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해내기만 해도, 거기까지만 해도 괜찮다
그래도 당신은 대견하다
영어에 "check the box"라는 표현이 있는데, 어떤 것을 "했다고" 말할 수 있는 최소한만 해냈을 때를 일컫는 표현이다. 보통 부정적인 표현으로 쓰이는데, 예를 들자면 와이프가 설거지를 해 달라고 했는데 "딱 설거지만" 하는 것이다. 설거지는 했는데 싱크대 거름망에는 아직 음식 찌꺼기가 남아있고, 싱크대 주위에는 물이 여기저기 튀어 있고, 건조대에 쌓여 있는 그릇들은 곧 와르르 무너질 것처럼 아슬아슬한 그런 상황. 오히려 안 하니만 못한, 하고도 미움받는 그런 상황이랄까. (물론 내 얘기는 아니다)
매사에 이렇게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피곤한데, 특히 직장 동료나 부하 직원이 이런 식이면 참 힘들어진다. 딱 봐도 다시 손을 봐야 하게 일을 해 놓고선 천진난만하게 "제가 다 해놨는데 왜 그걸 다시 하고 계세요?"라고 묻기라도 한다면 정말 속이 터진다. 물론 커뮤니케이션의 부족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누가 봐도 칼퇴를 하려고 일을 후다닥 끝낸 것 같은 상황일 때는 정말 화가 난다. 예를 들어 직원에게 바닥만 쓸고 퇴근하라고 했더니 바닥의 먼지를 한쪽 구석에 모아만 놓고 퇴근하는 경우 말이다. "아, 저는 쓸라고 하시길래 쓸기만 했죠."
하지만 그 반대의 사람들도 있다. 너무 대충 해서 문제가 아니라 너무 완벽하려 해서 힘든 사람들 말이다. 이런 사람에게 일을 맡기면 결과물은 너무 만족스럽지만 일하는 당사자는 혼자 힘들 때가 많다. 1% 더 잘하기 위해 50%의 시간을 더 쓴다. 남들과 똑같은 돈을 받으면서도 더 많이 일하지만, 완벽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1%의 나음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물론 매사에 완벽하면 좋다. 그렇게 완벽함을 추구하고 만성 스트레스를 겪으며 노력하는 사람들 덕분에 세상은 발전하고 나아진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그런 완벽주의자라면 가끔은 그저 해내기만 하는 것도 괜찮다. 그게 습관만 아니라면, 매사에 일을 대하는 태도가 항상 그렇지만 않다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그저 해내는 것만으로도 대단할 때가 있다. 최소한만이라도 해낸 나를 대견해해도 괜찮은 날이 있다.
오늘 너무 힘들었다면, 너무 피곤하다면 오늘 하루 정도는 그냥 끝내기만 해도 괜찮다. 그래도 직장에서 잘리면 안 되니까, 그래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그래도 내가 맡은 일이 있으니까 하기는 해야겠지만 하루 정도는 그저 check the box 해도 괜찮다. 당신은 지금까지 수고했고 열심히 살았다. 오늘 쓸기만 해서 구석에 모아놓은 먼지는 내일 조금 일찍 출근해서 쓸어 담아 버리면 되고, 오늘도 뭐라도 쓰려고 그저 써 내려간 글은 내일 다시 고치면 되니까.