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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Oct 31. 2019

버티라고 말해야 하나

요즘생각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절기 인사쯤 될까. 오랜만에 J에게서 문자가 왔다.

'이번에도 안 됐구나' 짐작하며 이런저런 문자 대화를 나누다 만나서 커피 한잔하기로 말을 맺었다.     

J는 문학 비평을 쓰는 사람이다.

나는 그를 문학 비평가라고 말하지만 그는 한사코 그 호칭을 사양한다.

아직은 아니라면서.

여기저기서 그의 솜씨 있게 쓴 글을 읽고, 그의 글을 좋아하는 나는

잘 쓰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 아닌가 싶지만, 그는 비평을 쓰는 이들의 울타리 안에 들고 싶어 했고 그러려면 그저 글을 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J를 이해한다.  


J가 등단하기 위해 적지 않은 시간을 들인 것으로 안다.

'이번에도 안 됐어요'라는 힘 빠진 소식을 듣고 위로의 말도 몇 번인가 하고는 했는데,

J가 들어서 서운할지 모르지만 그것도 내 일이 아니다 보니

그가 몇 번을 도전했는지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새해가 되면 등단을 꿈꾸며 언론사 신춘문예에 응모했던 작가들이 당선자 발표를 기다리며 마음 졸였다는 이야기를 듣던 시절도 있었다.

떨어진 이들에게는 계절이 지나는 게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누구보다 지루하고 무거운 시간일 것이다.

J도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나는 이런저런 계획을 품고 찾아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독서지도 자격증 반을 운영한다.

수업 첫날 자기소개 겸 프로그램에 참여한 목적을 이야기하게 하는데,

어떤 이는 자녀 교육을 위해, 또 어떤 이는 일상의 윤기를 더하려고,

그리고 어떤 이는 단절된 경력을 이을 수 있을까 해서 온다  대부분 말한다.

많지는 않으나 일자리가 절박해서 오는 이도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두세 달 시간이 흐르면 중도에 포기하는 이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시작할 때의 의욕이나 상황이 한결같이 지속되기는 힘들다.

절박한 이유를 갖고 온 사람들이라 해도 과정을 마쳐 받은 자격증이

곧바로 일자리 보장으로 연결되는 건 아니다. 볼확실함이 힘들게 한다.

 해답을 손에 쥐고 있다가 딱 필요한 때에 손에 쥐어 줄 수만 있다면,

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버티는 거요. 아무리 노력하고 실력이 좋아도 인정받기까지 버티지 못하면 사라져요."  

개그맨 박명수 씨의 코디네이터로 일한다는 조미혜 씨가 10년의 생존비법을 묻는 기자에게 한 말이다. 나는 조미혜 씨의 말에 공감한다.


인생은 때로는 버티기다. 쓸 만한 무엇이 되는 데는 통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통과하는 동안의 불안을 견디는 일은 고통이다.  

고통이 클 때는 더 힘써 노력도 하지도 말고 포기하지도 말고 다만 버티는 것으로 시간을 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겪어보고서야 스스로 알게 되는 것들이어서, 나는 아무래도 J에게도,  

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이들에게도 버텨보라고 쉽게 말하지는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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