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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챙 Dec 17. 2021

글 쓰는 사람은 경험과 생각을 아까워하는 사람이다

글을 쓰려고 시작하고 나니 생각이 많아졌다. 생각이 많아지니 쓰고 싶은 것도 많아졌다. 하지만 머리에 스치는 수많은 생각을 글로 옮기지 못해 잊기도 하고, 노트에 휘갈겨 적어 놓은 메모들은 완성된 글로 옮겨지지 못할 때도 많다. 그럴 땐 글로 잡아두지(capture하지) 못하는 생각들이 너무나 아깝다.


생각이 많아지니 행동이 적어지는 경향이 생겼다. 행동을 할 때 그 행위의 의미를 최대한 되새기며 생각을 하고 그것을 글로 남겨야 한다는 조급함과 안타까움이 생겼다. 글로 남기지 못하는 것, 그래서 잊게 되는 것들이 아까워졌다.


내가 보고 듣고 읽는 것도 가리게 됐다. 특히 영상이 그렇다. 한 편의 영화를 보거나, 유튜브에서 강의를 듣거나 할 때 글이나 문장으로 남기지 못하는 것을 보거나 듣는 게 아까워졌다. 좋은 내용을 보고 듣는다면 그 당시 깨닫기도 하고 혹시 잊더라도 내 머릿속 어딘가에 남아 훗날의 경험과 생각을 풍성하게 하는 양분이 되기도 하겠지만 지금 당장 글로 남지 못하면서 나의 정신과 집중을 빼앗는 것들에 시간을 보내는 게 아까워졌다.


읽는 것도 그렇다. 전에는 잡다한 것들을 많이 읽고 여러 가지 책들을 눈에 띄는 대로 두서없이 읽곤 했다면 이제는 한 줄기의 생각과 한 주제의 글로 승화될 수 없는 책들을 마구잡이로 읽는 건 효율적이지 않게 느껴진다. 이젠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언젠가 읽고 싶은 리딩 리스트에 추가해두는 것으로 만족한다. 나는 읽는 것이 느려서 내가 평생 읽을 수 있는 책들의 수는 정해져 있다. 읽을 책은 고심하며 선정하고 어차피 읽기로 한 책들은 비슷한 주제의 책들을 단 시간에 함께 읽어서 그 주제에 대한 생각과 사고가 더 깊어지게 해야 한다. 한정된 나의 시간을 써서 읽기로 한 책이라면 그 쓸모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경험과 생각을 글로 남기지 못하는 것이 아까워지고 나니 시간이 아까워졌다. 나의 생각을 글로 남기는 것은 나에게 너무 소중하다. 비록 완성도가 높은 글을 만들어 내지는 못하더라도 개운하게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글로 옮겨두면, 그래서 다른 생각을 넣을 공간을 머릿속에 만들어둔 채 잠에 들 수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나는 기억력이 나빠서 어제의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기에 오늘의 생각들을 글로 옮겨두고 잠에 들 수 있으면 그날의 경험과 생각들을 낭비하지 않은 것 같아서, 내가 보낸 시간에 의미가 부여되는 것 같아서 좋다. 만약 그렇지 못한 채 잠자리에 들게 되면 찝찝함과 답답함이, 그리고 머리 한쪽에 왠지 모를 두통이 생긴다.


시간이 아까워지니 곁에 있는 사람이 소중해진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삶을 살아내기 위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다하며 살려면 소중한 사람과 보낼 시간은 너무나 적다. 이것을 깨닫고 나니 소중한 사람을 곁에 두고 소중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나의 마음을 쏟았던 시간들이 마음이 아프게 아깝다. 이제부터라도 매 순간을 최대한 소중하게, 그래서 삶이 풍성한 시간들로 매워지게 해야 한다.


나의 글은 가볍고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 나의 생각을 옮기는 것인데도 머리에서 손을 거쳐 화면에 글로 변해가는 그 찰나에 너무 많이 변질되어 버린다.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너무나 큰 깨달음 같이 느껴지지만 그 생각이 주는 환희가 글로 옮겨지지 않아 가슴이 답답하다. 어쩌면 글로 옮겨지지 않는 나의 생각은 내가 느끼는 것만큼 대단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글은 이렇게 초라할지라도 글을 쓰며 나의 삶이 꽉 채워져 간다.


나는 20년 가까이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을 했다. 생각만 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 멋진 꿈을 갖고 있다는 것이 나를 착각에 빠져 살게 했다.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쓰고 싶다.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쓰는 행위를 해내고 싶다. 제대로 못하더라도 조금씩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고 그렇게 쓸 수 있어서 자유롭고 싶다. 그래서 잘하지는 못하지만 나는 오늘도 쓴다. 오늘 나의 하루가 아깝지 않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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