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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Oct 31. 2019

장수 사회의 그늘

요즘 생각


"어머니가 오래 고생하시지 않고 돌아가셔서 고맙더라."

어머니 첫 제사를 지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큰언니가 말했다.  

그렇게 말한 큰언니는 칠순을 넘겼고, 어머니는 향년 95세이셨다. 

세상에 고맙고 좋은 죽음이 있을까. 

 모두들 아무 말이 없었다.

평소 옳은 소리도 곧이곧대로 얘기하는 바람에 때때로 주변을 불편하게 했던 작은언니도 아무 말이 없었다.

     

구순을 넘기신 이후로는 어머니의 길어지는 인사가 자꾸 신경이 쓰였다.  

거실에서 한 인사를, 현관문 앞까지 따라와서 또 하시고는 했다. 

그러더니 언제부터인가 어머니가 베란다로 나와서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 계셨다. 

처음엔 차를 타고 가면서 유리창을 내리고 어서 들어가시라 손을 마주 흔들었다.

그러다 차에서 내려서 허리 굽혀 다시 인사하고, 손을 흔들어 서로 어서 먼저 가라고 인사를 했다.

어머니의 이 끝없는 인사는 대개는 다른 차에 길을 비켜줘야 할 때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특히 큰언니는 그런 어머니 인사에 마음을 쓰고는 했다.

어머니를 모시지 않는 맏이, 어머니를 동생에게 맡긴 맏이의 심사는 아우들의 그것과는 다를 것이라고 짐작한다. 


혼자 계시던 어머니를 반강제로 자식집으로 모셔온 것은 어머니 연세 89세였을 때였다. 

어머니를 모셔오기로 했을 때, 자식 따라나서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셨지만 

여러 번, 여러 날 거듭 말씀 드리고 다짐을 하고서야 승락하셨다. 

어머니가 홀로 계실 때 안부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불안을 내려놓을 수 없는 일이 종종 생겼다. 

어머니가 전화를 받지 않는 날이면 온 형제들에게 비상이 걸리고는 했다.

이웃집에 부탁을 해서 어머니의 안부를 묻기도 했으나

이웃마저 연락이 닿지 않는 날은 불안을 견디지 못해 결국 성질 급한 사람이 먼저 달려가고는 했다. 

이래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중론이 어머니를 모셔오게 했다.     


해마다 이른 봄에 어머니와 딸들이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고는 했다. 

서울로 돌아올 때 어머니가 멀미를 걱정하셔서 멀미약을 귀밑에 붙여드렸는데 

 멀미약 부작용이 있다는 걸 놓쳤다. 가벼운 치매 증상을 보일 수도 있다는데,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 어머니께 약간의 이상 징후가 있었지만 여행이 피로해서 그러신 줄로 모두들 생각했다. 

 연례행사처럼 했던 여행을 내년에도 어머니와 함께 할 수 있을까만 걱정했다.


“우리집으로 가지 왜 딴 데로 가느냐?” 

어머니는 자식 집에 오셔서도 하루밤 주무시는 것도 거절하시는 분이기에 모셔다 드리는 돌아가는 길을 마다 않고 가는데 어머니가 농담하시는 줄 알았다고 했다. 

멀미약 부작용으로 잠깐 정신이 혼미해지신 어머니가 ‘우리집’으로 작은언니네를 가리키신 의중을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작은언니가 어머니 가까이 살며 자주 드나드니 그 자식이 가장 편하셨던 거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일이 그렇게 되니 이번엔 형들이 불편해졌다. 그중에서도 큰언니가 가장 부담스러워 했다. 

그래서 내놓은 안이 한 사람에게 큰 짐을 지우는 게 옳지 않으니 

어머니를 시설 좋은 요양원에 모시자 의논을 했다. 

여러 가지 안이 나왔으나 그것은 어머니를 모셔오지 않음만 못한 일이라고 결론이 났다.

먼저 나서서 어머니를 자신의 집으로 모신 작은언니는 미안해하는 큰언니에게 

'어머니가 계시니 의지가 된다, 혼자 있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은 하지만, 

그런 작은언니조차 예순을 훌쩍 넘겨 스스로도 돌봐야 할 처지였다.    


어머니를 모시면서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이 여럿 생겼다.

가령, 언니가 집을 떠나 하루 이틀을 비우게 되는 일 하나만 생겨도 그렇다. 

고령의 어머니를 집에 혼자 남아서 기다리시게 하는 것도, 그렇다고 어머니를 모시고 다닐 수도 없더라는 것이다. 사전에 조처를 해서 어머니 혼자 계시는 일은 피할 수 있게 하고는 했으나 

이런 일들은 자연스럽게 작은언니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것으로 이어졌다. 

심지어는 “몸살이 나서도 안 된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게 되더라”는 작은언니 말은 어머니를 모신 그의 노고를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그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놓여서였을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작은언니는 밀렸던 병치레를 한꺼번에 하듯 병원을 드나들었다.     


세상에는 고생 끝에 돌아가신 노인 이야기가 흘러넘친다. 

그런 이야기의 끝이 비극적인 이야기가 적지 않다. 

‘부모의 긴 병이 형제 간에 의마저 상하게 됐다’, ‘오죽하면 긴 병에 효자없다’, 

‘한 부모는 열 자식을 거느려도 열 자식이 한 부모를 못 모신다’ ---.     

사람들은 부모님이 살아 계신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고들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부모님께 남은 연민마저 잃을까 걱정하는 이도 있다. 그가 특별히 불효자식이어서 만의 문제는 아니다. 장수 사회의 그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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