈 곳에 대한 희망이 없는 아이들은 잠시 미주 언니가 아파서 감독이 소홀한 틈을 타 도망치기로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곧 몽골 벌판에서 길을 잃고 맙니다. 그때 아무런 연고가 없는 몽골사람에게 따뜻한 도움을 받지요. ‘소년원에나 가야 할’ 만큼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던 두 소녀가 낯선 사람들에게 위로받고 환대받은 사건은 두 소녀가 그동안 가졌던 세상에 대한 완고한 생각에 작은 균열을 만듭니다.


여행을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하지 않나요? 은성과 보라는 자신들의 한계를 극복해가면서 마음 풍경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그것이 바로 이 여행을 기획한 사람들의 의도가 아닐까요?


두 아이는 기한 내에 여정을 마치지 못해 프로그램은 실패로 끝납니다. 하지만 세 사람은 성공과 실패 여부를 떠나 명사산에 오르기로 합니다. 이제 아이들에게 소년원에 가느냐 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실크로드의 체험은 은성과 보라는 하고 싶은 일이 생기게 했고, 그 일을 해 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이번 도보 여행에서 얻은 최고의 선물입니다.



새로운 하이킹 시작

실크로드 전체 길을 걸어서 통과하는 데 13년이 걸린다고 해요. 그래도 여행을 마친 상인들은 낙타 방울 소리를 듣고 또다시 길을 나섭니다. 그 옛날 살기 위해 오갔지만 이 길은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길이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힘든 길을 두 소녀가 걸었다는 뜻입니다.


“한국에 돌아가면 어떨까? 내가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까? 전처럼 우왕좌왕하면 어쩌지? 오아시스인 줄 알고 열심히 갔는데 신기루이면 어떻게 하지? 1200킬로미터를 걸었지만 여전히 내 삶은 물음표 투성이다.(280쪽)”


‘1200킬로미터를 걸었는데, 못할 게 뭐가 있겠느냐’는 미주 언니 말은 믿어도 되리라 생각합니다.

도망쳐 길을 잃고 헤맬 때 들려왔던 낙타 방울소리, 그 소리를 따라가서 유목민의 도움을 받았던 경험, 그 경험을 잊지 않게 마음속 낙타 방울 소리를 들을 수만 있다면 은성과 보라가 돌아온 현실은 분명 다를 것입니다. 그렇지만 두 아이는 새로운 하이킹에 나설 수 있을 것 같아요.





<생각해 보기>


1. 은성은 어른은 삶을 능숙하게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어른은 어떤가요? 여러분이 보기에 어른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요?


2. 은성이와 보라는 여행 도중 유목민의 천막에서 귀한 손님으로 대접받으며 하룻밤을 보냈어요. 이 경험이 두 사람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3. 사막을 횡단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오아시스입니다. 우리 삶에도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하고 재충전할 수 있는 오아시스가 필요한데요, 여러분의 오아시스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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