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간 살던 방을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
만약, 만약 말이야. 내가 이 집에서 2년 더 산다면 어떨까?
지난 12월 동안 내내 했던 고민이다. 대학 수료 후 머물게 된 6천 짜리 전세방. '집'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일 만큼도 아닌 좁다란 공간에서 벌써 4년째 생활을 하고 있다. 처음에 들어올 때 전세 계약 2년, 그리고 2년 전 연장 계약 2년 해서 도합 4년의 시간을 이 공간에서 머물렀다. 연장 계약을 할 때는 수월했다. 취준생이었던 나는 여전히 학교에서 스터디를 할 일이 많았고, 학교 근처에서 익숙한 환경으로 머물 수 있는 이 방이 최선은 아니어도 그럴듯한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사를 할 그럴듯한 명분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명분도 없이 비용이 많이 드는 이사를 선택할 만큼 그때의 나는 용감하지 않았다.
그러면 2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달라졌나?
지금은 명분이 있어서 방을 뺀다고 했나? 그럴듯한 명분은 없기 때문에 고민을 했던 것이다. 퇴사 후에는 출퇴근의 문제가 없고, 밥벌이는 어디든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랩탑으로 가능하다. 더 이상 학교에 자주 갈 일이 없다는 것은 전과 달라진 점이지만.
사실은 연장 계약을 하고 나서, 최근에 이르기까지 나는 이사를 하지 않은 것을 줄곧 후회했다. 연장 계약을 한 뒤로 거짓말처럼 방에서 벌레를 마주한 적이 꽤 있었다. 이전까지는 전혀 보지 못했었는데 말이다. 집이 더 이상 나를 감당할 만한 크기가 아니라는 것도 이사의 명분이 되었다. 4년 간 살며 짐이 엄청나게 늘어버렸고, 이곳은 수납공간이 너무 적다. 어디에 눈을 두어도 거슬리는 자잘한 짐들을 치워버리기 위해 조립식 서랍도, 책상도 샀지만 현재도 감당하기 어렵다. 회사에 다닐 때는 재택근무를 자주 했다. 집에서 하루 종일 업무를 보려니 좁은 방이 더더욱 갑갑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여기서 살며 좋은 일이 딱히 없었다. 인생에 큰 실패 없이 살아왔던 20대 초중반까지의 나와는 다르게 이곳에서의 몇 년은 실패로 점철된 일들이 많았다. 그 과정에서 굴욕적인 일들도 익숙해질 만큼 마음의 생채기가 늘어왔다. 이렇게 다양한 이유로 나는 이곳을 떠날 명분을 찾았던 것이다.
그러면 고민은 왜 한 거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사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간이 작은 나 같은 취준생에게 큰돈이 오가는 복잡한 일은 최대한 피하고 싶은 일이다. 다른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너무 많으니까. 12월. 현재는 방을 빼기 위해 집주인에게 두 달 전까지 통보를 하도록 법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내가 계약할 시점에는 한 달 전까지 통보를 하면 되었다. 그리고 한 달 반이 남았던 시점에 집주인은 연장 여부를 물어왔고, 나는 며칠을 고민하다가 나가겠다고 통보했다.
이사를 결심하기 전 많은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얼마 전 이사할 집을 계약한 친구, 가족, 직장 동료 등등... 여러 사람에게 조언을 구했다. 엄마를 제외한 모두는 조심스럽게 새 출발을 권했다. 그들은 대부분 내가 집 문제로 푸념하는 걸 지켜봐 온 사람들이었다. 엄마는 연장을 하는 게 낫지 않냐고 말했다. '명분'의 문제였다. 습자지 같은 귀 두께를 가진 나로서는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어떤 결심을 하고도, 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또 결정을 뒤집었다. 하지만 결국 선택은 나의 몫이었다.
직장 동료 한 분은 내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아." 그 말을 듣고 확실한 결심이 섰다. 나는 내가 처한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고, 변화시키고 싶은 마음이 컸다. 불편해도 안주할 수 있는 길보다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고 싶었다. 서른 살이 되어서도 지금 사는 방에서 눈을 뜨고 싶진 않았다. 고민은 끝났으니 이제는 현실의 문제를 마주할 때다. 이제부터는 새롭게 머물 곳을 찾아보기 시작해야 한다.
영화 <노매드랜드>에서 주인공 펀은 이런 질문을 받는다. "아직 homeless세요?" 이 질문에 펀은 "homeless가 아니라 houseless야."라고 대답했다. 차에서 생활하며 마땅한 거처가 없는 그녀는 house가 없지만 home까지 잃진 않았다. 이미 이 공간을 떠난다고 통보한 나는 이미 관념적 노매드일지도 모른다. 하우스리스도, 홈리스도 되지 않기 위한 여정을 또 시작해야 한다. 겁이 나지만 엎질러진 물, 기왕이면 두려움보다는 설렘을 앞세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