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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챙 Jun 23. 2022

리드(lead)하려면 리드(read)해라

미 육군 장교의 책 읽기

한국전쟁 때 미군 파병을 결정했던 미국 대통령 해리 S. 트루먼(Harry S. Truman)은 이렇게 말했다:


"Not all readers are leaders,
but all leaders are readers."

"책 읽는 모든 사람이 리더가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모든 리더는 책 읽는 사람이다."


미국의 리더 집단 중 하나를 꼽으라면 미군의 장교 집단을 꼽을 수 있겠다. 2020년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에는 약 23만 명의 현역 장교가 있다 (2020 Demographics Profiles of the Military Community). 이 글은 미국 장교 집단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육군 장교의 리딩(reading)에 대한 이야기다.




누군가 미 육군 장교의 여정을 시작했다면 그때부터 추천 도서 목록이 그 사람을 따라다닌다. 


사관생도 (Army cadet)부터 대위까지는 다음의 교육과정을 거치는데, 각 과정(계급) 마다 도서 목록 (reading list)이 있다:


사관학교 혹은 ROTC - 육군사관학교 추천 도서 목록

신임장교 지휘참모과정 (BOLC: Basic Officer Leader Course) - 보병 신임장교 추천 도서 목록

대위 지휘참모과정 (Captains Career Course) - 병과마다 대위 추천 도서 목록이 따로 있다


위의 각 계급마다 읽어야 하는 도서 목록이 기본 소양이라면 상관(상급자)에 대한 예의로 읽어야 하는 책들도 있다.


먼저 미국 합참의장 (CJCS: Chairman of the Joint Chiefs of Staff)과 육군 참모총장 (CSA: Chief of Staff of the Army)의 공식 추천 도서 목록이 있고 (합참의장 추천도서육군 참모총장 추천도서), 모든 직속상관들도 자신만의 추천 도서 목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대위 정도 되면 11개의 육군 전략 문서(Strategic Documents)들은 숙지하고 있어야 하고, 계급에 걸맞은 야전교범(FM)과 전술(Tactics), 기술(Techniques), 그리고 절차(Procedures)에 대한 지식도 있어야 한다.


그 외에도 육군 교육 센터 (Center for Army Lessons Learned), 육군 대학원 (Army War College), 그리고 각 병과에서 발행하는 전문 저널의 주요 토픽(topic)들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한다.


읽을 건 너무도 많고 다 읽을 시간은 없다.




미 육군에서는 우스갯소리로 육군 교육 환경을 이렇게 표현하곤 한다. "Drinking from a fire hose". 


직역하면 "소방 호스에서 나오는 물을 마신다"는 뜻인데, 어떤 교육을 받으러 가던 주어진 시간 안에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분량의 내용을 가르치는 걸 빗댄 말이다. 육군 장교가 교육을 받으러 가면 꼭 알아야 할 내용들에 대해 배우긴 하지만 배운 내용 전부를 숙지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교육이 끝나면 알아야 할 것을 아는 것이 요구된다. 따로 시간을 내어 소방 호스에서 뿜어져 나온 물들을 빠짐없이 주워 담아야 하는 것이다. 개인 시간을 내어 읽고 공부를 하는 것 말고는 방도가 없다.


한 예로 전투병과 (보병, 포병, 기갑, 방공, 공병, 항공) 출신의 장교가 정보 병과로 이전하려면 4주 교육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때 약 11권 정도의 교재가 사용되고 매주 1-2권 정도를 정독한다. 매일 아침에는 전날 읽은 내용에 대해 토론을 하는데, 그저 읽은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읽은 내용이 적용되는 예를 들어야 한다. 적절한 예를 들려면 전날 읽은 교재의 내용만으로는 불가능하고 평소에 읽었던 책, 뉴스, 전문 저널들을 거론해야 한다. 평소 꾸준히 전문성 개발(professional development)을 위해 독서를 했던 장교가 아니라면 교관과 동기들 앞에서 자신의 밑천을 드러나고야 만다. 


유능한 장교가 되려면 꾸준하고 치열한 독서는 필수다. 그리고 그건 육군 장교가 아니라 어떤 분야의 리더이던 마찬가지일 것이다.




So What? 그럼 뭘 어쩌란 말인가?


결론은 계속 꾸준하고 치열하게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양을 쌓기 위해 넓게 읽어야 하고 전문성을 쌓기 위해 좁게 깊이 읽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 치더라도 읽을 시간은 부족할 것이다. 이것을 인정하되 그렇다고 포기해서는 안된다.


리딩에서 플레이북(Playbook)으로


읽는 것에 허덕이던 내게 아주 적절한 조언을 해주었던 상관이 있었다. 대령 승진을 바라보는 노련한 장교였는데, 고릴라도 때려잡을 것 같은 신체와 체력을 가지고 있었고 매주 3권 이상의 책을 추천해주는 독서광이었다. 이 분의 조언은 바로 항상 배운 것을 기록하고 나만의 플레이북(playbook)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플레이북이란 미식축구에서 팀의 작전을 그림과 함께 기록한 책이다. 감독이 '어떤 플레이'를 하라고 하면 팀 멤버 모두가 그게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고 있고, 각자의 역할도 정확하게 안다. 어떤 상황이 왔을 때 주저 없이 생각 없이 행동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리더가 되려면 자신만의 플레이북이 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독서를 통해 내 분야의 지식을 조금씩 쌓아가고 그것을 꼭 기록하고 정리해야 한다. 한 권의 책을 읽었다면 배운 것 (lessons learned)을 무엇이라도 기록해야 하고, 그 배운 내용이 내 분야에 어떻게 적용이 되는지, 플레이북의 어느 페이지에 들어갈 수 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그렇게 조금씩 지식과 실력을 쌓아가면 리더로서 읽어내야 하는 수많은 책들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숨통이 트이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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