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서늘함과 효율, 그리고 안전마진에 관하여

[돈의 심리학]을 읽고: 숫자의 서늘함과 마주하는 시간

by 폴라리스

어느덧 나이가 30대 중반을 지나고 있지만, ‘나’로서 당당해질 수 있었던건 불과 8년 전부터입니다. 바로 첫 직장을 얻고 제 손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을 때부터였죠. 집안 사정이 넉넉지 않아 용돈조차 받기 힘들었기 때문에, 스스로 돈을 버는 건 제 인생의 거대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지, 어떤 경험을 누릴 수 있는지 탐색하며 자아를 찾아가는 일은 그제야 허락된 사치였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결핍에 눌려 지냈던 흔적은 고스란히 습관으로 남았습니다. 식당 메뉴판 앞에서나 물건을 고를 때, 심지어 여행을 갔을 때조차 제 우선순위는 언제나 ‘효율’이었습니다. 부족한 돈 대신 나의 시간을 팔아 만족도를 올리겠다는 강박이 있었던 거죠. 조금이라도 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기 위해 수많은 리서치와 계획에 과한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극한의 효율만을 좇는, 돈에 예민한 어른이 되어버렸습니다.


행복과 돈은 별개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행복은 보이지 않지만 돈은 숫자라서 너무나 선명하니까요. 나의 대출 잔액, 자산의 총액, 주식 수익률의 등락은 명확한 숫자가 되어 나를 서늘하게 찌릅니다.


이 숫자가 진짜 무서운 이유는 '삶의 선택권'을 박탈하기 때문입니다. 돈의 부족함은 단순히 배고픔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내 가정의 선택지가 사라짐을 의미합니다. 남들은 고민하지 않고 선택하는 일상을, 돈이 부족하면 가장 효율적인 정답을 찾아야 선택이 가능하니까요. 지금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소득을 누리는 직장인이지만, 이 서늘한 두려움과 자격지심은 여전히 그림자처럼 따라다닙니다.




이 서늘한 숫자의 공포에서 단번에 탈출하려던 조급함은 저를 늪에 빠뜨리고 맙니다. 가상화폐 열풍에 휩쓸려 알트코인에 뛰어들고, 코로나 팬데믹 당시 마이너스로 치닫는 원유 선물에 롱 베팅도 했으며, ‘안 하면 바보’라는 우리사주에 큰 빚을 내어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선택지의 박탈이라는 절벽 끝에서 도망치려 했던 무모한 투자들은 여전히 뼈아픈 상처로 남아 저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이 투자는 그저 탐욕에 눈이 먼 선택이었을까요? [돈의 심리학]의 저자인 모건 하우절은 "누구도 미치지 않았다"라고 말합니다. 제가 그 위험천만한 투자를 했던 건 돈에 눈이 멀어서가 아니라, 이 선택이 불안을 없애고 나를 지킬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탈출구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단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리스크가 제 계획보다 강력했을 뿐이죠.


반대로 제 삶에 찾아온 행운도 이야기해볼까요. 처음 컴퓨터공학을 전공으로 정할때, 가족들은 박봉과 야근에 시달리는 개발자가 될 거나며 저를 만류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졸업하고, 또 이직을 준비하던 시점에 거짓말처럼 개발자 열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이라면 엄두도 나지 않을 이직에 성공하고 연봉을 높일 수 있었던 건, 나의 실력보다는 시대가 만들어준 행운 덕분이었습니다.


“일이 잘 풀릴 때는 겸손을 찾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일이 잘못될 때는 용서와 연민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 (p.333)”


이처럼 행운과 리스크는 제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그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는게 현명할 겁니다. 잘 풀린 결과에 겸손하고, 어긋난 결과에 스스로를 용서하면서 말이죠.




조급함의 흉터를 보듬으며 제가 선택한 대안은 ‘안전마진’을 구축하는 것이었습니다. 책에서도 언급된 가치투자의 대가, 벤저민 그레이엄은 “확신이 아니라 확률에 지배되는 세상을 안전하게 헤쳐나가는 것”이 안전마진의 목적이라고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일확천금을 노렸던 공격적인 베팅보다, 시장의 풍파에 일희일비하지 않았던 소극적인 인덱스 투자가 훨씬 높은 수익률을 안겨주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저만의 ‘노잼투자’ 원칙을 세웠습니다. 현금과 방어적 자산, 공격적 자산을 철저히 배분하여 예측이 아닌 대응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집중하는 투자 방식을요.


하지만 이 길은 생각보다 외롭고 지루합니다. 심지어 ‘잘 안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비관주의의 유혹도 자주 찾아옵니다. 모건 하우절은 “파괴는 빠르고 진보는 느리기 때문에 비관주의가 훨씬 지적으로 보이고 눈에 잘 띈다”라고 말합니다. 주변의 급등주 소식이 들려올 때면, 내 노잼투자는 당장이라도 도태될 것 같은 오답처럼 느껴집니다. 머리로는 결국 낙관주의가 살아남아 복리를 완성할 것임을 알지만, 가슴은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벼락거지’ 공포에 시달립니다.


저는 이 이성과 감정의 괴리를 해결하기 위해 다소 독특한 처방을 내립니다. 바로 한달에 5~10만원 정도의 소액으로 옵션 투자를 하는 겁니다. 누군가는 위험한 파생상품에 손을 댄다니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느냐고 혀를 차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확실히 수학적으로는 결코 이성적인(Rational) 선택은 아니긴 합니다. 하지만 제 마음을 다스리고 포트폴리오를 유지하게 만드는, 지금으로썬 합리적인(Reasonable) 장치입니다. FOMO를 잠재우는 심리적 헷징이자 투자의 지루함을 견디게 하는 도파민 수수료인 셈이지요. 물론 이 선택이 심리적인 장치로 남아 있을 수 있게 주기적으로 점검해야겠지요.




제가 부를 쌓으려는 궁극적인 목적은, 타인에게 부유함을 증명하거나 더 화려한 재화와 서비스를 누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모건 하우절이 말했듯, 부를 통해 얻고 싶어 하는 가장 큰 가치는 ‘행복’이며, 그 행복은 “내 삶을 내 마음대로 살고 있다는 강한 통제감”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즉, 저에게 부란 내 시간을 오롯이 내가 원하는 곳에 쓸 수 있게 해주는 주권의 다른 이름입니다.


이 주권을 지키기 위해 저는 또 다시 효율이라는 도구를 사용합니다. 연봉이 오르고 커리어가 쌓여도 저의 생활 패턴과 효율에 대한 추구는 여전합니다. 배달 음식 대신 직접 요리를 하고, 도시락을 싸며, 목적 없는 소비를 자제하는 소박하고 효율적인 생활양식을 고수합니다.


과거의 효율은 결핍을 메우기 위해 시간을 희생하는 ‘생존의 수단’이었다면, 지금의 효율은 ‘충분함의 기준을 낮추는 기술’입니다. 남들과 비교하며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갈구하다 보면 결국 가장 소중한 시간과 자유를 잃게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즘 유행하는 짠테크나 무지출 챌린지와 겉모습은 비슷할지 모르나, 지향점은 다릅니다. 절약을 통한 자산 증식이라는 방법론을 넘어, 어떤 불확실성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는 안전마진을 확보하는 실존적인 대비이기 때문입니다.




책 제목이 돈의 '심리학’인 이유는 분명합니다. 뉴턴조차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인간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고 했을 정도로, 금융은 명확한 공식보다는 각기 다른 개인의 심리가 지배하는 인간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책엔 당장 자산을 몇 배로 불려줄 실질적인 비법 같은 건 없습니다.


책을 읽었다고 해서 내일 아침 갑자기 부자가 될 용기가 솟구치거나, 돈에 대한 불안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내일의 주가와 대출금리가 뿜어내는 서늘함은 여전히 그대로니까요. 대신 이 책은 나의 두려움을 명확히 규정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내가 무서웠던 건 숫자의 부족함 그 자체가 아니라, 소중한 이들을 지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선택권의 박탈”이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결혼 소식이 부쩍 많이 들려옵니다. 요즘의 저는 축의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계산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예식장을 찾곤 합니다. 취업 준비 시절, 단 돈 몇만 원이 없어서 친한 후배의 결혼식에 차마 가지 못했던 기억이 여전히 후회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축하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선택권을 가졌다는 사실이 참 감사할 따름입니다. 어쩌면 이런 것이 제가 그토록 치열하게 쌓아오고 있는 안전마진의 실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현실은 녹록지 않지만, 제가 쌓고 있는 '부'의 모습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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