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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웅 Aug 24. 2019

절대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들

내가 잃어버린 것만 주워도 집을 산단다.

# 집을 사려면 내 뒤를 따라다닐 것.
"니 뒤만 졸졸 따라다니면서 흘리는 것들만 주워도 집을 사겠다!"

고등학교 시절 어렵게 주신 학원비 전체를 홀랑 버스에 놓고 내린 나를 보고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다. 내 삶을 돌아보니 매우 동의가 되었다. 그간 참 내 수준에서는 다방면으로 이를 고치기 위해 노력했다. 노트를 사기도 하고, 매일 적는 습관을 들인다거나, 나중에는 물건을 끈으로 묶고, 지갑을 체인으로 엮기도 하고...


# 슬픔과 분노를 넘어 나를 받아들이다.

결과적으로 내가 얻는 것은 무언가 잃어버리면 동시에 마음을 잃어버리고 스스로에게 분노하는 습관이었다.

다시 말해서, 나는 내 습관을 나로 치환했고... 난 내가 싫었다. 그로부터 얼마나 오래 나에게 분노했을까? 연애하던 시절 나는 내 덤벙거리는 모습을 보일까 온 에너지를 쏟았다. 나를 감추기 위해 애썼다. 왠지 들키면 버림받을 것 같았던 내 치명적 약점들 말이다. 약점은 감추면 의심을 사고, 의심은 결국 이야기를 만든다. 그리고, 비밀을 말할 순간에 직면한다. 아내에게 내 비밀을 말해야 했던 순간. 나는 내 모든 비참함을 드러냈다. 그리고, 담담히 그녀의 '처분'을 기다렸다.

 

# '나' 자체로 사랑받다.

놀랍게도 그 고백에서 그녀는 내 '칠칠치 못함'을 본 것이 아니라 내 '용기와 진실함'을 보았다. 사랑받았다. 어둠을 감추기 위해 애쓰다 보면, 내 빛나는 강점을 개발할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누군가에게 진심 어린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어쩌면 모두들 빛나는 내 모습을 닦기보다는 부족한 내 모습을 채우는 것에 삶을 허비하는지 모르겠다. 그녀는 내 부족함이 보이지 않는다 했다. 내가 보지 못하는 내 장점만 보인다 했다. 나는 그녀와 결혼했다. 그리고, 나는 나를 아주 오랜만에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를 빛나도록 닦기 시작했다.


# 매미를 놓고 왔다.

결혼한 지 10년도 훌쩍 더 흘러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지만, 난 아직도 흘리고 다닌다.

어제는 잘 가던 단골 우동집에 내 작은 업무 가방을 모조리 놓고 왔다. 현금도 안 쓰는데 그 날따라 현금도 한 몇 십만원, 카드 6장, 심지어 여권까지 들어있던 가방이었다. 밤새 한 잠도 못 자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차를 타고 부리나케 우동집에 가는데 하나를 더 잊었었다. 차에 기름을 넣지 않았던 것이다. 출근시간과 우동집의 오픈 시간, 차에 기름을 넣을 타이밍은 교묘하게 겹쳐 나는 조심스레 주유소를 지나쳤다. '이제 막 떨어졌는데 좀 더 가겠지.'라는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차에 경고등이 들어오더니 사거리에서 멈추어 섰다. 망했다. 유난히 나에게만 생기는 이 지독한 습관의 반복에 답답하던 찰나. 갑자기 황당한 생각에 웃음이 터졌다. 어제 우동집 가는 길에 나무에서 매미를 발견했다. 요즘 수현이(아들)가 매미를 잡아달라고 간절히 바라고 있던 찰나 함께 계시던 박사님과 함께 매미를 납치해서 급히 가방 안에 넣어놨던 것이다. 만일... 누가 가방을 열었다면 매미도 가져갔을까? 혹, 여성분이 여셨다가 심장마비라도 일어났다면 어떡하지? 놀라서, 직원분들 모두 내가 오기를 벼르고 소리라도 지르시지는 않을까? 그러다가, 잘 흘리고 다녀서 유난히 사고도 많지만 덕택에 얻은 것들도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가방에서 나는 '요상한' 소리 덕택에 내 가방은 잘 보관되어 있었다. 모두들 그 가방에서 나는 소리는 무엇이냐며 물어보아서 신나게 이야기해주고는 매미에게 고마움을 더해 풀어주었다. 뭔가 '보은'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 부족함마저 사랑할 때 일어나는 변화

나는 교회에 다닌다. 교회를 다니면서 유난히 좋아했던 성경구절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마음을 지키라.'는 말이었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유혹이나 요구에 가장 쉽게 내어주는 것이 어쩌면 마음인 것 같다. 그래서 그랬는지 가장 쉽게 내어주지만, 가장 지키기 어려운 '마음'을 이야기하는 구절이 좋았나 보다. 그런데, 마음을 지키려면 나부터 지켜야 한다. 내 자존감과 내 부족한 모습에 대한 인지를 바꾸어서는 안 된다. 내 부족한 행동이나 습관이 나는 아니니까 말이다. 인지하되 내가 가진 강점을 개발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는 말이다. 나를 좋아해야 내 강점이 내 행동습관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아... 말이 어려워졌나 모르겠다.


#절대 흘리고 다녀서는 안 될 것들.

내가 잊어버렸던 그 가방은 잊어버려도 다시 살 수 있었으리라. 오래되어서 헤어지기 시작했으니 차라리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우연히 넣어놓았던 돈은 잊어버리면 된다. 내 특기처럼. 거기 돈이 있었는지도 모를 테니까. 카드는 귀찮을 테다. 매우. 이것저것 연결되었던 자동이체의 편리함에 놀라며 일상으로 돌아오는데 매우 귀찮았겠지만 나는 그 와중에 더 나은 혜택과 디자인의 카드를 고르며 내심 작은 '혁신'을 작은 '핀테크'를 하며 뿌듯했으리라. 무엇이든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은 없다. 때로는 잊어버려서 잃어버려서 나은 것도 많다. 그런데, 나를 잃어버리는 것은 매우 그렇지 않다. 나를 버리는 것은 그렇지 않다. 나를 스스로 비하하고 들키지 않으려다 나를 잊어버리는 일은 고통이다. 우리 모두 다 불완전하지만 다르게 특별한 존재들이다. 감추기보다는 보이고 표현할 때. 나 스스로를 인정하고 인정받을 때 비로소 빛나기 시작한다. 진실된 내가 될 때 내 주위의 사람도 잃지 않는다. 감추려고 애써도 떠난다. 껍데기와 사랑을 나누고 싶은 사람은 없다. 나를 흘리면 안된다. 흘리지 않고 살다 보면, 부족함은 기회가 되고, 장점은 인정이 된다. 내 뒤를 따라다니면 아직도 늘 흘린다. 더 주워갈 것이 많다. 그런데, 나는 흘리는 것 돌아볼 틈도 없이 앞으로 가기로 했다. 나를 잃어버리지 않으면 내 삶을 찾을 수 있으리라. 찾고 나면 나머지는 매미처럼 날려 보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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