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왜 나를 낳아서 돌봐주지 않았나'
나의 원가족은 전반적으로 화목한 가정으로 비친다.
하지만
부끄럽고 들키기 싫어서 덮어두고
안정적인 가정에서 자라 아무 탈없이
사랑 많이 받고 산 것처럼 나를 포장하는 일이 습관이 되었다.
그래서 헐레벌떡, 초조함, 불안함은
나를 감추기 위한 수단이었다.
유치원 소풍,
집에서 싸 온 김밥 도시락뚜껑을 열 때부터
나의 불안시작되었다.
다른 친구들의 가지런하고 예쁜 김밥 도시락에 비해
내 김밥은 형태를 알아볼 수없게 흐트러져있었다.
그 당시에는 아이러니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고2,
오래 살던 주택을 떠나
근처 방 3 화장실 2 빌라로 이사를 했다.
그 이후로 부모님을 집에서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빨래, 식사, 청소 등 당연히 여동생과 나의 몫이 되었다.
교복을 다려 입기는커녕 물에 담가두고 아침에 급하게 말려서 입고 가는 날도 있었다.
엄마의 부재가 자연스러웠고
어느덧 내 나이 40을 바라본다.
20대 초 도망치듯 유학을 떠났다.
집이 싫었고 가족과 공감대가 없었다.
안정감이 없어서인가?
사소한 일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귀국 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았다.
그 과정에서도 나의 친정엄마는 없었다.
엄마는 바빴다.
그래서 나도 엄마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밝은 내 모습 뒤에는 항상 불안이 쫓아다닌다.
오늘은 엄마가 참 원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